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즈 사강은 대중에게 문제적 예술가의 이미지가 강하게 부각된 작가다. 김영하 작가의 소설 제목이 되기도 했던 “난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탓이기도 할 것이다. (사실은 그 앞에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이 붙는다.) 실제 삶에서 사회의 금기를 깨는 행동을 많이 했던 그녀는 사랑에 관한 소설을 주로 썼고, 그중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편인데, 그녀의 팬들은 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최애 작품으로 꼽는 경우가 많다.
나는 사강의 작품을 <한 달 후, 일 년 후>로 처음 접했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주인공 이름인 조제를 따온 그 소설인데, 빠른 속도감과 욕망에 충실한 묘사, 그리고 복잡하게 얽힌 관계를 통해 사랑의 덧없음을 이야기하는 내용이었다.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던지라 사강의 또 다른 작품을 읽어봐야 하나 고민했었지만 기회가 닿아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까지 완독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두 작품은 비슷한 스타일을 갖고 있다. 하지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재미와 캐릭터의 매력에서 앞서 있는 것 같다.
소설은 폴이라는 주인공이 오랫동안 연인이었던 로제와의 관계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 자신보다 훨씬 연하인 시몽을 만나 자신의 진짜 마음은 어디에 있는지를 고민한다는 내용이다. 이 설정에서 재미있는 것은 남성적 이름을 사용한 폴이 여자 주인공이고, 로제는 그녀의 연인인 남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30대 후반의 폴에게 20대 중반의 연하 남자 시몽을 붙여서 그 시대에도 파격적인 연상연하 커플을 그려냈다는 점이다.
권태에 빠진 연인, 그 틈을 타고 나이 많은 여주인공을 사랑하는 잘생긴 연하남. 현대의 드라마와 영화에서 숱하게 봤던 이 인물 구도가 무려 1959년에 집필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폴이 일 때문에 찾아간 집의 아들이 시몽이라는 점, 연하남 특유의 해맑고 정직한 매력으로 접근하지만, 동시에 연하남이 갖는 한계를 보인다는 점. 자신과 오랫동안 사귀어온 연상의 연인 로제와, 전혀 다른 매력으로 접근하는 연하남 사이에서 고민하는 여주인공이라는 설정에서 현대의 많은 멜로물이 프랑스와 사강의 이 소설에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놀라운 것은 1959년에 쓴 이 작품이 재미있다는 것이다. 특히 시몽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은 아주 잘 살아있다. 시몽과 폴이 초반에 주고받는 위트 있는 대사들, 그리고 시몽이 폴에게 접근할 때 하는 행동들은 연하남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준다. 이 캐릭터 설정이 현대의 작품으로 그대로 옮겨와도 될 정도로 잘 만들어졌는데, 그러다 보니 시몽이 폴에게 브람스를 좋아하느냐며 음악회를 권하는 장면에서는 미소가 지어지기까지 했다. (이 대사에서 소설의 제목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옮긴이에 따르면 프랑스인들은 브람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시몽의 매력에 푹 빠지게 하지만, 동시에 연하남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한계점도 명백히 보여준다. 프랑수아즈 사강이 짚어냈던 이 장단점이 현대에까지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작가가 얼마나 날카롭게 꿰뚫어 보았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매력적인 작품에도 단점이 존재한다. 일단 로제라는 인물을 시몽의 대척점에 두기에는 로제가 저지른 행동에 비난받을 여지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몇몇 독자들은 폴이 로제를 두고 고민하는 모습을 납득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건 <한 달 후, 일 년 후>에서 드러났던 약점인데, 사강의 글쓰기는 속도감이 넘치지만 좀 더 공을 들여야 하는 감정 묘사나 심리 묘사에서는 너무 쉽게 넘어간다는 인상을 준다. 현대의 독자들이라면 아마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인물의 감정 변화와 애정의 방향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공감할 수 있는 문장이 좀 더 풍부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단 두 편을 읽었을 뿐이지만 사강의 소설은 단 몇 줄의 문장만으로 인물의 애정이 다른 곳으로 향했음을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작가는 그런 섬세한 심리 묘사에 별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현상에 주목할 뿐, 그 이면에 왜 그런 마음이 생겨났는지를 파고들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대신 속도감 있는 전개와 인물들의 복잡한 애정 관계로 ‘사랑의 덧없음’을 이야기하는 것에 집중한다.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사랑에 진심이다. 다만 그 진심이 진심으로 다른 사람에게 향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 현상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영원한 사랑은 없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 두 편의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 사강의 주제 의식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끝을 향해 가면서 폴의 선택이 어느 쪽인지를 드러내는데, 그 흥미로운 결정보다 눈에 띄는 것은 사강이 말하고자 했던 사랑의 형태다. 그리고 소설의 맺음은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바를 더욱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이 흥미로운 소설을 줄곧 즐거운 마음으로 따라왔던 독자 중에는 마무리를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해할 수 없다며 의문을 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현대 멜로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보인다. 인물과 구도는 어떤 작가가 보더라도 군침을 흘릴 만큼 잘 만들어졌다. 하지만 작가의 관심사가 ‘사랑이 보여주는 현상’에 그친 만큼, 그 이상을 얻어가기는 힘든 작품이기도 하다. 매력적인 멜로 소설을 읽고 싶다면 도전해 볼 만하다. 소설에 등장하는 몇몇 장면은 인상 깊게 남을 것이다. 이렇게 60년의 시간차를 두고도 빠져들 수 있는 사랑 이야기는 많지 않다. 가벼운 마음으로 단시간에 읽을 수 있는 소설인 만큼 편하게 접근하기도 좋다. 다만 책장을 덮고 난 뒤에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 많은 생각들이 떠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