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도 애기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관악산 수영장능선-파이프능선

by 푸른치타


지난 가을 북한산에서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해진 분이 있는데(12편 참고), 그분이 등산 정보를 공유하고 번개 모임을 하는 카페를 소개해주셨다. 가입해서 눈팅만 하던 중 관악산 팔봉능선 번개글이 올라온 걸 보고 참여하겠다는 댓글을 남겼다. 전부터 관악산 팔봉능선, 11개 국기봉 종주 등 여러 코스를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혼자서도 가보고 싶었지만 블로그, 유튜브로 살펴보니 이정표가 잘 나와있지 않아서 길 찾기 어려워 보였고, 실제로 초행길에 헤매다가 더 오래 걸렸다는 후기가 많아서 엄두를 못 냈다. 그러던 중 카페에서 번개글을 발견했으니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카페 평균 연령대를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만나보니 예상보다 더 높았다. 모임 장소에 나갔더니 전부 부모님 연배로 보이는 분들만 있었다. 닉네임을 확인하고 그분들도, 나도 서로 동공지진 상태였다. 어디 가서 막내일 나이는 아닌데 이 날은 예외였다. 닉네임보다 막내, 막둥이로 불렸고 심지어 20살 이후 처음으로 “애기야” 소리도 들었다ㅋㅋㅋㅋㅋ 집에서는 첫째, 사회생활할 땐 연령대가 비슷한 사람 위주의 환경에만 있다 보니 어디 가서 막내취급받을 일이 거의 없었던지라 그 호칭이 매우 어색하게 느껴졌다.


원래 가려고 했던 길은 팔봉능선이었으나, 인원이 다 모이자 갑자기 리딩하는 분이 다른 길로 가자고 하셨다. 팔봉능선을 가고 싶었던지라 내심 아쉬웠지만 다들 상관없다는 분위기였다. 내게도 괜찮냐고 물어봤는데 모임에 처음 나오고, 제일 어린 사람이 그 분위기에서 싫다고 의견을 낼 수 있을 리 있겠는가. 그냥 조용히 따라갔는데 시작은 수영장능선이었다. 얼마 오르지 않았는데 잠깐 쉬자고 해서 쉬고, 또 조금 가서 쉬고를 반복했다. 너무 자주 쉬어서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최근에 해외 원정 등산을 다녀온 회원님을 배려하기 위해서 쉬엄쉬엄 이동한 것이었다. 움직일 땐 속도가 빨랐지만 자주 쉬면서 올라가니까 힘들지 않았다. 조용히 속도 맞춰서 움직였는데 처음엔 산을 잘 탄다고 하시더니, 나중엔 아무리 쉬면서 올라간다지만 숨소리 한 번을 안 내냐고 놀라셨다. 그리고 나를 부르는 호칭엔 렉서스가 추가되었다.


올라가다 보니 밧줄을 잡고 이동해야 하는 구간이 나왔다. 그동안 내가 다닌 코스엔 주로 난간이 있었고, 밧줄 구간은 짧게 있었는데 이번 코스에서는 꽤 길었다. 밧줄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바위도 붙잡으며 이동했지만 쉽지 않았다. 노하우도 없고, 팔에 근력이 없어서 더 그런 것 같다. 혼자였으면 더 힘들었을 텐데 다른 분들이 어딜 잡아야 하는지 조언해 주고, 발 올릴 때 밑에서 받쳐주는 등 도와주셔서 그나마 수월했다.


관악산 수영장능선에서 오른 밧줄 구간


관악산 등산의 장점은 조금만 올라도 서울 전망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점이다. 이 날은 미세먼지가 없어서 멀리 있는 곳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파랗고 선명한 하늘 아래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들, 중간에 흐르는 한강, 곳곳에 보이는 산의 모습. 익숙한 모습이지만 등산할 때 보면 감회가 새롭다. 날씨가 따뜻해서 그런지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은 눈이 남아 있었지만, 등산로는 아이젠 없이도 다닐만했다.



하산을 위해 파이프능선으로 이동했다. 능선에 파이프가 있어서 붙은 이름인데, 파이프 안에는 통신용 케이블 전선이 들어있다고 한다. 가다 보니 또 밧줄 구간이 나왔는데, 문제는 올라가는 게 아니라 내려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다들 거침없이 내려가는데 나는 시작부터 막막했다. 심지어 이번에는 조언이 다들 분분해서 정신없었다. 왼쪽부터 시작하려니 어떤 분은 오른쪽부터 가라 하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니 다른 분이 왼쪽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심지어 내려가는 중엔 왼발 디딜 곳을 못 찾고 공중에서 헤매고 있었는데, 그걸 못 봤는지 오른발을 떼라며 내 오른발에 손을 대고 강제로 옮기려고 했던 분도 있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나 보다. 그래도 덕분에 차근차근 내려올 수 있었다. 혼자라면 엄두도 못 냈을 텐데 도움이 있어서 가능했다.


관악산 파이프능선에서 내려온 밧줄 구간


이 날 베테랑 카페 회원님들에게 받은 등산 실력 평가는 예상대로였다. 움직임이 가벼워서 설악산도 문제없을 것 같다, 다만 등산로 정비된 코스만 다녀야지 오늘처럼 암벽 타는 구간은 힘들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도 등산코스 익힐 겸 번개 자주 나오라고, 다음에 또 밧줄 있는 코스 나오면 업어서 내려가주겠다는 농담을 하셨다. 다른 사람에게 업히지 않고 내 한 몸 건사할 힘을 기르기 위해 근력운동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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