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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라스베가스

[ 어떤 이야기 ]

by 수성




“나탈리! 우리 어디 가는거야??”


“가보면 알아ㅋㅋㅋㅋㅋㅋㅋ“







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ㅇㅇㅇㅇ아ㅏㅏㅏㅇㅇ









나탈리가 찍어준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다. 계획에도 없었고, 미리 알려준 적도 없는 일정이었다..




(저기요.. 빽미러 안보이거등요..?)






[02:30 pm]


주변을 둘러보니, 클리닉도 보이고 타투샵과 식당도 보이는 작은 규모의 몰(mall)이었다.


주차 후, 나탈리 뒤를 따르자 어디로 가는지 왠지 알 것 같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ㅇㅏ... 저기구나...)



‘pet 블라블라 shop'



뒤에서 보이는 구름이 옹뎅이엔 덩실이가 올라타 덩실덩실 거렸다.


“꼭 사주고 싶은게 있었어!”

“누구한테?”

“..............”


(눈치없이 물어봐따....)





지꺼 사러온 줄은 귀신같이 아는 구름이.


나탈리는 구름을 타고 떠다니는 신선처럼 발걸음이 가벼웠고, 날카로운 눈빛과 몇 번의 손동작으로 바구니에 물건이 촥촥 쌓일 때면, 내 팔과 어깨는 점점 아파갔다.


촉촉한 코를 킁킁대며 만족스런 미소로 옴마를 쳐다보는 구름이와 팔과 어깨까지 아파오는 병자내시짐꾼드라이버...


(윗분들은 역시, 아랫것 아픈건 아웃오브안중......)






[03:30 pm]


양껏 장을 보고 나온 나탈리와 구름이의 기분은 하늘을 나는 것 같았고, 내 영혼은 하늘을 올라갈 것 같았다.


“숙소에 바로 가봐야 머 할게 있나?”


(나탈리 피셜이고, 나는 들어가서 쉬고 싶따...)


”오빠! 우리 프리미엄 아울렛 가자!!“


땡볕 아래에서의 관광은 본인도 엄두가 안났나보다. 어제 밤은 추워서 경량패딩을 입을 정도였는데, 낮은 무더웠다. 만약 나탈리가 땡볕 street 을 선택했다면, 나는 아마 황천 street 으로 갈아탔을지 모른다.


도시의 운전은 확실히 더 신경이 쓰인다. 게다가 아무 생각없이 주차장에 들어섰다간 오픈카가 될 수 있으므로 더더욱 긴장해야 했다.


여기서 신기한 사실을 발견했다. 긴장을 할 수록 몸이 아프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긴장이 풀릴 때 아파오기 시작했다. 특히 차 정박을 끝내고 샤워까지 마친 밤에..


그러고 보니 출국 이틀 전, 아프기 시작한 것도 일을 하며 가졌던 긴장감을 놔버리며 시작된 것 같았다.


하나 배웠다. “적당한 긴장”은 삶을 건강하게 유지시켜주는 좋은 재료라는 사실을!


(적당한 긴장이다! 과한 긴장 말고...)



아울렛 주위를 두 바퀴나 돌고서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았으나 1시간도 안있을 생각인데, 1일 주차요금을 내야 한단다.


(what the....)


하지만 여행에서 돈 생각은 접어두자.


우리 부부는 연애시절부터 매달 넣는 여행계 통장이 있다. 그 곳간에 곡식이 충분히 쌓이면 놀러갈 때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여행을 할 땐 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몇 푼 아끼려다 기분만 상해져 여행을 망칠 수도 있고, 더 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우리의 곳간은 미국으로 오기 전, 풍년이었다.



외국인들만 보이는 여주프리미엄아울렛같은 이 느낌적인 느낌! 우리의 목적은 쇼핑이 아니었기에, 그저 각자의 시간을 즐겼다.


가마에 탄 구름공주는 시원한 바람을 즐겼고, 나탈리는 냉장고에 붙여놀 마그네틱을 고르며 그 시간을 즐겼다. 나는.. 즐겼다...


무더운 곳을 걷다보면 목이 마르는건 당연지사. 눈 앞에 보이는 별다방을 보며 나탈리가 말했다.


“오빠! 아아 한잔 사줄까?”

“물어봐줘서 고마와. 근데, 나탈리가 한잔하면 난 그거 한 모금만 마실께!”




가마를 메는 내시가 제일 목이 마를테지만, x 물에도 순서가 있는 법. 시원하게 바람을 쐬고 계시는 구름공주님께 물을 대접한 후, 테잌아웃한 아아를 선 마마님, 후 내시 순으로 목을 축였다.


“마마님, 공주님과 이제 입궁하시지요....”





[05:50 pm]

‘차에서 짐을 다 뺄 필요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그 짐은 다 누가 드냐?’ 로 부터 시작되었다.


캠핑카는 호텔에서 도보로 6~7분 거리에 있는 지정 주차장에 세워야 했다. 땅에 번호가 써있는 빈자리 아무곳에 주차를 하고, 그 번호를 정산기에 입력 후 결제를 하면 티켓을 냅다 뱉어내는 정산기. 그 티켓을 대시보드 위에 올려놓으면 된다. 주차 요금은 1 night 에 5달러..


하룻밤에 꼭 필요한 짐들만을 작은 캐리어 하나에 몰아 담는데, 80%가 구름이 짐이다.


(니 짐은 니가 들었으면 조켓따..... )


ㅋㅓ헉!!!!!!!!!!!!

구름이가 쳐다본다..



역시나 라스베가스의 호텔답게 입구에서 로비까지 가는 길은 카지노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네온 조명이 빛나는 천장과 슬롯머신이 내는 특유의 음악, 동전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환호성까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듯 했다. 신기한 장면에 나탈리도 구름이도 눈을 떼지 못하고 걸었다.


나에게 다행인건 여기저기서 뿜어내는 담배 연기 때문에 나탈리가 구경하고 가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탈리는 담배냄새를 싫어한다!)


방으로 들어와 내시가 짐을 정리하는 사이, 시녀는 구름공주의 식사를 준비했다.


(식사 순서는 선 구름, 후 휴먼..)


구름이는 식사가 만족스러우면 밥을 차려준 사람에게 다가가 두어 번 핥아준다. 고맙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오늘은 배부른 몸을 이끌고, 시녀에게 친히 발걸음 하셨다.


“고맙다 시녀야”


공주의 만찬이 끝났으니 드디어 시종의 차례가 돌아왔고, 따로 예약을 하지 않은 터라 길을 걸으며 마땅한 곳을 찾아야 했지만, 저녁시간대인 지금, 예약없이 레스토랑을 들어가기란 쉽지가 않다. 이곳은 라스베가스다. 더군다나 우리는 구름이까지 있어 선택의 폭이 더 좁을 수 밖에 없었다.




식당을 들어서려다 퇴짜를 맞고 발길을 돌린 것만 다섯번째. 그 사이 해는 완전히 모습을 감췄고, 라스베가스는 자신의 본 모습인 밤의 여신으로 돌아왔다.



나는 20대때 라스베가스를 와본적이 있다. 그 당시 느꼈던 라스베가스는 환상의 도시였다. 이런 도시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게 신기했고, 그 화려함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때 꿈꿨던 나의 미래는 라스베가스의 밤처럼 화려하게 빛나는 것이었다. 화려함을 동경했던 시절.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던 시절. 젊음이라는 패기와 용기 그리고 화려함이라는 막연한 희망 한스푼이 섞여, 꿈으로 부풀었던 시절이었고, 가장 용기있던 시기이자, 동시에 철없고 가장 위험했던 시기였다. 다행이도 큰 사고없이 20대를 지나온 걸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금 나의 삶은 라스베가스의 밤처럼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나탈리와 구름이와 함께하는 우리의 ‘시간’ 만큼은 충분히 화려하다.


나이를 먹고 보니, 이제 조금 알겠다.


20대때 동경했던,

눈에 보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들이 바라봐주는, 그런 화려함보다 우리만의 소소한 소중함이 더 화려하다는 사실을!!






[08:00 pm]


우린 많이 걸었고, 배도 고팠다.

눈에 보이는 개미라도 주워먹을 판인데, 나탈리가 한 레스토랑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오빠! 여기 자리있대!!”

“오~~ 진짜? 오예~~~”


운이 정말 좋았다. 가격을 보고는 흠칫했지만, 여행에서 돈 생각은 안하ㄱ…ㅣ…


찔금찔끔 나오는 음식은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으나, 눈 앞에 보이는 분수쇼가 가격에 포함이려니 하고 만족했다.


“아~ 나이스~!!! 최고최고!! 여기 기가 막히게 잘 잡았네!”


(박수박수)



아내와 딸래미와 함께 벨라지오 분수쇼를 보며 저녁을 즐기는 이 시간...... 갱년기는 당연히 아닐텐데 소소한거에 감동받아 눈물이 나는 요즘이다.


(그저 갬성적인 사람.. ㅜㅠ...)


“함께 해줘서 고마워. 나탈리! 고마워 구름이!!”

“나도 같이 와줘서 고마워. 구름아! 구름아빠!”



(역시 구름이가 먼저다...)







[09:10 pm]


오늘밤 많은 곳을 다 갈 순 없다. 그래도 라스베가스의 처음이자 마지막 밤이닌 만큼 나탈리와 구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었다.


베네시안 호텔 광장과 캐널 내부, 그리고 프리몬트 거리. 이곳을 떠올린 이유는 20대때 가장 신기하게 봤던 곳이고, 다시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리몬트 거리는 멀어서 아예 얘기도 꺼내지 않았다.


(날 위한 루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호텔 광장과 캐널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지금의 감흥과 기분이 그때의 것과 달랐지만, 나는 그때보다 지금이 더 좋다.


그땐 혼자 였고, 지금은 와이프와 딸이 있다.




휘황찬란한 불빛들, 길게 줄지어 서있는 리무진들, 눈부시고 현란한 조명은 여전히 매혹적이었지만, 유흥의 도시를 넘어 환락과 환각의 도시처럼 느껴졌다. 쾌락의 모든 것, 욕망의 모든 것...


그 모든 쾌락과 욕망으로의 초대가 이런 모습일까 싶을 만큼, 라스베가스의 거리는 온갖 것들에 취해 있었다.


그 때와 같지만, 다른 느낌..


(내가 노땅이 된거다..)


입고 다니는 건지 벗고 다니는 건지 눈을 의심하게 되는 의상들, 거리에 서서 또는 길거리를 걸으며 담배를 피는 사람들. 흡연자들에겐 천국인 이곳이 우리같은 비흡연자에겐 무겁고 숨막혔다.


발에 치이는 인파로 구름이를 개모차에 태워 다녀보지만, 육교로 건너야하는 불편함에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나는 지치고, 배고프기 시작했다.


“나탈리, 배 안고파?”

“배고파..”

“우리 그만 보고, 머 포장해서 방에 가서 먹을까?”

“응! 그러자!!”


나탈리도 같은 마음이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라스베가스 관광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와 머리와 몸에 밴 퀘퀘한 담배 냄새를 씻어낸 후, 포장해 온 피쉬앤칩스와 맥주를 세팅했다.


“오늘도 고생했어. 오빠!! 건배~”

“나탈리도 구름이도 고생 많았어! 건배~~!!”



미국여행은 이제 시작이다.

컨디션을 잘 유지해야겠다.





“라스베가스 안녕~~~~”






{어떤 이야기}



“오늘은 오빠 먹고 싶은거 먹자!”

“그래? 난 아무거나 다 조은데!?”

“오늘은 오빠 먹고 싶은걸루!”

“오오~~~ 그래?! 그럼 김치찌개 묵을까?”

“아니, 찌개 말고!”


.......


“그럼 생선구이 묵으러 갈까?”

“음.. 생선말고는 없나?”


........................



“그..럼.. 머.. 쌀국수?”

“나 점심에 면 먹어써!”


(아오!!! 내가 먹고 싶은거 먹자며.. C..!!)



“어?! 오빠! 저기 떡볶이집 새로 생겼나보다!”

“그. 럼.. 떡볶ㅇㅣ 먹을..까?”

“그래!!”


..................








나는 와이프의 선택을 존중한다.

내가 먹고 싶은건, 그냥 나탈리가 먹고 싶은거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어차피 길은 정해져 있으니까.. 짜증을 낼 필요가 없다. 보통은 식당 몇 군데를 찾아서 보여주고, 그 중 나탈리가 끌리는 곳을 가지만, 그것도 본인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식당을 직접 찾아본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그저 와이프의 선택에 적절한 멘트와 박수를 곁들인 리액션만 잘하면 된다.


“나이스나이스~!! 최고최고!! 아~ 여기 잘 찾았네”


(물개박수)




We are the world!!






(데니스 식당 찾아논, 나 색히를 칭찬해!! 토닥토닥)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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