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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Sep 22. 2024

친정의 도발

손주 비교

친정엄마와는 워낙 막역한 사이이다. 자주 통화를 하고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는 게 일상이다. 그래도 가끔 나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때가 있는데, 남동생네 손주들과 우리 아이들을 비교할 때다.


우연히도 같은 년생에 태어난 사촌지간이라 자연스레 비교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늘 우리 아이들이 늦되다는 식으로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부분이 없지 않아 있긴 하다.) 그러면서 자꾸 나보고 아이들을 가르치라고 다그친다. 그게 순수하게 딸 손주들도 잘 되라는 마음일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친손주들과 비교하면서 그들의 우월함을 자랑하는 것 같단 말이다.


나의 삐뚤어진 시선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동생네에 비하면 집에서 뭔가를 가르치고 학습시키는 것이 별달리 없기도 하다. 그것은 아마도 일정 부분 나의 성향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나는 아주 오랜 기억들을 따라 올라가도 누군가에 떠밀려서 공부한 적이 별로 없다.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스스로 독학하는 편이었다.


아마도 그런 습성이 오랜 시간 동안 공부를 하게 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늘 스스로 부족한 점을 깨닫고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식이었다. 이렇게 되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독학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나이가 들며 이런 학습능력을 다양한 분야에서도 적용해 본다.


어린 시절 친정 엄마는 나에게 어떤 식으로 교육을 하셨을까? 사실 기억에 별로 없다. 원체 형제들이 많기도 했고, 대부분의 학습은 외부의 교육기관에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 가르쳐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스스로 무언가를 깨우치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주 운이 좋아 적절한 시기에 좋은 멘토를 만나 이를 습득하는 경우도 있긴 할 것이다.


친정엄마의 다그침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아이들이 현재 엄마에 의해 일종의 학습을 교육하는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가장 중요한 건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감정을 많이 느끼는 거라고 생각한다. 말을 조금 늦어도 결국 어느 나이대에 들어가면 다 비슷한 수준으로 구사하게 되는 것 같다.


애석하게도 나의 영유아기는 그런 정서적 행복감이 조금 부족했다고 본다. 일단 엄마가 집에 없었다. 워킹맘이셨기 때문이다. 그게 지금의 시대에선 너무 당연한 건데, 늘 엄마가 없는 집이 허전하게만 느껴졌다. 제일 부러운 게 유치원을 끝나고 집에 가면 예쁜 엄마가 맛있는 간식을 주는 친구들이었다. 이런 허전한 감정이 꽤 오랜 세월 동안 내 마음을 지배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같이 놀 형제들이 있고, 손주들을 끔찍하게 여기는 조부모님이 있어도 “엄마”라는 그 큰 자리를 메꿔주기는 힘든 것 같다. 왜일까? 내가 엄마가 된 지금도 그 이유는 정확히 헤아릴 수 없다. 그만큼 어린 시절의 엄마라는 것은 그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절대적인 평온함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동생네 아이들의 엄마는 워킹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정말 육아서대로 양육하는, 그런 모범적인 엄마이다. 나는 이론으로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 다 알고 있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내 마음 한켠엔 엄마가 그냥 늘 옆에 있어주는 것 하나만으로도 정말 주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 바로 내가 어린 시절 그토록 허기져 있었던 “엄마 자체”이다.


아이들이 원한다면 모를까, 아직은 말이나 글, 수를 가르치는 데 조급해지기는 싫다. 따라서 친정엄마로부터의 잔소리는 어느 시기까지는 계속될 것 같다. 똘똘한 조카들이 일견 대견스럽기도 하지만, 늘 엄마를 찾고 다소 집착하는 모습에선 사실 조금 안타까운 마음도 있다. 그 허전함은 나 역시 잘 알고 있어서…


하여간 좀 늦되더라도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은 우리 아이들은 모르긴 몰라도 이후 삶에 정말 큰 힘이 되는 정서적 안정감을 지닐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개인차도 있을 수 있는 부분이겠지만.)


그러고 보면 친정엄만 내가 어린 시절에도, 그리고 엄마가 된 지금도 정서적 안정감은 잘 못 주시는 듯… 그래도 손주들 다 잘 되라는 마음이라 생각하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론 흘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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