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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아직은 서툰 여행

by 수성





바스토우(Barstow) – 라스베가스(Las vegas)


150 miles (241km) / 예상소요시간 : 3 시간





[06:20 am]


서늘한 기운이 몸을 파고들 만큼, 4월말의 바스토우 새벽은 쌀쌀했고, 나탈리가 히터의 건조함을 싫어하기 때문에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얇은 바람막이 하나를 껴입었다.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커피타임!!

이 시간을 즐기기 위해 한국에서 아메리카노 스틱커피를 많이 가져왔다.


한잔 찐하게 마시고 싶어, 스틱 두 개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수납장을 다시 뒤적였다.





ㅇㅏ........



OTL


물 끓이는게 없다.

제길슨...


창 밖을 멍하니 보는데, 어제 마트에서 산 콜드브루가 생각났다. 카페인 섭취가 필요한 나는 일어나 냉장고를 열고는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싱싱한 콜드브루를 냉큼 꺼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지....)



춥다고 콜드브루에 얼음이 빠질 순 없는 일. 냉동실 문을 열고 얼음을 꺼냈다.


(우하하하하하하하ㅎㅏㅏㅏㅏㅏㅏ)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하냨ㅋㅋㅋㅋㅋ’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을 하며 노래를 흥얼거리다,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나탈리의 발을 보고는 흠칫 놀라 주둥이를 다물었다.


콜드브루와 얼음, 보기만 해도 참 알흠다운 한쌍이다. 손을 한번 비비고는 기분좋게 수납장을 다시 열었다.




(가만있어보자~~~~)

:

:

(잔이 어딧나~~)

:

:

:




잔이 없다.......

2 C...

그릇도 접시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어제 마트에서 멀 산거냐..?)

(주둥이에 처넣을 생각만하고, 어떻게 넣을지는 고민도 안한 멍충이....)


꺼내논 얼음이 녹는 줄도 모르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창 밖을 쳐다보는데, 얼음 비닐에서 녹은 물이 손가락으로 다가와 아침 인사를 건냈다.


“굿모닝!?”


..................



점점 미쳐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때 쯤, 오른쪽 볼이 따끔거리기 시작했는데,,


(머가 물렸나?)


그때, 저 너머로 보이는 흐릿한 하얀 물체. 까만 단추 같은 게 꿈뻑거린다.


물린 게 아니었다.


볼을 찌르듯 쳐다보는 구름이의 눈빛이었다. 날카롭던 눈빛은 아이컨택이 되는 순간 아련한 눈빛으로 바뀌었으니,, 여우주연상은 니가 받아야겠다는 정신나간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걷는게 정신건강에 조켓따...)



“그래그래. 나가자. 나가!!”






[08:00 am]


찬란하게 떠있는 해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구름과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숨었다 나왔다를 반복하며 구름이와 나에게 인사를 했다.


“구름아! 우리도 숨바꼭질 할까?”


휙 돌아 자기 갈 길을 가는 구름이...


(그럴꺼면 지 혼자 나오든가.......)


강아지들은 X꼬 냄새를 맡으며 서로의 신분을 확인하는데, 구름이는 얌체 기질이 있어 상대의 신분만을 확인하고, 상대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는다. 사람으로 치면 상대방 명함은 받고, 내 명함은 안주는 느낌이랄까?


'아.. 죄송합니다. 제가 명함을 못 챙겨서요. 죄송합니다.' 이런 예의 있는 행동이 아니라 상대 것만 받고, 그냥 쌩까는 느낌이다.


이곳에서 만난 첫 미국친구의 명함을 받자마자 구름이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 앉아버렸다.


(저거저거.. 나중에 사회생활 어떠케 하려고... 쯧..)


길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캠핑장 밖으로 나오게 됐는데, 어제는 정신이 없어서 그랬는지 이런 황량한 곳에 캠핑장이 있는 줄 몰랐다.


허허벌판인 이곳!


눈 앞의 장면은 나에게 묘한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황량함은 꽉 차있는 내 마음에 필요했던 것이었나보다.


빌딩 숲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달려온 시간.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채 스며든 스트레스를, 더 잘해야 된다는 억압과 강요로 스스로를 밀어부쳤다. 그것이 어느 순간, 감당 못할 압박으로 다가왔을 땐 어디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른채 길을 잃곤 했다.


긴장하며 살았는지 조차 모르고 산 시간들, 그저 무턱대고 열심히만 살았던 시간, 일에 떠밀리고, 관계에 지치면서도, 그걸 다시 일과 관계에서 해소하기 위해 매달리고 늘 채우려고만 했던,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며 눈물이 고였다.


뭘 그렇게 쥐고 살았을까?


꽉 차있던 내 안의 무언가가 한뭉텅이 툭 떨어져 나가며 느낀 자유의 눈물 같았다.


나는 먼 곳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이번 여행을 하며 무언갈 채우기 보다, 비우는 것에 더 집중해야겠다고!



(그래!! 적게 먹고, 마니 싸자!!!)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헤헤 웃으며 잘도 따라오는 구름이.


(내 사진은 안찍어도, 너는 찍어준다)


“일루와서 앉아봐. 구름아!”




“구름아! 구름아!! 여기여기!! 여기봐!! ㅇㅑ !!!!”


(참 사진 찍기 힘든 아이다... )






[09:10 am]


캠핑카로 돌아와 구름이 발을 닦는데, 기지개를 펴며 일어나는 숲 속의 마마님.


“구름아, 옴마 커피 마시고 싶다고 아빠한테 말해줄래?”


구름이가 그 말을 전해줄리는 만무했으니, 귀가 두 개나 달린 나는 빠르게 캠핑 사이트에서 차량을 해체했다. 에드형에게 고맙단 인사를 하고 싶어 사무실에 들렀지만, 아쉽게도 그는 있지 않았다.


특이사항이 없으면 그냥 가는게 체크아웃이란다.


차를 몰고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은 인근의 별다방. 한국에서는 잘 가지 않는 곳이지만, 여기에선 제일 만만하다.

“오빠! 저기 드라이브스루 있다!”

“저기요, 나탈리씨.. 지붕 날라갈 일 있나요? 드라이브스루 잘못 들어갔다가 뚜껑 날라가면 우린 여행이고 머고 바로 끝나는 거옄ㅋㅋㅋㅋ”


나도 차에 적응시간이 필요하다. 아무리 땅덩이가 크고 도로가 넓어도 아직은 무섭다.


별다방 주차장엔 대여섯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자리가 있었지만, 캠핑카를 주차하기엔 마땅치 않았다.


“나탈리가 혼자 가서 사와야겠다.”


옴마가 커피를 사러 간 사이, 미어캣이 된 구름이.



“구름아! 엄마를 찾는거야? 아빠를 지켜주려고 경계하는거야?”


대꾸없이 두리번거리기만 한다. 따아 두 잔을 사온 나탈리에게 미어캣 얘길 해주었더니, 내가 차에서 내려도 구름이가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하아.... 이거 사알~ 짝 느낌이,, 엄마가 내리면 엄마를 찾는거 같고, 아빠가 내리면 엄마를 지키는거 같은데....)


해는 눈부시게 밝았고, 넓은 땅과 푸른 하늘이 합심해 만든 공기가 향긋한 커피향과 섞이며 지금의 모든 것을 평온하게 만들어 주었다.





[10:00 am]


광활한 대지를 달려 루트 66 박물관(Route 66 Mother Road Museum)과 남서부 철도 박물관(Western America railroad museum)에 도착했다.


1926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카고까지를 연결하는 총 3,945km의 “루트66” 도로가 개통됐는데, 그 길 위에 자리한 마을이 바로 이곳 바스토우다. 이곳은 1800년대에 불어닥친 골드러시의 여파로 서부 철도의 중심지가 되었고, 그걸 기념하기 위한 박물관 두 곳이 이곳에 나란히 붙어있는 것이다.

박물관 내부는 입장료가 있어서 들어가지 않았지만, 주변의 모습을 둘러보니 예전 사람들이 어떻게 지냈을지 대략 가늠해 볼 수 있었다.


머가 그렇게 신난건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구름이.


“일루와! 구름아!”



갸우뚱거리며 모른척 할 뿐, 오지 않는다.


“구름아! 아빠 간다!!”


(아놔.. 저xx)


구름이는 말을 다 알아듣지만, 지가 듣기 싫은 얘기는 고개를 갸우뚱대며 못 알아 듣는 척을 한다. 하지만 나에겐 비장의 무기가 있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간식을 꺼내는 것처럼 뽀시락거리면 여지없이 귀를 팔랑거리며 달려온다.


“훗!! 그럼 그러치!!!”


(간식이 어딨냐 이것아!!ㅋㅋㅋㅋㅋㅋ)


이곳을 뜨기 전, 급하게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들른 '99¢ stores'



매장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고, 그 크기를 보며 참 미국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많으면 하루종일 구경해도 좋을법 했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없기에 커피 마실 컵과 쓰레기 담을 봉투만을 구매하고는 걸음을 재촉해야했다.


“나탈리! 내가 점심 먹을 곳 찾아놨어. 이 중에서 골라봐.”


콜드브루마저 실패한 아침, 나는 소파에 앉아 이동경로를 검색했고, 점심시간쯤 지나가는 마을에 중식, 양식, 패스트푸드점 등 각각 장르가 다른 네 군데의 식당을 찾아 놓았었다.


“오~~~~ 오빠!! 준비성 죽이는데!?”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가 좋다.


‘올치!!’ 했을 때, 구름이도 이런 기분이겠지?


(나탈리! 긍데, 왜 나는 간식이 없어..??)


나탈리는 미국에서의 첫 점심식사로 미국식을 선택했다.






[11:50 am]


“베이커(Baker)”


바스토우로부터 60마일(96km)정도를 달려 도착한 마을!


이곳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휴게소처럼, 차로 이동하는 사람들에겐 꼭 필요한 동네였다. 차에 기름을 채우고, 점심을 먹으며 쉴 수 있는 곳.


(주유소가 비싼건 안비밀..)


데니스 (Denny's)의 넓은 주차장 한켠에 캠핑카를 주차하고, 개모차(유모차)를 펼쳤다.



“개가 무슨 유모차를 타! 유모차는 안돼! 절대 안돼!!”


불과 1년전,


나탈리가 조심스럽게 꺼낸 유모차 얘기에 내가 했던 말이다. 그땐 남들 시선이 신경쓰였다. 하지만 구름이를 키우며 그 필요성을 깨달았다. 식당에 갈 때나 비가와서 산책이 어려운 날에는 개모차가 정말 유용했고, 어떤 견주들은 비가와도 산책을 하지만, 털찐 구름이에게는 가능하지 않았다.


(아니, 가능하지 않은 건 아니고, 털찐 구름이야 멀해도 좋겠지만, 산책하고 들어와 말리고 어쩌고 할 생각에 엄두가 나질 않는다..)


구름이는 아직 어려서 그렇지만, 노령견에게는 절대적 필수품이다. 처음엔 어색했던 개모차, 이제는 없어선 안 될 소중한 아이템이 되었다. 개모차에 구름이를 태우고 다닐 때면 가끔 이런 말이 들릴 때도 있다.


‘개팔자가 상팔자구만!’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얘기다.


(대부분 얼큰하게 자신 어르신들의 말씀..)


하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나에겐 그러한 말보다 구름이가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오빠! 여기 애견동반이 될까?”

“일단 들어가보고, 안된다고 하면 포장해서 차에서 먹으면 되지 머!”


가마에 탄 솜사탕을 뫼시며 들어오는 아시아인 두 명이 재미있었는지, 매니저가 웃으며 자리를 안내해주었다.



(미국은 역시 Pet-friendly의 나라!!)


우리 둘 모두에게 메뉴판을 주지만, 나는 메뉴판을 보지 않는다. 나는 그저 와이프가 고른 음식을 맛있게 먹고, 리액션만 잘하면 그만!


가정의 평화가 세계평화다.


주문한 음식이 테이블 위로 올려지자 구름이의 코는 바쁘게 움직였고, 허공을 향해 킁킁대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구름이 기여워!!”


그 와중에 나는,


“나이스나이스~!!! 최고최고!! 와~ 진짜 잘 골랐네!”


(타이밍을 잘 맞춘건지,, 못 맞춘건지 모르게따...)


음식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살 찔만 한 것들이었지만, 역시나 그런 비주얼의 음식 맛은 좋을 수 밖에 없다.


인천공항에서부터 타이레놀과 애드빌을 번갈아 먹으며 컨디션을 유지중인 내 상태를 의식한 건지, 나탈리가 잘 먹지 않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감기를 옮기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했지만, 다행이도 나탈리는 건강함을 유지했다.






[01:10 pm]


끝없는 대지를 운전하는 동안, 문득문득 옆을 바라볼때면 행복해하는 나탈리와 구름이가 보였다.


(그래, 마자! 이럴려고 돈 버는거지! 별거있나..)


몸이 좀 아프면 어떠랴, 지금 이 순간이 즐겁고 행복하면 됐다.


“고마와 나탈리!”

“응? 머가?”

“그런게 있어!ㅎㅎ”

“나도 고마워 오빠!”

“머가?”

“그런게 있엌ㅋㅋㅋㅋㅋㅋ”




(근데 나 언제까지 달려야 되니?)



한국에서 동선을 짤 때,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1. 남쪽에서 출발하여 북쪽으로 올 것인가?

2. 북쪽으로 출발해서 남쪽으로 내려올 것인가?


1번은 자연인 체험을 먼저 하고, 라스베가스에서 피날레를 장식하는 루트였고, 2번 루트는 라스베가스를 맛보고 대자연으로 떠나는 것이었다.


어떻게 할까 선택의 기로에서 갈팡질팡할 때, 나탈리의 한마디가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해주었다.


“오빠! 라스베가스에서는 호텔에서 자고 싶어!”


1번 루트를 선택하면 라스베가스의 숙박 일정이 주말에 딱 걸리는데, 라스베가스 주말 숙박비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2번 루트를 선택했고, 오늘이 바로 그 라스베가스에서의 하룻밤이다.



“오빠! 호텔 체크인 하기전에 들러야 할 곳이 있어!”


“응??? 어디??”





(어딜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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