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커피, 그리고 폭력> - 케네스 포메란츠, 스티븐 토픽
바다를 건너 다른 대륙을 만나게 되면서 인간이 사는 세상은 변했다. 비록 콜럼버스는 출발할 때는 자신이 어디를 향하는지 몰랐고, 도착하고 나서도 어디에 도착했는지도 몰랐지만, 그 무모한 모험 이후 사람들이 세계를 보는 시각은 달라졌다. 바다를 건너 다른 문명과 다른 종을 접하면서 새로운 부가 창출되고 인간의 경제사에 변화가 일어났다.
<설탕, 커피 그리고 폭력>이라고 번역된 책의 원제목은 ‘The World that trade created: Society, Culture, and the World Economy’다. 번역하면 ‘무역이 창조한 세계. 사회, 문화 그리고 세계 경제’다. 영어 제목이 좀 더 직관적이긴 하지만 한국어판 제목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 제목에 끌려 집어 들게 되었으니까. 그 덕에 이 책은 2024년의 베스트 목록에 올랐다.
책은 서문에서 15세기부터 시작된 인류 경제사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15세기 들어 중국은 평가절하된 지폐와 구리 화폐를 은으로 대체하기 시작했는데, 이 조처는 이렇다 할 관계없이 살아가던 다섯 대륙의 주민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 변화의 진원지가 됐다. 중국인들은 영국과 네덜란드인들에게 비단을 팔았고, 그 대금은 스페인 페소화로 결제됐다. 이 페소화는 지금의 멕시코와 볼리비아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아프리카 노예들이 주조했던 것이고, 그 원료로 쓰인 은은 스페인인들이 끌고 온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강제 노역을 통해 채굴된 것이었다…은은 예멘의 모카에서 커피를 구입했던 무슬림들, 그리고 나중에는 기독교도들을 통해서도 중국으로 흘러갔으며…프랑스의 루이 15세는 이 무슬림들의 음료를 아프리카 대서양 연안의 섬 상투메의 노예 플랜테이션에서 생산된 설탕으로 단맛을 낸 뒤, 중국 도자기에 담아 무도회에 모인 가톨릭 귀족들에게 소개했다. 커피를 마신 뒤에는 미국의 버지니아에서 재배한 담배가 제공됐다. 일부 귀족들은 원산지에서는 워낙 귀해서 열매가 화폐로도 이용되었던 아스테카 귀족들의 음료인 초콜릿을 더 좋아했다. 반면 영국에서는 중국산 차를 선호했는데, 차 역시 시베리아에서는 화폐로 사용됐다.
이 글에서 알 수 있듯, 인류는 대륙을 뛰어넘어 교역을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경제권이 형성되어 갔다. 중국의 차, 스페인의 은, 모카의 커피, 브라질의 설탕 등이 어지럽게 뒤섞이는 이유다. 이 복잡해 보이는 인류의 경제사를 경제지 <세계 무역(World Trade)>에 7년간 기고되었던 칼럼을 바탕으로 저술한 것이 <설탕, 커피 그리고 폭력>이다. 세계 경제가 어떤 식으로 형성되어 왔고, 거기에 무엇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는지,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사례를 들어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나간 책이다. 7개의 챕터는 각각의 테마를 갖고 있는데, 인문학과 인류사, 경제 등 다양한 방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다. 워낙 저자들이 글을 쉽게 썼기 때문이다. 유럽이 어떻게 현재의 기득권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는지, 중국은 왜 과거의 영광을 유지하지 못했는지, 과연 유럽인들이 뛰어나서 세계 경제의 중심에 들어서게 된 것인지, 동인도회사는 어떤 식으로 거대한 부를 거머쥐게 되었는지 등 <사피엔스>나 <총균쇠> 같은 책을 읽고도 이러한 의문들을 여전히 해소하지 못한 독자들이라면 그 해답에 대한 거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또한 서문에는 ‘우리는 유럽 중심의 시각을 거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한 반제국주의적 관점도 피하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유럽과 북미인들은 특별히 유능하다고도, 그렇다고 특별히 야비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유럽이 세계의 다른 지역과 했던 무역에만 초점을 맞추거나 한 지역에 집중하기보다는 될 수 있는 한 많은 지역과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주목했다’고 밝히고 있다. <사피엔스>처럼 단순한 추론으로 주장을 성립시키려 하거나, 결론을 정해놓고 사례를 끌고 들어온 책도 아니다. 책에서 언급한 사례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도 있고 낯선 것도 있어서 인문학적 지식을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책에 등장한 몇 가지 흥미로운 내용을 소개하자면, 우선 중국은 왜 바다를 지배하지 않았는지를 다룬 부분이다.
명 왕조가 1433년 이후 보물선 운항에 대한 지원을 철회하면서 중국은 사실상 해양 강국으로서의 시대가 끝나고 만다. 여기에는 국내외적인 이유가 존재한다. 우선 새로운 정치 파벌이 실권을 장악하면서 농업 생산 증대와 국내 정치 안정을 강조했다. 그리고 외적으로 대형 선박 건조에 필요한 목재의 가격이 상승했다. 이에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 시장 경제에 맡기면서 선박 건조는 중국이 아닌 동남아시아의 여러 지역에 발주하는 방식으로 대처하게 된다. 또한 중국이 해양 무역을 주로 하는 동남아시아의 해양은 계절풍의 영향을 받는다. (교과서에서 무역풍이라고 배웠던 것이 떠오를 것이다.) 몇 개월 동안 한 방향의 바람만 부는 지역의 특성은 장거리 무역을 위해 한 번 이동하면 다시 돌아오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 때문에 중국은 중개항을 이용한 단거리 무역을 선호했고, 그 결과 선박 건조 기술과 대양 항해술의 발전에 지장이 생긴 것이다.
또 다른 흥미로운 내용은 3장 ‘마약과 세계 교역’의 내용이었다. 마약이라는 단어에서 코카인이나 아편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이 챕터에서 다루는 ‘마약’에는 커피, 차, 코코아, 담배, 설탕, 카카오 등이 포함된다. 즉, 사람들에게 중독 현상을 일으키고, 지역을 뛰어넘은 교역을 통해 거대한 부를 형성했던 물품들이다. 마약에 대한 정의가 달라지면서 지금은 다른 대우를 받고 있지만 한때 이것들은 마약류 식품으로 보았다. 물론 19세기에 개발된 코카인이 처음에는 진통제였다가 나중에 코카콜라의 첨가제가 되었다는 잘 알려진 이야기나, 중국의 아편 전쟁에 관한 내용도 담겨있다.
하지만 원래 종교 목적으로 사용되던 중국의 차와 중동의 커피가 가톨릭 세계의 유럽을 장악한 데에는 값싼 감미료 설탕이 등장했기 때문이라는 추론이나, 미국이 영국과 달리 차가 아닌 커피에 빠진 이유, 19세기의 세계 경제를 굴렸던 아편의 사연보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이 거대한 세계 경제의 흐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꿰뚫어 본 저자의 통찰이었다. 마약류 식품들은 생산하는 나라와 소비하는 나라에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책에서는 ‘유럽과 북미에서는 부를 축적하게 해주고, 화폐 경제의 발달을 촉진하고, 임노동의 확대를 가져왔지만, 생산국에서는 노예제의 확대만을 불러왔’다고 적는다.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엄청난 부의 경제 시장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형성된 부가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불공정한 생산국과 소비국의 관계는 현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가난한 이유는 그들이 게으르고 미개해서가 아니라, 서구 국가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의 생산지로 전락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한 나라의 생산력을 서구에 값싸게 많이 팔아먹을 수 있는 교역품 생산에만 주력하다 보니 정작 필요한 식량과 생필품은 외부에서 수입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 나라의 권력을 쥔 상류층은 이미 서구와의 교역으로 부를 축적하고 있기 때문에 불만이 없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은 그 부를 정당하게 나눠 받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한 국가 생산력 때문에 비싼 수입품을 소비해야 하는 하층민에 머물게 된다는 것이다. 마약류 식품들은 한때 화폐의 역할을 대신할 정도로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영국의 경우 중국에게 일방적으로 빼앗기던 부를 되찾아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아편 전쟁). 이 마약류 식품들이 창출한 부에는 생산국과 소비국의 불평등한 역학 관계가 숨어있고, 이는 현대에도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다.
동인도회사의 사례를 분석한 내용에는 우리의 통념과 정반대 되는 내용도 등장한다. 과거 동인도회사의 직원들이 아시아 시장에 들어갈 때는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려는 태도가 강했다. 현지에 정착하여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교역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기술의 발달로 지역 간의 이동 거리가 짧아지자 상대국을 존중하는 태도는 180도 변하고 만다. 본토와 현지 시장 간에 이동이 쉬워지면서 도리어 자국의 언어와 문화, 습관을 현지에서도 고스란히 유지하려는 기조가 강해진다. 우리가 아시아의 유명 개항지에서 발견하는 유럽식 건축물들은 그 변화의 흔적이다. 심지어 이들은 현지 사람과 결혼하여 정착하기보다 자국으로 돌아가 자국인과의 결혼을 꿈꾸게 된다. 동시에 애국심 고취나 문명의 우월성 같은 인식도 이때 강조된다. (물론 여기에는 현지 직원들의 부패라던가, 현지 처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도 하다) 우리가 세계화라고 할 때 떠올릴 수 있는 1일 생활권 시대에 가까워지면서 도리어 배타주의, 자국 우월주의가 득세했다는 이 시각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가 혹은 학자의 역할은 실제로 ‘발생한 사건을 그대로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의 의미를 맥락 속에서 파악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그 역할에 충실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사건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무역의 단위가 세계로 확장되면서 세계 무역권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러워진 세상을 살고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사건들은 우리의 통념이나 편견에 의해 잘못 인식되고 있지는 않은가? 전 세계가 하나의 무역권으로 이어지면서 생기는 맹점이나 역효과는 없을까?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유례없는 사건을 통해 항상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는 줄 알았던 전 세계의 물류가 일시 정지되는 경험을 했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풀어놓는 사례들은 더욱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 같다. 당신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인식을 재점검해보고 싶다면 이 책은 더할 나위 없이 유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