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살아있으니까 귀엽대요 그러니까, 계속 살아가자구요

<살아있으니까 귀여워> - 조제

by 퇴근 후의 서재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우연이 겹치면서였다. 당시 온라인으로 연을 맺고 있던 지인이 자신이 좋아하는 책이라며 소개했을 즈음, 우연히 보게 된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에 책의 저자가 출연했다. 저자인 조제는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이를 온라인을 통해 극복 중인 사례로 소개되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따왔을 것으로 보이는 필명 때문에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던지라 지인의 소개에 이어 영상을 접하게 되었을 때 책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 아쉽게도 독립출판물인 <살아있으니까 귀여워>는 현재 절판 상태다. 하지만 중고시장에서는 일부 재고가 돌아다니는 것 같다. 나도 중고책을 어렵게 구입해서 읽었다.


살아있으니까 귀여워 표지 1.jpg


<살아있으니까 귀여워>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다가 극복했던 (혹은 아직 극복 중인) 저자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쓴 그림책이다. 한 페이지에 저자가 그린 짤막한 그림과 함께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사람들을 위한 응원 메시지가 적혀있다.


우울증은 흔히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된다. 이는 누구나 흔하게 걸릴 수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 비유다. 하지만 정작 우울증에 걸렸던 사람들은 감기에 비견하기에는 너무나 치명적이라고 말한다. 암이나 치명적인 질병처럼 괴롭고 힘들게 옭아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책의 표지에는 ‘사라지고 싶은 날 살아지게 하는 책’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우울증에 걸린 이들이 삶의 의욕을 잃고 내면의 투쟁을 힘겹게 이어갈 때 힘을 주기 위한 책인 것이다.


책은 아주 직관적이고 간결하게 쓰였다. 초반 페이지를 살펴보면 이런 내용들이 등장한다.



나는 오늘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참 잘했어요! 기분 전환이 되었기를.


나는 오늘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습니다. 와! 정말 어려운 일을 했네요.



예전에 한때 맥도널드에 기거하는 노숙인 노인의 사연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때 그 노인을 돕기 위해 접근했던 노숙인 지원 단체의 전문가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노숙인들이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심리 상태라는 것이다. 심리적으로 무너진 사람은 대개 노숙인의 삶을 지속한다. 하지만 다시 일어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그 사람은 노숙인 생활을 청산할 수 있다.


우울증이 가장 무서운 것은 스스로 일어나려는 의지를 무력화시킨다는 것이다. 아마 저 위의 문구를 보면서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 게 칭찬받을 일인가? 친구를 만나는 게 어려운 일인가? 라며 이해가 안 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럴 수 있다. 그런 경우라면 지금까지 마음의 감기 없이 잘 지내왔다는 점에 감사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현재의 나라는 내면 안에 갇혀서 무언가를 마음먹기조차 힘들다. 설령 마음을 먹었어도 그것을 실행하는 것 또한 어렵다. 조제 작가의 <살아있으니까 귀여워>는 그런 사람들을 다독이는 책이다. 카페에 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친구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인지를 아는 사람이 전하는 격려다.


좌절하여 그 자리에 무너졌던 사람이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단계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 사람이 왜 우울증에 걸렸는지 원인을 따지고 드는 것은 나중 일이다. 당장은 그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먼저인데, 이 책은 그 단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 되는 책이다. 그리고 그 단계에 있지 않더라도 혹시나 주변에 우울을 겪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필요한 말이 뭔지, 어떤 지지가 필요한지 역으로 알아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몇 가지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소개한다.


물고기는 자라서 물고기가 되고

고양이는 자라서 고양이가 된다.

물고기도 고양이도 살아있어서 귀엽다.

나도 간신히 자라서 내가 되었다.

나도 살아있는 날 귀여워하고 싶다. 살아있으니까.



구멍을 지닌 채 괜찮게 살아갈 수 있어.

무엇으로든 구멍을 막는 데만 집착하지 말자.

여기에 구멍이 있구나…

느끼면서 살아가다 보면

작아져 있을 거예요.



피곤하고 지칠 땐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내가 이러는 건 피곤이 쌓여서고

컨디션이 좋아지면 괜찮아지지요.

이런 틈을 비집고 들어온

부정적이고 무기력한 생각들이

또 날 쓰러뜨리게 하지 않을 거예요.



오늘도 누군가의 다정한 말이

축 늘어져가던 심장을 다시 살아나게 만들었습니다.

역시 사람은 사람이 필요한가 봐요.



마지막에 소개한 내용은 특히나 공감이 되었다. 크고 작은 우울을 겪다 보면 나 혼자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다른 사람의 작은 말 하나, 행동 하나가 큰 힘이 되기도 한다. 산을 오르다 지칠 때 누군가 등에 손을 대주는 것만으로도 쉽게 나아갈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가 슈퍼맨 혹은 슈퍼우먼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자랐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인간은 나약하다는 걸 느낀다. 나약하기 때문에 인간은 모여서 집단을 만든다. 그게 호모 사피엔스가 가장 강력한 영장류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 말은 혼자서 모든 걸 다 해내기는 힘들고, 사람은 누군가와 더불어 살 때 지금보다 더 잘 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울은 연대를 필요로 한다. 사람은 관계를 통해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관계를 통해 마음의 병을 극복하기도 한다. 심리치료가 혼자 책을 읽고 공부하여 자가 치료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대면을 통해 이루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타인이 내민 손 덕에 나는 다시 일어서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여의찮을 때도 있다. 물리적인 이유로, 혹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럴 때 다른 도움을 받아야 할 텐데, <살아있으니까 귀여워>는 그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이 책의 후반에는 그림 없이 긴 글이 실린 챕터가 등장하기도 한다. 여섯 번째 ‘사랑을 배우는 시간’이라고 적힌 챕터다. 여기에는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들과 함께 인상적인 내용들이 등장한다. 자세한 건 책에서 직접 읽어보길 바라는데, 그중 젊은 사람들의 고독사에 대한 이야기가 뇌리에 남았다. 최근에 우울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고독사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며 상담 선생님이 작가에게 언제든 밥 사달라고 연락하라고 말했던 에피소드다. 책에는 좀 더 길고 내밀하게 적혀있는데, 그 말을 들은 작가는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사실 우울은 사람을 자꾸만 피하게 하는 병이다. 사람의 힘을 더하면 좀 더 쉽게 극복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자꾸만 사람과 멀어지게 하는 병. 저렇게 내가 힘들고 배고플 때 언제든 밥을 사주겠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힘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내 주변 사람들에게 언제든 기꺼이 밥을 사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게 한 내용이었다.


살면서 크고 작은 우울은 반드시 찾아온다.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운이 좋았거나, 실은 모른 척 지내온 것이다. 피할 수 없는 파도를 잘 견뎌내는 방법, 그중에는 좋은 사람과의 밥 먹기도 있을 것이고, 심리상담도 있을 것이고, 운동이나 청소처럼 기분 전환을 하는 법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 힘이 되는 책을 읽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텐데, <살아있으니까 귀여워>는 그 역할에 부합하는 책 같다. 내용은 짧고, 쉽게 읽힌다. 그래서 빠르게 지나치기 쉽지만, 천천히 곱씹어보면 조제 작가가 건네는 위로의 의미가 좀 더 크게 와닿을 것이다.


혹시라도 지금 사는 게 힘들다고 느끼고 있다면 꼭 기억하자. 살아있으니까 귀엽다. 물고기도, 고양이도, 그리고 당신도, 나도. 그러니까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자. 오늘도 당신과 나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안녕을 바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평범한 인생의 기록이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