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 마왕굴
청계산은 경사가 가파르지 않고 계단길이 잘 마련되어서 초보자도 가기 좋은 산이다. 처음 가려고 알아봤던 시기는 5월이었는데, 매년 5월마다 송충이가 어마무시하게 많다는 후기를 보고 관악산에 갔다. 시간이 조금 흘러 7월이 되었고, 하루는 등산을 가고 싶었는데 컨디션이 조금 안 좋았다. 가볍게 다녀올 산이 어디 있을까 생각하다가 떠오른 곳이 바로 청계산이었다.
도봉산 와이계곡, 불암산+수락산 연계산행, 북한산 의상능선을 겪은 이후라 수월하게 느껴졌다. 애플워치를 확인하니 심박수가 별로 안 나오길래 운동 효율을 높이기 위해 조금씩 뛰기도 하면서 코스를 차근차근 밟았다. 한참 가던 중, 사람들이 멈춰있는 걸 발견하고 다가갔다. 한동안 내렸던 비 때문인지 일부 구역을 통제하려 막아놨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막아놓은 길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사람은 나 포함 5명. 아저씨 2명과 트레일러닝 하는 커플이 있었다. 막힌 길 양옆으로 등산로가 있어서 우리 5명은 처음에 왼쪽으로 향했다. 트레일러닝 커플이 앞서 가다가 gps를 보더니 이대로 가면 하산길이라며, 반대로 가야하는 거 같다고 했다. 하지만 반대편에 있던 등산로는 입구만 대충 봐도 사람들이 별로 안 다니는 길이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하산하기엔 아쉬웠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는지 5명은 다같이 반대편으로 들어섰다.
초보자가 보기엔 ‘이게 길이 맞나?’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은 길이었다. 당시 혼자였다면 절대 가지 않았을 것이다. 좀 가다가 갑자기 앞서가던 트레일러닝 커플이 되돌아갔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지금 길은 우회해서 올라가는 방향인데 자기들은 일행과 합류하기로 한 곳이 있다고, 이대로 올라가면 합류지점과 멀어져서 안 된다 했다. 아저씨 둘은 마저 가던 길을 가길래 가운데서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아저씨들을 뒤따라갔다.
두 사람은 처음에 내가 뒤에서 따라오는 줄도 모르다가 나중에 알아차리고 좀 놀란 눈치였다. 코스가 험난해서 당연히 안 올 줄 알았다, 우리는 산을 자주타는데 같이 페이스 맞출 정도면 체력 좋고 산을 잘 타는 거라며 말을 걸었다. 한 아저씨는 경찰로 일하다 지금은 퇴직하고 거의 매일같이 관악산을 오른다고 하셨다. 내가 등산 입문한 지 2-3달 되었다고 하니 좀 놀란 눈치였고 “아가씨, 알고보면 정체가 군인이나 국정원 요원인거 아니겠죠? 하하하“ 이런 농담을 몇 번이나 건넸다. 내게 산에 혼자 다니냐고 묻더니, 처음엔 모임에 들어가 단체로 다니라고 하다가 곧 말을 취소했다. 그리고는 그냥 지금처럼 혼자 다니라고, 이상한 모임 들어가서 안 좋은 물이 들면 안 된다고 했다. 산에 혼자 다니라고 권하는 말을 들은 건 이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그런지 유독 기억에 남는다.
길은 갈수록 가관이었다. 나무가 우거지고 햇빛이 잘 들지 않아 낮인데도 음산했고, 자칫 발을 헛디디면 경사로에 떨어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구간도 나왔다. 중간에 큰 나무가 쓰러져서 있어서 나무 밑으로 기어가기도 했다. 그래도 아저씨들이 앞에서 계속 여기는 미끄럽다, 발 밑을 조심하라며 신경써주신 덕분에 조금 수월하게 갈 수 있었다.
그렇게 가다가 나온 곳은 마왕굴이었다. 청계산을 자주 다녀본 아저씨들조차 처음 보는 곳이라고 했다. 안내판이 있어 읽어보니 고려말 충신 송산조견선생 (1351~1425)이 흘러나오는 샘물로 갈증을 풀고 쉬어가던 곳이라고 한다. 송산조견선생은 고려 충렬왕때 문하시중을 지낸 조인규의 증손이고, 조선의 개국공신 조준의 아우이다. 그 외에도 고려가 망하기 직전, 맥이라고 하는 이상하게 생긴 큰 짐승이 여러 산짐승들을 몰고 이 굴로 들어갔다 하여 일명 '오막난이 굴'이라고도 불린다는 설명이 있었다.
마왕굴을 지나서 올라가는데 조금씩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길을 가면서도 제대로 가는 중인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았는데 안심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수봉이 나왔고 아저씨들은 거기서 휴식, 나는 마저 남은 길을 가며 자연스럽게 동행이 끝났다. 하산을 마치니 몸이 지친 상태였다. 가볍게 다녀오려다가 예상치 못한 고생을 겪은 탓이었다. 마왕굴 가는 길은 초보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기에 다시 청계산으로 갈 일이 없을 줄 알았으나, 그 해 가을에 또 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