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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 Jul 06. 2024

아빠에 대한 마음 (2)

요즘들어 친구 결혼식에 참석하는 일이 많다. 그럴 때마다 내게 아주 이질적으로 다가오는 그림이 하나 있는데, 울먹이는 신부와 그런 신부를 격려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그것이다. 아마도  훈훈한 장면 앞에서 흠칫 놀라는 사람은  하나뿐일 것이다. 나는 연애를 나쁜 것으로 배웠고, 그걸 가르친 사람은 아빠였기에 내게 금기시 되는 것이 타인에겐 격려시 된다는 사실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공부하는 ' 연장이다.


아빠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게 남자를 만나면 안된다는 말을 세뇌 수준으로 주입시켰다. 이유는 일관됐다. 이번에도 역시 공부하는 애라는 것이었다. 아빠의 관념 속에서 공부하는 애와 연애하는 애는 양립 불가능했다. 길을 가다가 학생 커플을 지나치면 쟤들은 공부 못하는 애들이라고 비웃었다. 그럴 때면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처럼 쌓였지만 나는 입을 닫았다.


나는 아빠가 내 휴대폰을 몰래 확인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빠가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였다. 남자. 세상의 반이 남자이고 그 비율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보면 의도하지 않아도 엮일 일이 있을 수도 있을 텐데, 아빠에게 그런 구구절절 핑계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빠는 아예 접촉의 여지 자체가 차단되도록 교육시켰다. 예컨대 남자 반장이 반 아이들에게 돌릴 공지가 있더래도, 아빠의 논리 구조에서 나는 여자를 통해 재전달 받아야 했다.


나는 '연애를 하면 안된다'까지는 따랐지만 그 이상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이상의 유난은 선의의 상대방에게도 미안한 일이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 보기에도 쪽팔렸으니까. 그리하여 잠들기 전 남자와 주고 받은 모든 연락을 삭제하는 게 나의 루틴이었다. 공지든, 정보 교환이든, 일상적인 대화이든. 전체 삭제를 누르면 간편했겠지만 그건 무언가를 숨기는 것 보여 작위적인 느낌이었기에 나는 하나, 하나 수작업으로 지웠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아빠는 내가 잠든 줄 알고 책상에서 충전 중인 핸드폰을 집어 갔다. 나는 자고 있지 않았다. 다만 아빠가 싫어서 자는 척 했을 뿐이었다. 문제는 휴대폰을 정리 하고 자는 척 하는 동안 문자가 온 것이었다. 남자 이름의 누군가에게서. 아빠는 쌍욕을 퍼부으며 전화를 해야겠다고 했다. 다행히 엄마가 아빠를 말렸다. 엄마가 알기론 여자애라고, 여자 중에서도 남자 이름을 쓰는 애들이 더러 있지 않냐고. 그러나 엄마는 아빠의 방법에 우려를 표했지, 공부하는 애는 남자와 연락을 하면 안된다는 말도 안되는 정언 명령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순간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불 안에서 숨 죽여 아빠가 통화 버튼을 누르지 않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이불을 박차고 나가서 휴대폰을 뺏어드는 것, 내 휴대폰을 왜 몰래 보냐고 문제 제기 하는 것, 상대방이 누구든 무슨 상관이냐고 따지는 것. 나는 그중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다음 날 확인한 문자에는 별 내용이 없었다. 영어 자습서 좀 빌려주면 안되냐는 부탁이었다. 나도 그 친구에게 참고서를 빌린 적 있었기에 당연히 OK 답장을 보내야 하는 것이었고. 허무했다. 그러니까, 고작 이런 문자도 발신자가 남자라는 이유로 나는 욕설과 두려움의 밤을 견뎌야했다. 그렇게 공부 타령 하면서 남학생과의 정보 교류는 결코 용납되지 않았다. 남자면 어쩔건데? 만약 아빠가 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면, 해서 무어라 욕설을 퍼부었다면, 다음날 나는 학교에 어떤 얼굴로 갔을까. 끔찍하다. 가설로도 상상하기 싫다. 다음날 엄마는 내게 그 친구 이름을 물었다. 나는 어떻게 알았냐고 되묻지 않았다. 그냥 여자 애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미심쩍은 얼굴이었지만 본인도 찔리는 게 있는지 더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그 후 남자라면 휴대폰 번호를 저장 자체를 하지 않았다. 만약의 만약이라도 대비하기 위해서.


성인이 되고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빠는 대학생이 된 내가 연애라도 할까봐 엄청나게 경계했다. 연애를 항상 연애'질'이라고 칭하며 가치를 격하시키면서, 공부 못하는 애들은 연애질이나 한다며 저질스런 행위로 싸잡아 비난했다. 아빠의 화법은 교묘했다. '너 연애 하지마!'가 아니라 '공부 못하는 애들은 연애질이나 한다며?' 하는 식으로, 마치 발화자가 자신이 아니라 널리 통용되는 진리를 내게 확인 받는다는 어투였다. 차라리 전자였다면 반항심이라도 들 텐데, 후자는 그냥 한숨만 나왔다. 아빠의 말 같지도 않은 가치관에는 나의 당연한 동의가 전제되어 있었다. 물론 공부와 연애의 상관관계에 대해 아빠가 내 의견을 물은 적은 없었다. 모든 조건이 같다면, 학업 능력이 우수한 사람이 더 가점을 받는 건 상식이 아닌가. 물론 이런 논리가 통할 사람이라면 내 휴대폰을 몰래 뒤지는 일도 하지 않았겠지.


대학생 때의 일이다. 내가 저녁을 먹으며 한 팀원과 해야하는 팀플의 고통에 대해 토로하자 아빠는 여자애가 어떻게 그러냐고 기겁했다. 나는 성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아빠는 나의 인간관계는 오직 여자로만 채워질 거라고 이미 정해놓고 있었다. 나는 그 팀원의 성별이 남자라고 말했다. 아빠는 1초만에 대답했다. 그럼 너랑 무슨 상관이냐고. 나도 모르게 낮은 탄식을 뱉었다. 그 빌런이 팀 활동에 어떤 해악을 미치고 있는지, 그 동안 나와 팀원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아 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팀 활동을 해야 할지 등등의 복잡한 감정들이 1초만에 부정됐다. 너랑, 무슨, 상관인데. 그 한 마디로. 남자라면 싫어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 것이었다. 아예 상관 없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이야기를 여기서 끝낼 수 있다면 나는 아빠를 떠올리며 이렇게까지 진절머리 치지 않을 것이다. 아빠는 정말 모순적인 사람이다. 아빠는 오빠와 남동생에게 여자친구를 사귀라고 닦달했다. 은근히 아들의 연애를 기대한 것이 아니라, 얼른 여자친구를 사귀라고 매일같이 잔소리를 퍼부었다. 오빠가 군인일 때, 면회를 가면서도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태우고 갔을 텐데 하며 내내 아쉬워했다. 남동생이 초등학생이었을 때, 짝궁이 자길 좋아한다는 소문이 돈다는 고민 상담에 아빠는 짜장면을 사줄 테니 집에와서 놀아라고 답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딸의 휴대폰을 훔쳐보며 남자의 흔적을 쥐 잡듯 파헤치던 아빠가.


여기에는 오빠와 남동생이 아빠가 정의하는 '공부 못하는 애'의 범주에 들어서 였을 수도 있다. 다만 아빠는 자신의 '공부 못하는 아들'의 여자친구로는 공부 잘하는 애를 바랐다. 오빠의 여자친구가 오빠랑 CC라는 것을 듣고, 아빠는 치우라고 했다. CC라는 건 오빠랑 같은 대학에 다닌다는 의미인데, 연애는 공부 못하는 애들이나 한다는 아빠의 논리에도 적합하고, '공부'라는 기준에선 누구 하나 아까울 것 없으니 천상의 커플 아닌가? 아빠의 논리 상 공부 잘하는 여자는 연애를 하면 안되잖아. 왜 자신의 공부 못하는 아들의 여자친구에겐 예외가 되는데? 아빠는 거지 같은 논리를 내게 당당하게 설파했듯, 거기서 파생되는 모순 역시 당당하게 무시했다. 단전에서부터 스트레스가 올라온다.


요즘 부쩍 내게 애인 있냐고 물어보는 친척들이 많다. 결혼할 나이가 되지 않았냐고. 나도 서른을 넘겼으니 어른들의 입장에선 얼마든지 물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아빠는 대답을 가로챈다. 얘는 공부하는 애라고. 나는 눈을 질끈 감는다. 내 주변 친구들을 보면, 집에서 결혼을 부추겨서 스트레스 받는 친구는 있어도 나처럼 남자라면 말도 못 섞게 하는 걸로 스트레스 받는 친구들은 아무도 없다. 특히 '너 남자 만나지마!'따위의 강압적 화법이 아니라, '얘는 남자 안 만나, 공부하는 애잖아' 하는 그 화법이 너무 싫다. 내가 마치 아빠의 세상 속에서만 통용되는 진리에 절대적으로 동의한다고 전제 하는.


물론 아빠 몰래 연애를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오래가진 못했다. 나는 연애를 할 때면 늘 불안했다. 아빠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아빠가 무서웠다. 찝찝했다. 그런 마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늘 주저했고, 무언가를 먼저 제안하고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게 어려웠다. 상대방이 그런 내게 실망할 때면 차라리 후련했다. 그걸 명분으로 관계를 정리할 수 있었으니. 방어 기제가 작동하는 것인지 좋은 마음으로 다가오는 사람도 밀어내는 쪽을 택할 때가 많았다. 상대방에게도 상처를 준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처음 꺼낸다. 아빠에 대한 나의 감정을 속속들이 아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하지 않은 말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엄두가 안났던 것도 있고, 무엇보다 부끄러워서였다. 파리채로 맞았던 기억을 꺼낼 때는 아팠다. 지금은 부끄럽다. 역시나. 수치심이 든다. 그런 자기는 엄마를 만나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그 아이에게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학대도 하면서, 왜 나에게는 그 어느 것도 혀용할 수 없는지, 그런 말을 할 때면 민망하진 않은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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