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맞아 주문받고, 메뉴 만들어 주문손님 찾아 테이블 돌고, 설거지 하고 정신없이 분주한 시간일 텐데...
오늘은 모든 것 다 내려놓았다.
대신 하얀 천장을 바라보고 팔뚝에 주삿바늘을 꽂은 채 침대에 누워있다.
커피숍을 옮겨 시작한 지 벌써 4년째
남편과 함께 일을 하면서도 일에 쫓겨 서로를 바라볼 틈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긴 시간.
우리 부부의 건강에 이상이 감지되었다.
극한의 피로감이 몰려오고 버티기 힘든 상황임이 느껴진다. 사소한 일로 짜증이 일고, 무엇이든 뒤로 미루고 싶은 마음이 든다.
결국, 병이 덜컥 나 버렸다. 물론 큰 병은 아니지만 몸이 보내는 경고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은 분명했다.
본의 아니게 임시휴무 안내문을 달고 병원에 가서 링거수액을 맞으며 휴식 아닌 휴식을 갖게 되었다.
한결같은 모습으로 일상을 맞으려 하나 몸의 어느 한 곳이라도 불편해지니 내가 생각하는 우선순위가 바뀌어지게 된다.
때로 삶이 힘겹고 지칠 때 쉼과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이정하 시인의 시 [ 길을 걷다가 ]를 떠올리며 위로를 받는다.
잠시 멈춰 서서 내가 서 있는 자리
내가 걸어온 길을 한번 둘러보라
편히 쉬고만 있었다면
과연 이만큼 올 수 있었겠는가
힘겹고 지친 삶은
그 힘겹고 지친 것 때문에
더 풍요로울 수 있다.
가파른 길에서 한숨 쉬는 사람들이여,
눈앞의 언덕만 보지 말고
그 뒤에 펼쳐질 평원을 생각해 보라.
외려 기뻐하고 감사할 일이 아닌지.
지친 일상은 때론 사람들에게서 위로를 받기도 한다.
우리 카페를 방문하기 위해 왕복 1시간을 걸어왔다는 손님, 강원도 철원에서 학부모 인연으로 만나 공주의 예쁜 커피숍을 찾아왔다는 중년의 부부들. 이런 사람들로 인해 느껴지는 감사함은 새로운 힘을 얻게 한다.
나무에게 물과 온도, 햇빛, 바람이 필요하듯 나도 또한 그러하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꽃들이 지고 여름과 맞닿아 가는 녹색의 잎이 무성해진다. 자연을 바라보며 자연의 순리에 따라가다 보니 그제서야 비로소"쉼"이라는 단어가 진심으로 다가온다.
쉼!
마음 깊은 곳의 진심이 묻어나는 고요한 고백이자 삶의 무게를 견디며 발견한 작은 깨달음의 표현이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쉼 없이 달려온 끝에 몸과 마음이 한계에 다다랐고
병이 찾아왔지만 그것조차 나에게 소중한 "멈춤"의 기회를 준 셈이다.
쉼 없이 움직일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멈춰 서니 선명하게 보이기도 한다.
남편의 존재, 커피숍을 찾아 주는 손님들의 따뜻한 발걸음, 그리고 나 자신이 얼마나 애쓰며 살아왔는지
지치고 힘든 시간 속에서도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결실과 의미가 생겼다는 시구가 나의 상황과 감정을 고스란히 대변해 준다.
커피숍이라는 작은 숲에도 이제는 자신을 먼저 보듬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건강을 회복하며 정기 휴무일을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삶을 다시 조율하는 '성찰의 날'로 삼는다면 커피숍의 공간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조금 천천히, 조금 더 나를 아끼며 살아가도 괜찮다.
조금 천천히 느리게 가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