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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울타리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내가 하고 싶었던, 도전했던 그 일 들. 회고록

by 윤옆

처음 사회적 경제에 대해 우리가 강의를 하고 다른 청년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은 우리가 강의를 너무 잘할 것이어서가 아니라 단지 우리가 먼저 알았고, 이 시스템에 대해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렇게 우리는 4회차짜리 강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강의를 시작했다.


우리가 누굴 가르칠 수준을 되지 못했다. 사회적 경제라는 단어라 일부 사람들이 알아가기 이전부터 나도 모르게 사업적으로 경영을 하시거나 협동조합 운동가들처럼 지역과 사회에서 그 뜻을 펼치고 계신 분들은 많았다. 우리는 그것을 안 것이 얼마 되지 않아 깊이 알지는 못하나 널리 알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우리는 약 2년간 4~5회 정도의 강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많은 친구들을 얻게 되었다.


사회적 경제는 서브컬처이지 않을까?

사실 벌이는 좋지 못했다. 부동산이나 주식처럼 사람들의 열망을 가져오는 주제는 아니었고, 어떻게 보면 서브컬처 같은 사회적 시도라 생각했다. 대부분 '공동체', '공유 이익'이라는 단어에 이끌려 궁금해 기웃해 보던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어떤 이들은 이미 현업에서 종사하고, 어떤 이들은 아직 학생으로서 관심이 생겨 오게 되었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사회적 경제란 단어는 대중들에게 낯설다. 사회적 경제가 부동산, 주식처럼 수익을 내는 것이 주목적이었다면 아마 훨씬 더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사람들의 관심을 쉽게 끌 수 없었다. 마치 특정한 가치관을 공유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모이는 서브컬처처럼 대중적인 관심을 받기보다는 그것을 필요로 하고 의미를 느끼는 사람들에게만 깊이 다가갔다. 우리는 때때로 "사회적 경제는 마이너에서 끝날까?"라는 고민을 했지만, 우리는 그저 그 의미가 계속해서 확산되기를 바랐다.


대의보다는 작은 울타리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우리 모두는 사회 변화를 이끌겠다는 거대한 포부를 가진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지지하고, 지속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에서 큰 만족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렇게 형성된 작은 울타리는 우리의 심리적 안전한 공간이 되었고,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 응원하고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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