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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오후

by 이희숙

창밖엔 비. 빗소리의 속삭임. 그리고 필사


요즘 날씨는 정말이지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덥다. 앞 뜰에 화분에 심긴 화초와 나무 잎들이 녹아내릴 것 같은 불가마가 작열한다. 다행히 커피숍 안은 에어컨이 작동하고 있어서 여름을 견딜 만하다. 하지만 문을 잠깐 열고 밖에 나서는 순간, 바람 한 점 없이 찌는 듯한 더위가 온몸을 감싼다.


오늘 기상예보에서는 밤이 되어야 비가 올 거라고 했다. 남편은 교회에 다녀오는 길에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졌다고,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깥에는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매미 울음소리는 ‘찌르르르, 찌익찌익’ — 고막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움으로 쉼 없이 이어진다.


시간이 흐르고,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다. 그때 누군가 아무도 없는 커피숍 문을 열고 들어선다. 여러 개의 빵을 주섬주섬 담은 뒤 음료를 주문하며 말한다.

“오늘은 조용해서 좋네요.”


폭염 탓인지 요즘은 커피숍을 찾는 발걸음이 줄었다. 매장은 유난히 고요하다. 그래도 무더위를 무릅쓰고 찾아오는 손님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정감이 넘친다. 사람이 많을 때는 북적이는 분위기 속에서 누가 누군지 분간하기 어려워 손님 한사람 한사람에게 세심하게 다가가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오늘처럼 비가오는 한가한 오후엔 손님 사람 한사람의 말이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비 오는 오후, 또 한 사람이 혼자 조용히 커피숍 문을 열고 들어온다.

예전에 친구와 함께 왔던 그 손님이다. 그들 중 한명인 그녀의 친구는 커피숍의 그림과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며 감탄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들 중 한 시림이 구석 자리에 앉아 무언가에 깊이 몰두해 있다.

괜스레 궁금해져 가까이 가보니, 조용히 불경 필사를 하고 있었다.


같은 내용은 아니지만, 나 역시 요즘 영어 문장 필사를 하고 있다. 얼마 전 영어 필사본 책을 구입해 하루에 한 장씩 따라 쓰고 있다.


요즘 서점에 가보면 수필, 철학, 시집 등 다양한 필사책들이 나와 있다. 사람들이 바쁘고 분주한 시대지만, 그래서인지 더더욱 조용히 집중할 수 있는 활동을 찾는 것 같다. 예전에는 성경을 필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집중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영어 문장을 따라 쓰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차분해지고, 나도 모르게 정성을 담아 글씨를 쓰게 된다. 그리고 정서적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그렇게 하루하루 쌓이는 필사의 시간은 어느덧 습관이 되어 나를 성장시키는 힘이 되어 준다. 습관이 능력이 됨을 깨닫게 된다.


조만간 시간이 되면 서점에 들러 또 다른 책을 찾아보고 싶다.

나를 사로잡는 한 권의 책, 그 안에 빠져들어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비 오는 오후, 필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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