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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중앙시장에서 추억을 더듬다가

by 시골사모

남편 이 사람, ‘목회일 말고 금융맨이 되었어도 엄청 적성에 맞았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정리정돈과 세심하고 꼼꼼하기가 나와 비교가 안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은퇴 후의 가정경영권을 남편에게 넘겼다. 모든 자동이체를 남편 통장으로 바꾸는 일부터 각자의 통장 귀퉁이에 존재 감 없이 흩어져 방치된 잔돈들을 한 곳으로 모으기 위해 인터넷 뱅킹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까다롭고 불친절한 상담사 대꾸(?)에 화가 난 남편은 직접 은행을 찾아 나섰다. 나도 함께 가야 한다기에 따라나섰는데, 은행이 자리한 곳은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 분위기와 비슷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 동네 분위기와 완연히 달랐고 나는 신기하게도 가슴까지 설렐 정도로 좋았다. 서브웨이 샌드위치가게를 발견한 후엔 ”원주도 살 만한 곳이네! “라고 말했다가 남편으로부터 한소리 들었다.”그깟 샌드위치 가게가 있고 없음으로 원주를 평가하냐”라는. 40여 년 전에 처음 왔던 원주의 최고 번화 거리는 중앙로였다. 그 도로 한가운데에 중앙시장이 있었다. 온갖 팔 것들이 시장골목 양쪽에 펼쳐져있고 중앙에는 고소한 기름냄새 가득 품은 갖가지 전부터 순댓국, 칼국수, 떡볶이, 만두, 족발들을 판매하는 좌판들이 끝없이 늘어서있었다. 그때처럼 이번에도 똑같은 생각이 들었다.‘저 어마어마하게 쌓인 먹거리들이 도대체 하루에 얼마나 팔릴까? 다 팔리기는 할까?’

메밀부침개 속에 만두소를 펼쳐놓고 돌돌 말아 부쳐 낸 메밀 총떡이 먹고 싶었다. 음식들이 쌓여있는 길 가운데 통로를 비집고 들어가 폭이 좁고 기다란 나무의자에 앉아 방금 부쳐낸 듯한 뜨거운 메밀 총떡말이를 먹는데 난데없이 서울 남대문시장 지하 도깨비시장에서 팔던 잔치국수가 떠올랐다. 딸들 친구엄마와 아이들 학교 보내놓고 곧바로 남대문시장에 가서 먼저 따끈한 멸치국물에 말아낸 잔치국수를 먹었다. 든든히 속을 채운 후에 한결 여유로워진 마음으로 느긋하게 딸들 옷가지들을 골라 담던 그때, 나는 멸치국물까지 남기지 않고 다 먹었던 40대 초반, 한창 먹성 좋고 살도 많이 쪘을 때다. 남편의 은퇴예배에 오셔서 오랜만에 뵌 예전 교회의 교우님들의 한결같은 첫마디는 “사모님, 왜 이렇게 살이 많이 빠지셨어요?”였다. 최근까지 있다가 은퇴한 교회의 교우님들은 내 화려했던 몸무게 숫자를 모르시는 분들이 많다. 곁을 지나치시다가 예전 교우님의 걱정스러운 말씀을 듣고는 한결같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셨다. 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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