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탐을 잃은 이유
첫째를 낳고, 둘째를 낳으면서 여전히 남아 있던 잔여(?) 체중들이 모두 다 빠져나갔다. 일부러 운동을 하거나 식단 조절을 한 것은 아니고, 소식을 하다 보니 조금씩 조금씩 줄어든 것이다. 물론 예전과 같은 몸매는 결코 아니다. 아이를 둘 품고 있다가 빠져나간 몸이 인위적 노력 없이 예전 그대로 돌아간다는 건 솔직히 말도 안 된다.
사실 여기에는 약간의 서글픈(?), 서러운 썰이 있다. 그러니까 내가 불가피하게 식탐을 줄이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이 숨어 있는 것이다. 터울 적은 두 아들을 먹이기 위해서는 엄마의 희생이 필요한 법. 어느 순간 나는 나의 욕망을 떨쳐버리는 위인이 되었다.
식도락의 고수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맛잘알이었고, 미식가의 까다로운 감각도 어느 정도는 지니고 있는 나였다. 특히 식은 밥을 먹는 걸 혐오했는데, 아이를 먼저 먹이다 보니 매번 식은 국물을 떠먹고 있는 처지가 돼버렸다.
처음엔 그게 너무 서럽고, 억울했다. 남편이 얄밉기도 했다. 그러다 서서히 마음가짐이 바뀌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즐기진 못하더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이자는 것. 그러니까 나의 식탐을 줄이자고 결심하게 된 것이다. (물론 어느 날 갑자기 결심하게 된 것이라기 보다는 서서히, 자연스럽게 그렇게 돼버린 것이다.)
그제서야 문득 깨달아졌다. 엄마들이 늘 식구들보다 뒤늦게 식사를 하곤 했다는 것을… 어렸을 땐 그게 너무 당연한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엄마의 작은 희생의 한 모습이었다. 그들이라고 왜 먼저 따뜻한 밥을 먹고 싶지 않았을까. 먼저 식솔들을 챙겨주다 보니 늘 본인은 뒷전이었던 것이다.
무튼 그 결과 나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자연스레 다이어트에 성공하게 되었다. 식탐이 그렇게 줄다 보니 설령 아이들이 없을 때에도 적당히, 천천히 식사를 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결과적으로 나에게 이득이 된 것인지도…!
지금은 매 끼니마다 자연스레 아이들을 먼저 챙기게 된다. 당장 내 배가 고파도 그것은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문제가 돼버린 것이다. ‘그래, 엄마는 이제 다 큰 사람이고, 너희들은 앞으로도 무럭무럭 더 성장할 사람이니 엄마가 양보해야지.’ 이런 마음이야말로 “아가페(Agape), 절대적인 사랑” 아닌가!
자식이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단 말이 있다. 솔직히 그 말은 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실제적으로, 그러니까 생리학적으로 배부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다. 엄마가 스스로 ‘나는 배고프지 않아.’라고 스스로 욕망을 절제하였기에 가능한 배부름이다. 참, ‘엄마’라는 단어는 그래서 조금 서글픈 구석이 있다.
아무튼, 아들들 덕분에 엄마는 날씬할 수 있네! 그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