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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ark Mar 09. 2021

유럽에서 학벌이 중요할까?

중요하다. 그렇지만 -

내가 아무래도 유럽에서 지내다 보니까, 한국의 친구들이 빼놓지 않고 꼭 하는 몇 가지 질문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학벌 관련한 질문은 매번 나오는 질문 중의 하나이다. 그렇다면 정말 티비나 유튜브에서 매번 나오는 것처럼 네덜란드 (대부분의 서/북유럽이라고 써도 사실 무방하다)와 한국이 학벌에 대해 받아들이는 차이점이 있을까? 그렇다면 그 차이점은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아, 미리 말하고 시작하지만 나는 한국 기준 네덜란드 지잡대 학부 출신이다 :)


Photo by Red Morley Hewitt on Unsplash


기본적으로 내가 네덜란드에서 일하는 4년 동안 나에게 학벌 관련해서 물어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하지만, 내가 내 소개를 하다가 - 나는 A라는 도시에 살았는데, 그 도시에 있는 대학교를 나왔어서 살았었다는 식의 - 말한 적은 왕왕 있다.


그렇지만, 어떤 공부를 했는지, 그 전공을 통해서 뭘 배웠는지는 서로 많이들 얘기한다. 예를 들어, 나는 Data Management를 전공했고 여기서 A랑 B를 배웠는데, 이런 비슷한 경험이 있는지. 혹은 나는 MBA를 나왔는데, 여기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어떻게 교류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등의 실용적인 부분을 나누는 경우는 정말 많다.


사실 네덜란드 포함, 유럽에서는 대학교 랭킹 줄 세우기 같은 행위는 그 누구도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암스테르담 대학교가 세계 랭킹이 몇 위 라던지, 혹은 굳이 따지면 암스테르담 대학교가 네덜란드에서 가장 랭킹이 높기 때문에 모두가 꿈꾸는 대학교라던지 하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을 희망하고 조건이 되는 학생들이 대학교를 고르는 기준은, 대부분 집에서 가까운지 아니면 내가 그 대학교가 있는 도시에서 살고 싶은지 등의 이유이다.


그리고 대학의 개념 자체가 정말 다르기 때문에, 학벌에 관해서 한국과 받아들이는 자체가 다르다. 대학 (大學)의 사전적 의미는 한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등교육을 베푸는 기관이다. 유럽에서 내가 체감하는 학벌의 무게감은 딱 저 사전적 의미가 주는 대로이다. 고등학교보다 한 단계 더 높은 '학문적' 교육을 받고 싶은 사람들이 가는 곳, 마찬가지로 대학원은 그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교육을 받는 곳이다. 그뿐이다. 다르게 말하면,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지만 다른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기술학교를 가거나 바로 취업을 하거나 하는 식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런 사전적 의미가 퇴색된지는 오래이다. 애초에 시작이 잘못되었는지, 혹은 랭킹 높은 대학교를 무조건적으로 갈구하는 사회적 관념 자체가 만들어낸 사회상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중 고등학교 시절 가장 괴로웠던 부분은, 모든 어른이 나에게 대학을 가야 한다고 말했었지만 왜 가야 하는지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나마 들었던 대답은 그렇지 않으면 취업이 안되고 그렇게 되면 인생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대학을 안 나오면 당연히 낙오자가 되기 때문에, 등의 사회의 만연해 있는 생각을 주입하는 정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학벌이 주는 의미는 정말 남다르다. 한국에서 초, 중, 고등학교가 기본 소양을 배우기 위해 존재한다기보다, 단순히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기관처럼 변한 것은 사실이며, 또 그렇기 때문에 어떤 대학이 더 좋은 대학인지를 알려주는 '랭킹'에 과도하게 집착한다고 생각한다. 또 그런 집착의 희생양은 어린 학생들이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다른 글에서 자세히 다뤄 보겠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글의 소제목에서 밝혔듯이 유럽에서도 학벌은 중요하지만, 어떤 대학교가 아닌 학위 그 자체를 중요하게 여긴다. 또 사회상 자체가 학위가 없는 사람들을 루저 취급하지도 않거니와, 모든 직업이 학위가 필요 없는 당연한 사실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내가 일하는 분야는 제약회사이기에 당연히 대부분이 대학원이나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다. 이건 제약의 특성상,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질병의 원리와 약의 효용성, 질병이 치료되는 과정, 임상 과정 등 굉장히 복잡한 의료 관련 지식이 필요하므로 논란의 여지가 없이 당연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네덜란드에서 누가 어릴 때부터 무언가 만드는 걸 좋아해서 공예 관련이 꿈으로 정해졌다면, 기술학교나 학원에 가서 관련 기술을 배울 수는 있지만 (당연히 필수는 아니다) 이 사람이 보통의 대학교나 그 이상의 학벌을 가져야 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에 건너 건너 아는 지인 중에 딱 이렇게 공예원이 꿈이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대학교에 진학해 지금은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 생각나서 적어보았지만, 여기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직업 (학위가 필요 없는)은 전부 이렇다고 봐도 무방하다. 


더 나아가서 이런 건강한 사회상이 형성된 이유는, 적어도 네덜란드는 그 어디에도 직업의 귀천 따위가 없다. 아마 높은 인건비가 여기에 한 몫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 나라는 인건비가 정말 비싸기 때문에 많은 기술직들은 대부분 고연봉자들이다. 그렇기에 내가 회사에 앉아서 일한다고 이 사람들을 무시할 근거도 없고, 회사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에게 고개 숙일 이유도 없다.


Photo by Edwin Andrade on Unsplash


얼마 전 집 리모델링을 하면서 알게 된 건설 업자가 있는데, 하루는 샤워실 타일을 부수고 새로 붙이는 작업이라 이 분 온몸에 시멘트 가루가 묻어있는 걸 본 적이 있다. 좀 쉬엄쉬엄 하시라고 커피 한잔 같이 하면서 얘기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 일을 하기 전에 이 사람은 세계에서 가장 큰, 이름만 들어도 모두 아는 은행중의 하나에서 Financial Analyst로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헌것을 새것으로 만들면서 어떤 희열을 느꼈고, 본인이 재능도 있다고 생각해서 이쪽으로 직업을 바꿨다고 한다.


물론 이런 사람은 소수이겠지만, 유럽이 받아들이는 직업이 어떤지를 보여주는 정말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대기업 은행권 애널리스트에서 소위 말하는 막노동꾼이 본인 의지로 된 건데, 학위나 학벌은 정말 특정한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과 함께, 네덜란드 사회가 편견 없이 바라본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주는 대화였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작은 공방을 하는 목수가 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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