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패산&도봉산 연계산행
살다 보면 하고 싶지 않은 것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어릴 때부터 비 맞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취미로 시작한 등산을 비까지 맞으면서 할 생각은 전혀 없었으나, 내 의지와 상관없이 우중산행을 경험하게 되었다.
때는 24년 추석 연휴. 사패산+도봉산 연계산행을 계획했는데 날씨가 계속 안 좋았다. 역대급으로 더운 추석이기도 했지만 자꾸 비가 잡혀 있었다. 매일 기상청 홈페이지를 들락날락하며 날씨를 살피던 중, 비가 없는 날을 발견했다. 당일 새벽에도 확인해 보니 오전에는 내리지 않고, 오후 2-3시쯤부터 비가 내릴 예정이라고 나왔다. 그 시간이면 하산 후 집에 도착할 테니 운이 좋다고 여기며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출발했다.
사패산에 가기 위해 지하철 첫차를 타고 의정부로 갔다. 멀리서도 사패산이 보였는데 꼭대기에 구름이 좀 걸쳐있었다. 계속 저러면 정상에서 아무것도 안 보이겠다 싶었지만 비가 내리기 전에 산행을 마쳐야 하니 발걸음을 서둘렀다. 올라가는 길은 무난했는데 문제는 날씨였다. 분명 기상청에선 비 표시가 없었는데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더니 결국 비가 내렸다.
비 맞을 걸 감안하고 나온 게 아니니 처음엔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금방 생각이 바뀌었다. 맑은 날씨엔 보지 못했던 게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거미줄에 빗방울이 맺히고, 그 무게에 축 쳐져있는 모습이 곳곳에 보였다. 산속이라 그런지 거미줄이 나무 높은 곳까지 많았고, 규모도 꽤 커서 그런지 두드러져 보였다. 안개가 살짝 낀 상태에서 보이는 모습은 약간 신비로운 느낌도 나면서 아름다웠다.
사패산 정상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우려한 대로 뷰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정상석 사진만 1장 찍고 미련 없이 도봉산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도봉산의 대표 코스인 와이계곡을 거쳐서 갔다. 2번째라서 그런지 처음보단 수월하게 갈 수 있었다. 와이계곡을 지나 조금 더 오르면 정상 ’신선대‘에 도착한다. 비는 그쳤어도 운무가 있어서 딱히 뭐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태를 일명 ’곰탕‘이라고 한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다. 아무튼 곰탕이어도 아쉽지는 않았다. 도봉산 정상은 ‘신선대’인데 안개 때문인지 신선이 풍류를 즐길 것 같은 분위기였다. 바위를 감싸고 있는 운무가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도 운치가 있어서 좋았다.
내려가면서 점점 날이 개더니, 하산이 끝나니까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화창한 날씨가 되었다. 변덕스러운 산악날씨로 인해 계획에 없던 우중산행을 해서 처음엔 좀 억울했지만, 내가 모르던 산의 모습을 처음 알게 되어 좋았던 하루였다. 비와 땀으로 몸이 젖고, 피로가 더해졌지만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