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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모험의 시작

by 수성




캠핑카 업체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꺼낸 짐 수준은 거의 이민 수준..


(구름이 이민... )






[01:20 pm]

짐을 다 들고 움직이는건 가능하지 않았다. 중요한 물건이 든 백팩만을 메고, 나머지 짐은 문 앞에 두었다.


(저걸 다 어찌 들고 왔을까....)


카운터 앞에 서서 문 밖의 짐을 쳐다보는데, 구름이가 나를 올려다 본다.


“구름아, 니 짐이 젤 많아. 너 여기 이민 온 거 같애.”


듣는 체도 않고, 돌아서 엄마에게 가는 구름이..


(후우....)


다가온 카운터 직원에게 예약서류를 보여주며 차량을 요청하자, 예약시간보다 늦었다는 이유로 다음 픽업 시간인 3시에 차를 내줄 수 있단다.


미리 받을 수 없겠냐 사정해봤지만, 대답은 “No” 였다. 이럴땐 정말 대한민국의 융통성과 빠른 일처리가 대단하고 고맙게 느껴진다.


(1시간반 동안 여기서 뭘하냐........)


머가 그리 좋은지 깔깔거리며 신이 난, 천진난만한 모녀. (니들은 시차적응도 없니..?)







[02:50 pm]


"Mr. Kim!"


(그래도 시간은 칼같이 지키는구나..)


밖으로 나와서 캠핑카 주변과 차 내부를 둘러보며 사용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서류에 사인(sign)을 했다.



치밀하게 계획한 여행 일정표에는 LA를 떠나기 전, 들러야 할 마트와 Liquor Store(술을 파는 곳)의 위치 그리고 도착시간과 출발시간까지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저녁에 먹을 음식과 마실 물, 여행 첫 날을 축하할 와인까지 챙겨 출발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어느새 계획보다 두 시간이나 지나버린 상황. 우리에겐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첫 목적지는 바스토우(Barstow)다!!







130 miles (209km) / 예상소요시간 : 3시간


구글맵상으로는 2시간17분이 찍혔지만, 그건 승용차 기준이다. 캠핑카는 무게와 크기 때문에 일반 차량처럼 속도를 낼 수 없으니, 네비게이션에 찍히는 시간보다 30분에서, 많게는 50분까지 얹어서 계산해야한다.




[03:10 pm]


운전석에 앉아 준비해 온 핸드폰 거치대를 설치하고, 네비에 목적지를 입력하는 동안 나탈리도 구름이도 나름의 출발 준비를 마쳤다.


“출발~~~~~~~~”


(차가 너무 크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한다...)


차 창문을 열고,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우리는 하이파이브를 했다.


“출바알~~~~~~~~ 구름이도 고고씽~~ 얏호~~”


차의 크기는 도로 한 차선을 꽉 채울만큼 컸다. 나탈리와 번갈아가며 운전하려고 했던 생각은 아주 순진한 생각이었다.


양쪽으로 바짝 붙어있는 차량들이 신경 쓰였지만, 나탈리가 운전하는 캠핑카의 조수석에 앉아 있는 것보다 덜 신경쓰이리라..


“난 운전 못하겠다 오빠!”

“그러게.. 내가 다 해야겠네!”


막히는 LA 도심을 빠져나가는 일은 역시나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 갔지만, 어찌 할 방법은 없었다.


“오빠! 음악이나 듣자!”


조급해보이는 나를 위해 나탈리가 내려준 처방이다. 나탈리는 DJ 쌍싸다구를 날릴만큼 음악 선곡이 훌륭하다. 준비해온 AUX 선을 본인 핸드폰에 연결하고는 음악 선곡을 신중하게 하는 나탈리.


“아~~~~ 음악 죽이네~~”


차간거리와 차선변경으로 눈과 어깨는 긴장됐지만, 귀 만큼은 호강이었다.


팔을 길게 뻗어야만 나탈리 손을 잡을 수 있을 만큼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의 거리가 멀었는데, 구름이 카시트가 거기에 딱 들어맞았다. 구름이도 얼씨구나 자기 자리를 잡았다.



(옴마 아빠 요기 보세용~ 찰칵!!)

(구름이는 셀카 삼매경 중..)


LA 도심을 빠져나오니 차들이 달리기 시작했고, 나도 그제서야 힘껏 악셀을 밟았다.


그런데 그 순간,

구름이가 나탈리의 무릎 위로 뛰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어머! 얘 왜이래? ㅋㅋㅋㅋㅋㅋㅋㅋ”

“오오~~~ 구름이~~~~”


캠핑카는 그 육중한 무게를 이끌기 위해 탱크 같이 강한 엔진을 갖고 있다. 속도를 내기 위해 악셀을 밟자, 구름이 카시트 아래가 크게 진동한 것이다. 구름이는 자존감이 강한 아이라 우리가 들쳐업지 않는 이상, 먼저 다가와서 안기지 않는다. 나탈리도 나도 처음보는 구름이 모습이 귀엽고 신기하기만 했다.


“내려올 생각을 못하게 아주 힘껏 밟아주겠어!!”




[04:00 pm]


뻥 뚫린 도로를 시원하게 달리는 이 기분! 하지만,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것 같았던 것도 잠시,, 그 시원한 마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시원함을 넘어 등골이 서늘해지는 이 기분....... 무언가가 생각났다..


퍼스널 키트!!

(OMG!!)

캠핑카의 다양한 옵션 중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었다. 온라인 예약으로는 선택이 불가능했고, 현장에서 직접 요청해야 받을 수 있는 것! 스푼, 나이프, 포크 같은 주방도구와 이불, 베개 등 침구류가 들어있는 패키징이 바로 ‘퍼스널키트’다.


1시간반이나 여유가 있었음에도 기다리는 것에 짜증만 내다가 ‘퍼스널 키트’를 신청해 받는다는 걸 깜빡한 것이다.


(애먼 데 정신이 팔리면, 될 일도 안 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겠지.... 누굴 탓할 수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추위를 많이 타는 내가 한국에서 이불 하나를 챙겨왔다는 사실.. 지금 우리 캠핑카엔 이불 외에 아무것도 없다.


(아놔 진짜.........)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해가 지기 전 목적지에 도착해야 한다는 것. 체력은 바닥이지, 시차 때문인지 약기운 때문인지 정신은 없는데, 긴장하느라 몸은 경직됐지...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퍼스널키트를 안받아온 사실을 나탈리가 모르는 것! (이게 젤 무서움....)


나는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 없이 캠핑카를 스포츠카처럼 몰아야 했고, 악셀을 밟으면 밟을수록 구름이는 나탈리의 품을 더 깊게 파고 들었다.









[07:00 pm]


여기는 바스토우!!


우린 시간이 없었다. (아니 내가 시간이 없었다) 나탈리는 모든게 순탄하게 가는 줄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았으니까..


우선은 필요한 물건을 사야했기에 나탈리를 마트 입구에 내려주며 말했다.


“적어논 것만 사서 바로 나와! 알았지?”


캠핑카를 마트 앞에 주차하고, 구름이를 주차장 바닥에 내려놓고는 구글맵을 열었다.


“아빠는 할 일이 있으니까, 구름이 너는 니가 알아서 해결해!”


인근 캠핑장을 검색하며 전화를 돌렸다.


그런데...


“Please leave a message”


두 군데나 전화를 했지만, 자동응답기만 돌아갈 뿐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절망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눈 앞의 널찍한 주차장을 바라보며, 안되면 여기에서 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호~ 괜찮은 생각인데?! 그래!! 마자! 이건 캠핑카잖아!?)


기분이 급 좋아지며,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크흐~~ 노을마저 예쁘구나!”


출구 앞에서 나탈리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구름이를 바라봤다.


“구름아! 옴마는 마트만 들어가면 함흥차사다잉~~ 그치?”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다 진짜ㅋㅋㅋㅋㅋㅋㅋ)


여유가 생기면 시야가 넓어진다더니, 마을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붉게 물든 하늘 아래로 느긋하게 걸어가는 사람들, 식당의 네온사인, 크고 널널한 주차장, 해질녘의 평화로움까지. 그리고는 곧 하얗고 새빨간 자동차 그림과 글씨가 내 시선을 고정시켰다.











<캠핑카 야간 주차 금지>



(오 마이 갓!!!!!!!!!!!!!!!!!!!!!!!!)


해가 지고 있어서 깜깜해지는건지,, 내 눈 앞이 깜깜.. 해지는건지.....


식은땀이 흐르고, x줄이 타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다시 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정신없이 검색을 하며, 동시에 마트 안을 쳐다봤다.


(제발… 조금만 늦게나와라 조조..금만 느..늦게 나와라.. 제발.....)

그 순간,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


“Hello~”


오랜만에 전화로 들어보는 본토형 목소리에 나는 연신 “I’m sorry!”를 남발했으나, 계산대에 물건을 올려놓는 나탈리의 모습이 보이자 갑자기 귀가 뚫리고 입이 뚫렸다.


(과학적으로도 의학적으로도 설명이 안됨..)


자리가 딱 하나 남아있다는 말에 5분안에 가겠다고 큰소릴 치고는 전화를 끊었다.


(하늘이시여,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닷!!!)


멀뚱멀뚱 쳐다보는 구름이.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구름아!”


해는 거의 떨어졌고, 배도 고파왔다. 마트 옆 중국 음식점에서 저녁으로 먹을 음식을 포장한 후 부리나케 출발해야 했다. 5분안에 가겠다고 했으나, 이곳에서만 10분을 더 소진하고서야 움직일 수 있었다.






[07:40 pm]


캠핑장에 도착했을땐 해의 끝자락이 입구에 걸린 성조기를 간신히 붙잡고 있는 듯 했다.



Knock, Knock, Knock!


트레일러를 개조한 아담한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귀엽게 꾸며진 책상 뒤에서 한 남자가 환한 미소로 반기며 농담을 건넸다.


“Five minutes?”


나는 그가 영국가수 에드시런을 닮아서 신기하게 쳐다봤다.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는 에드형 말을 다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ㅋㅋㅋ 작성할 서류 몇 곳에 싸인을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에드형은 자신의 카트를 따라오라며 자리까지 에스코트 해주었고, 주변 캠퍼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카트는 조용히 움직였다.


나는 주차까지 지켜본 후 돌아가려는 에드형을 붙잡았다. 캠핑카를 받을 때 설명을 들었으나 귀로는 거의 알아듣지 못했고, 시범을 보이는 행동을 눈에 담았을 뿐이었는데, 그마저도 사막을 달리는 동안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에드형의 친절하고 꼼꼼한 설명 덕에 나는 청수, 오수, 전기 연결을 무사히 마치고는 차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땡쓰!! 에드브로!!!)


차 안에서는 나탈리가 저녁 준비를 하는 중이었고, 나는 급하게 출발하느라 때려 넣어놨던 짐들을 하나 둘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린 말하지 않아도 콤비가 척척 잘 맞는다.


캠핑카는 앞으로 8박 9일동안 우리 가족의 이동수단이자 호텔, 식당과 카페 역할까지 도맡아야 한다. 나는 침실에 두 명, 테이블을 내리고 매트를 깔면 한 명, 운전석 위 공간에 두 명까지 잘 수 있는 큰 캠핑카를 빌렸고, 그 이유는 공간을 최대한 넓고 효율적으로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져간 트렁크 세 개(나탈리꺼, 구름이꺼, 내꺼..)는 모두 운전석 위 공간에 펼쳐 정리했고, 운행 중 밑으로 떨어질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준비해 간 노끈과 테이프로 단단히 고정시켰다.


첫 날의 긴장과 초조함은 캠핑카 내부가 조금씩 자리를 잡고 제 모습을 찾아갈수록, 서서히 풀려갔다.


“오빠, 밥 먹자!”






[08:20 pm]


몸이 정상은 아니지만, 첫 날을 어찌 그냥 넘기랴..



“오빠, 운전하느라 고생했어”

“고마와! 우리 추억을 마니마니 만들고 가자!! 건배~!!”

“구름이도 건배~~~!!”


몸은 벌써 3일이 지난 듯한 피로감을 느꼈지만, 맥주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알딸딸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캠핑장에 화장실이 다 있을꺼야. 그치?!”

“근데?”

“우리 왠만하면 캠핑장 화장실을 이용하는게 어때?”

“더러우면 우째?”


(나탈리는 화장실에 민감하다)


“그럼 1번(작은거)은 차에서, 2번(큰거)은 캠핑장 화장실에서! 이머전시 상황을 제외하고! 어때?”


(왜냐면 내가 치워야하거등.....)


“조아!!”


첫 날은 청수와 오수, 전기까지 모두 연결했지만, 캠핑장에 도착해 청수와 전기만 연결해도 사용하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걸 나중에 알게 됐다. 오수는 당장 연결하지 않아도 차량 외부 밸브를 잠궈놓으면 흐르지 않고, 오수통에 저장되기 때문이다. 다음날 출발전 외부에서 선을 연결하고 밸브를 연 후, 오수를 비우고 떠나면 된다. 이동 중에는 차량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청수와 오수를 모두 비우고 출발했다.


침대에 누워 우여곡절이 많았던 하루를 돌아보며, 첫 날을 무사히 보낸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구름이가 제일 먼저 잠이 들었다.


“잘자 나탈리! 잘자 구름이!”

“잘자 오빠! 잘자 딸래미!”




미국 캠핑카 여행에 대한 꿈이 이루어졌다.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 오늘의 일기



* 세상은 그대로다. 나 혼자 긴장했다가, 나 혼자 X줄 타고, 나 혼자 예민해지고, 나 혼자 짜증났다가, 간사해지고,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가, 금방 나약해지고, 하늘에 기도를 하고, 아주 그냥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염병하고..


* 작은물 24개 한 세트(나탈리는 물쟁이 공주임)와 큰물 6개들이 한 세트, 콜드브루, 얼음, 치약, 당이 떨어질 것을 대비한 초콜릿 그리고 새뮤얼아담스 맥주 6개들이 한 세트, 두 개에 15불짜리 베개 한 세트를 구매함.


(베개는 여행동안 15불 이상의 가치를 해주었다)


* 몸이 아프니 예민했지만, 오히려 그 긴장상태가 오늘의 나를 지탱하게 해준 것만 같다.


* 중국음식점에서 받은 포춘쿠키.

“네가 의심하는 모든 것들이 곧 사라질 것이다” - 아내가 고른 것

“오늘이 너의 행운의 날이다” - 내가 고른 것



아C! 먼 놈의 닭이 새벽 3시부터 우냐?



꼬꼬댁 소리에 잠을 깨 ‘여기가 어디지?’ 하고 한참을 두리번거린 첫 날...




‘꼬끼오~~~~~~~~~ 꼬꼬꼬꼬꼬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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