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골사모 Oct 12. 2024

사모도 급이 있다

사모라고 다 똑같은 사모가 아니다. 사모도 급(?)이 있다고 하면 이게 무슨 소리지? 하며 의아해할 분들이 많을 것이다. 혹시라도 오해하시는 분이 계실까 염려되어 말씀드린다. 목회자인 남편의 직급에 따라 사모의 급이 정해지는 걸 말하려는 게 아니다. 사모를 부를 때 그 누구도 남편의 목회 직급에 따라 구분해서 부르는 경우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언젠가 교단 전체 사모들의 모임에 갔을 때의 일이다. 곧 은퇴를 앞둔 연로하신 사모님부터 이제 갓 결혼한 신혼의 20대 사모도 함께 있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기에 앞서 돌아가며 한 사람씩 간단히 자기소개의 시간이 있었다. 맨 처음 자기소개를 했던 사모의 인사말 폼이 모든 사모들에게까지 바로 적용되어 지극히 평범한 인사말과 자기소개의 시간이 이어졌다.


“안녕하세요!ㅇㅇㅇ입니다. ㅇㅇ교회, ㅇㅇㅇ목회자의 사모입니다.”


그런데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자기소개의 틀이 어느 사모의 차례가 되자 확 바뀌게 되었고 순간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개인적으로 만날 땐 나보고 언니라고 부르는 신학교 후배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ㅇㅇㅇ입니다. 제 신랑은 ㅇㅇㅇ목회자입니다." 그 순간 모두는 잠시 입틀막을 한 채 뜨악한 얼굴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배꼽 잡고 웃었다. 내가 아는 한 우리 교단의 사모들 중 가장 심성이 밝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모의 자리를 좋아하고 자랑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사모였다. 그 신랑 목회자님이 어느덧 50대 나이로 접어들었을 무렵, 사모 모임에서 변함없이 환하게 웃으며 신랑이야기를 하는 후배에게 물었다. “넌, 너희 남편이 아직도 신랑 같고 그렇게 좋니?” 후배사모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용수철 튀어 오르는 속도로 대답했다.


“네, 언니, 저는 지금도 남편이 너무 좋아요! 내가 사모라는 것도 정말 감사하고요!”


다른 이유나 설명 없이 딱 한마디 대답으로 내 질문에 답한 후배에게 말로 설명되지 않는 묘한 패배감을 느끼던 순간이었다. ‘무슨 일이든지 즐기고 좋아서 하는 사람을 이길 방법은 없다.’는 말이 떠오르며 생글생글 웃는 후배가 부럽기까지 했다. 자신이 사모가 된 것이 가슴 떨릴 만큼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녀, 목회자 남편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신뢰의 마음을 여러 선 후배 사모들 앞에서 당당하고 떳떳하게 말하던 그녀는, 진정 품격 있는 사모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