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월산&신불산 - 영남알프스 완등 도전 시작
"부모님은 메달을 안 주잖아"
한라산에 같이 갔던 친구가 영남알프스 완등 도전을 제안하며 한 말이다. 울주군에서는 매년 영남알프스 완등 인증 사업을 하고 있다. 일명 ‘영남알프스’로 지정된 산을 전부 등산하고, 정상에서 앱으로 GPS+사진 인증한 선착순 3만 명에게 순은 기념 메달을 증정하는 사업이다. 2025년부터는 총 7개 산을 올라야 하며, 매월 최대 2개 산까지 인증이 가능하다.
처음엔 도전할 생각이 없었다. 친구는 경남에 살고 차량으로 이동이 수월한 반면, 나는 서울에 살고 면허가 없다. 메달을 위해 최소 4 개월 연속으로 방문해야 하는데 시간, 교통비 등 여건상 부담이 컸다. 내가 "부모님 댁도 4개월 연속으로 가지는 않는다"라고 하자 친구는 저렇게 말했다. 우스갯소리지만 묘하게 설득력 있어서 결국 꼬임에 넘어갔다.
첫 산행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원래라면 새벽 5시 반 첫 기차를 탈 예정이었지만 폰에서 설정이 잘못되었는지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 눈 뜨자마자 불길한 예감이 들어 시계를 확인하니 5시 33분. 허겁지겁 준비하며 친구에게 전화했는데 다행히 집에서 출발하지 않았다더라. 친구와 만날 시간을 다시 조절한 후 6시에 후다닥 집에서 나왔다.
버스를 기다리며 기차 시간표를 확인하니 다행히 표는 있었다. 6시 반, 7시 차가 있는데 6시 반은 어려울 것 같아 7시로 예매했다. 타지 못한 기차표는 환불이 될까 싶어 반환을 시도했는데 앱에서는 환불이 불가능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도착역에 기차가 도착하는 시간이 되기 전까지 출발역 창구에서 반환 요청하면 수수료를 제하고 가능하다는 점! 돈을 통으로 날리지 않아도 됨에 안심하고 버스에서 내려 다음 버스로 환승했다. 차가 막히지 않아서 잘하면 6시 반 기차를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차역 근처에서 내리니 6시 22분. 기차역으로 뛰어가 창구에서 반환 요청하고 확인한 시간은 6시 27분. 기차가 있는 플랫폼으로 가서 7시 차편을 6시 반으로 변경하려 했더니, 6시 반 기차가 100원 더 비싸서 차액 결제를 해야 한다는 팝업창이 떴다. 문제는 차액을 간편 결제로 할 수 없고, 카드번호를 일일이 입력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입력해서 결제하니 6시 29분. 승무원에게 다급하게 보여주고 냅다 탑승하자마자 기차는 출발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결제할 때 정신이 없어서 팝업창을 제대로 못 봤는데, 내가 탄 기차는 차량 2개를 이어서 운행하고 있었다. 1-8호실, 11-18호실로 나뉘어 있는데 1호실 차와 11호실 차는 이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탑승할 때 확인해서 타라는 내용을 안내하는 팝업이었던 것이다. 내가 탄 곳은 1-8호실 기차였지만 예매한 좌석은 17호실이었다. 8호실 내리는 구역에 서서 멍한 상태로 있으니 탑승할 때 옆에서 지켜봤던 승무원이 다가왔다. 승무원은 내게 빈자리에 편히 앉았다가 다음 정차역인 동탄역에서 옆 기차로 뛰어가라고 했다. 밖으로 나가지 말고 유리 통로에서 안에서 뛰라고, 그래야 내가 제대로 옮겨서 탑승했는지 지켜봐 줄 수 있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는데 내릴 때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기차역과 달리 동탄역은 승강장에 지하철 스크린도어 같은 게 설치되어 있고, 내릴 때 두 발자국 정도의 유리 통로를 거친 후 스크린도어 밖으로 나가야만 하는 구조였다. 따라서 기차 문이 열리는 곳에만 스크린도어가 열리고, 두 기차 사이에는 문이 없으니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다. 옆 기차로 옮겨가기 위해 스크린도어 밖으로 나갔다가 옆으로 가지 말고, 통로 안에서 뛰라는 말이었던 것. 기차가 정차하자마자 내려서 냅다 뛰었고, 무사히 옮겨 타서 자리로 찾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울산역에 도착해 친구와 합류했다. 친구 차를 타고 향한 곳은 신불산 자연휴양림 주차장. 매번 원정산행 갈 때마다 날씨가 안 좋았는데 이 날은 처음으로 좋았다. 1월 중순이었지만 신불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엔 눈이 전혀 없었다. 경사는 가파르지 않았지만 낙엽이 많은 구간이 있어서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며 올라갔다.
한라산에서와 마찬가지로 친구는 순식간에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함께 도전하지만 따로 올라가는 상황이라 혼자 다닐 때와 크게 다를 건 없었다. 무리하며 따라잡지 않고 페이스 유지하며 꾸준히 올라가니 억새 있는 구간이 나왔다. 억새철이 지나서 시들어 있었지만 햇볕을 받아 금빛으로 반짝이며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신불산 정상에 도착해서 바로 영남알프스 완등 인증 앱을 실행했다. 위치 정보와 사진 업로드한 걸 기반으로 인증이 승인되기 때문에 정상 인근에서 앱을 실행하고 등록해야만 한다. 나와 친구는 금방 인증을 마쳤는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데이터가 터지지 않아 애먹고 있었다. 우리는 핫스팟을 켜서 데이터 연결에 도움을 드렸고 다행히 주변 사람들도 인증을 마칠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우리를 제외한 사람들은 전부 같은 통신사였는데, 하산하면 다 같이 통신사에 컴플레인을 하자며 농담반 진담반 섞인 이야기를 하셨다.
신불산은 간월산, 영축산과 이어서 갈 수 있다. 간월산-신불산-영축산은 연계산행이 가능하여 하루에 3개 산을 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1달에 최대 2개까지만 인증이 가능하고, 3개를 가려면 간월산이나 영축산에서 시작했어야 했다. 간월재를 보고 가자는 친구의 의견에 따라 우리는 간월산으로 향했다. 간월산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경관도 멋있었다. 눈은 없었지만 일부 구간은 바위가 살짝 얼어있어서 주의하며 이동했다.
간월재까지는 능선을 따라 이동해서 수월하게 갈 수 있다. 이번에 간 코스에서 가장 가파른 구간은 바로 간월재에서 간월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약간의 너덜길도 나오고, 경사가 좀 있는 편이다. 아침부터 기차 타느라 진이 빠져서 그런지 난이도 대비 더 힘들게 느껴졌다. ‘메달 하나 받자고 멀리까지 가서 이렇게 고생하는 게 맞는 걸까?’하는 현타 섞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간월산 정상은 신불산과 달리 협소하고 쉴만한 공간이 없었다. 완등 인증을 하고 잠시 숨을 고르니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힘들어서 다시는 안 가겠다고 마음먹어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향하게 되는 등산의 매력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작용했다.
신불산 자연휴양림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은 임도도 있어서 편했다. 가는 길에 웬 굴이 있어서 살펴보니 ‘죽림굴’이라는 천주교 성지였다. 1839년 기해박해 때 관아의 손길을 피해 안전한 곳을 찾던 신자들이 모여 움막을 짓고 생계를 유지했으며, 1860년 경신박해 때는 우리나라 2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가 은신하며 신자들을 돌보았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이야 길이 잘 닦여있고, 위험한 동물이라곤 멧돼지 정도지만 그 시절엔 호랑이도 많았는데 오죽하면 깊은 산속으로 피했을까 싶다.
주차장 근처에 다다르니 계곡물이 얼어있는 게 보였다. 해발고도는 낮아도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지역이라서 그런 듯했다. 폭포에 얼음이 꽤 멋있어서 사진을 남겼다.
시작이 순탄치 않았지만 영남알프스 완등 인증을 위한 첫 번째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이렇게 3번 더 고생해야 하는데 막막하기보다는 기대가 되었다. 인증을 마칠 때쯤엔 등산 실력이 향상되리라는 확신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