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교회오빠 때문에 >라고 써놓고 보니, 혹시라도 이 글을 읽게 되실 분들께서 ‘아하! 같은 교회를 다니던 선배 오빠가 목회자가 되었고 그 오빠랑 사귀다가 결혼을 했나 보다…’라고 오해하실 것 같아 옛날이야기부터 해보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무렵, 남편은 학교 동아리 선배 손에 이끌려 처음 교회에 왔다. 그날은 학생부예배가 있던 토요일이었다. 학생부 부회장이었던 내가 남편에게 다가가 “이름과 주소를 말해달라” 고 했다. 처음 교회에 왔으니 당연히 물어본 거였는데 남편은 무언가 잔뜩 심기가 불편한 표정과 목소리로 "아! 됐어요. 그냥 한번 와 본거예요.”라고 말하며 두 번 다시 말을 붙이기 힘들 만큼 퉁명스레 대꾸했다. 요즘도 가끔씩 남편 선배인 교회오빠를 만나면 “내가 사모가 된 건 순전히 오빠 때문”이라고 농담 섞인 넋두리를 하곤 한다. 만약 남편이 ‘그냥 한번 와 본 걸로’ 끝냈더라면 내 인생도 어쩌면 사뭇 바뀌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곧 여름방학이 시작되었고 학생부 수련회 준비로 날마다 교회에 모여 각자 맡은 준비를 하느라 북적였는데, 신기하게도 남편은 제일 열심히 준비모임에 나왔다. 처음 선배손에 이끌려 억지로 교회에 왔던 때와 견줘보면, '얘 뭐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교회적응 속도가 신기할 정도로 빨랐다. 훗날 남편은 여러 자리에서 자신의 첫 수련회 경험을 이야기했다. 지금도 공동의 추억을 공유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해서 말할 때면 꼭 자신의 첫 수련회 경험을 신앙 간증처럼 고백한다. 자신을 목회자의 길로 들어서게 했던 신비한 추억이었다고.
남편은 학생부 여름 수련회를 다녀온 후에 눈에 띌 만큼 교회에 열심히 나왔다. 70년대 후반, 그때는 교회마다 학생부 주최로 <문학의 밤> 이 유행처럼 열리던 때였다. 우리 교회에서는 10월 말쯤에 했다.
여름방학 무렵부터 우리는 스스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낭독할 작품들을 써내고, 백뮤직을 고르고, 낭독 연습을 했다. 연습이 길어지면 버스나 지하철이 끊길까 봐 다들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나는 교회 안에 있던 사택으로 금세 들어가는 게 좋기도 했지만 내가 마음속으로 좋아했던 교회오빠와 같은 방향의 버스를 타는 친구가 부러울 때도 있었다.
훗날, 남편은 여러 모임에서 “고등학교 입학할 무렵 내 장래희망은 정치가였다. 정치가에겐 연설능력이 매우 중요할 거라고 생각되어 웅변반 활동을 하게 되었다. 선배한테 이끌려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학생부 여름수련회, 문학의 밤에 참여하면서 차츰 목회자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라고 신앙고백 같은 자기소개를 하곤 했다. 요즘도 어쩌다 학생, 청년시절 교회수련회이야기를 하게 되면 남편은 여전히 흥분과 감동이 섞인 목소리로 그때의 추억들을 신나게 이야기한다. “생각해 보면 선배 때문에 태어나 한 번도 상상조차 못 해봤던 경험을 한 거였어! 여름 수련회 가서 남녀 학생들이 며칠 동안 텐트를 치고 함께 잠을 자고, 밥을 해 먹으며 3박 4일을 지냈던 경험이 내겐 엄청난 충격이었다고!”
남편에게 학생부시절의 수련회가 그토록 강렬하고 신비한 경험이고 추억이었는지 처음 알았다. 어려서부터 교회 수련회를 무수히 경험했던 나에겐 그저 하나의 교회여름 행사였을 뿐이었는데 남편에겐 목회자가 되고 싶은 꿈을 꾸게 만든 특별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내가 사모가 된 것은 남편을 교회로 이끈 교회오빠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