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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둥 Apr 20. 2022

방황하는 20대에게

나쓰메 소세키 - 마음

책을 읽어 보겠다는 마음을 먹고 다양한 책들을 살피다 보니 소설 읽기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중1 시절 처음으로 장편 소설이라는 것을 접했을 때의 읽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명한 고전들을 읽으면서도 그 가치를 판단 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 고전은 더 이상 고전이 아니라 고문(拷問)일 뿐이다. 하지만 고전에 대한 지적 욕심을 포기할 수 없기에 서울대학교 권장도서 중에 하나인 이 책을 손에 잡았다.


이 소설은 3부로 구성 되어있다. 1부에서는 화자인 나와 선생님의 만남, 2부에서는 아버지 임종을 위한 귀향, 3부는 선생님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1, 2부는 3부로 향하는 도입에 가깝고 3부에서 그 동안 감추어진 선생님에 대한 의문이 해소 되면서 몰입감 있게 읽게 된다. 반면에 1, 2부는 지루함을 피할 길이 없다. 잘 참고 읽으면 3부에서 놀라게 되리라. 그리고 다시 읽으면 1, 2부에서 생각보다 많은 복선이 있음을 알게 된다.


화자는 도쿄 근교의 가마쿠라 해변에서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말이 선생님이지 자신 보다 경험이 많은 선배에 가깝다. 1부에서는 선생님과의 만남과 우정을 쌓게 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2부에서는 대학을 졸업한 화자가 아버지의 임종 소식을 듣고 귀향해서 겪게 되는 세대 간에 갈등을 다룬다. 2부의 끝자락에 화자는 선생님으로부터 두툼한 편지를 받게 된다. 화자는 편지에서 선생님의 자살에 대한 내용을 확인하고 놀라게 된다. 그 충격으로 아버지의 임종이 코 앞 임에도 도쿄 행 기차에 오른다. 3부는 기차 안에서 읽는 선생님의 편지를 통해서 그에게 염세적인 가치관이 형성되게 한 사건들과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풀어낸다.


이 책을 보면서 나의 20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작중에서 20대인 화자, 지금은 30대지만 20대였던 선생님과 그의 친구 K에 대한 서술을 보면 이들이 모두 20대 시절의 내가 가진 모습이였고 시대는 달랐지만 그 시절 내가 했던 고민들과 비슷한 고민들을 아주 심도 있게 하고 있었다. 20대가 모든 연령 중에 유달리 번민이 많은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신뢰에 대한 배신이다. 누구나 살면서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는 경험을 겪게 된다. 그것은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마련이다. 선생님은 학창시절 부모가 돌아가시고 작은 아버지의 돌봄을 받게 된다. 하지만 작은 아버지는 유산을 위해 자신의 딸과 선생님을 결혼 시키려 했고 그것을 거부하자 선생님 몰래 선친의 많은 유산을 빼돌리게 된다. 선생님은 청소년기에 겪었던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어 버리게 되고 만나는 사람 마다 배후에 무엇이 있을지 의심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습관을 가지게 된다.


나는 사람에게 기만을 당했어. 게다가 한 핏줄인 집안사람에게 사기를 당했지. 그건 결코 잊을 수가 없어. 내 아버지 앞에서는 선량한 사람이던 그들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용서하기 힘든 파렴치한으로 변해 버렸어. 그들에게서 받은 굴욕과 피해를 나는 어려서부터 오늘날까지 짊어져야만 했어. 아마 죽을 때까지 계속 그런 부담을 떠안고 가야겠지. 죽을 때까지 그걸 잊을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아직 복수는 하지 않고 있어. 생각해 보면 개인에 대한 복수 이상의 것을 실제로 한 셈이지. 그들을 미워하는 것뿐 아니라 그들이 대표하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증오하는 법을 배웠으니까.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두 번째는 사랑이다. 선생님은 하숙집 딸인 시즈를 사랑하게 된다. 아직 자신의 사랑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본인의 고집으로 친구 K를 하숙집으로 끌어드린다. 하지만 본인이 잘 알던 친구 K의 성격과 달리 시즈와 그들이 사랑하게 될까봐 고심한다. 결국 K는 시즈를 사랑하게 되지만 선생님에게만 말하게 되고 선생님은 질투로 이성을 잃는다. 평소 K는 지극히 신념에 의해서 움직이는 인물로 자신의 사상적 전진을 위해서 사랑은 필요없다는 주의였다. 자기 자신이 가져왔던 생각에 대해 너무나도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었기에 선생님은 자신에게 고뇌를 토로하는 K에게 그 점을 꼬집어 상대의 마음을 할퀸다. 그 와중에도 차마 자신도 시즈를 사랑한다는 것을 밝히지 못하고 하숙집에 K가 없는 순간에 하숙집 여주인에게 시즈와 결혼 승낙을 얻어낸다. K는 이 소식을 선생님이 아닌 하숙집 여주인에게 듣게 된다. 신념을 벗어난 자아가 괴로웠는지 친구의 배신이 괴로웠는지 K는 자살을 선택한다. 친구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선생님은 시즈와 결혼은 하게 되지만 방황 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윤리적 존재로서 자의식을 채우고 있던 자신에 대한 신뢰를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작은아버지에게 사기를 당했던 당시에 나는 남을 믿을 수 없다고 절실히 느꼈던 게 사실이지만, 남을 좋지 않게 본 것뿐이지 아직 나 자신은 정확한 사람이라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세상이야 어떻든 나만은 반듯한 인간이라는 신념이 어딘가에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던 게 K와의 일로 여지없이 무너지고, 나 역시 그 작은아버지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의식이 들면서 갑작스레 휘청거렸습니다. 남에게 진저리를 냈던 내가 나 자신에게도 진저리가 나서 어떻게도 해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20대의 번민은 근본적으로는 사람과 인생 혹은 자기 자신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온다. 이 책의 제목이 마음이듯 사람의 마음이 가장 변화무쌍한 시절이 20대이다. 사랑으로 인해 겪게 되는 선생님의 내면적 갈등이 상당하다. 사람에게 배신당한 사실을 쉽게 잊으려고 노력하기 보다 마음 깊이 각인 시키고 또 발전 시킨다. 게다가 타자였던 작은 아버지와는 달리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존재였던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면서 그 마음은 치명상을 입게 된다. 밤을 새우며 고뇌해도 아무런 돌파구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생각이 생각을 낳아 자신을 더 큰 구속으로 밀어 넣는 행위는 20대의 전형적인 사고 패턴이기에 젊은 시절 선생님의 답답함이 온전히 글 속에서 전해진다.


죽었다고 생각하고 살아가기로 결심한 내 마음은 때때로 외계의 자극에 통통 튀어 오릅니다. 하지만 내가 어떤 쪽으로든 힘껏 나아가려고 하면 그 즉시 무서운 힘이 어디선가 달려와 내 마음을 움켜쥐고 옴짝달싹 못 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힘은 찍어 누르듯이, 너는 아무것도 할 자격이 없는 인간이다, 라고 얘기합니다. 그 한마디에 나는 바짝 움츠러듭니다. 한참 지나서 다시 일어서려고 하면 또다시 압박이 들어옵니다. 이를 악물고 왜 이렇게 나를 방해하느냐고 소리를 내지릅니다. 불가사의한 힘은 차가운 목소리로 비웃습니다. 그야 네가 더 잘 알잖아, 라고 말합니다. 나는 다시 시들시들 움츠러듭니다.


K도 자신의 길에 결코 사랑을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가 사랑으로 인해서 무너지는 자신을 견딜 수 없게 된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 만큼 결벽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강하다 보니 유연함이 없고 휘어짐을 감당할 수 없기에 부러지게 된다. 10여년의 차이를 두고 이 두 친구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20대에 가졌던 상처를 그 때의 일로 남겨 두지 못하고 계속 안고 살아가는 사람의 끝은 이토록 비참할 수 있다. 내적, 외적의 갈등에 대해 적절한 체념 혹은 수긍이 반드시 필요함에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이 순수함이 한편으로 부럽고 지극히 가슴 아프다.


20대는 실개천에서 태어난 치어가 강물을 따라 성장하다가 바다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상황과 비슷하다. 갑자기 만난 바다에서 몸은 자유롭지만 이 넘치는 자유는 공허함과 외로움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자신과 세계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에 방황은 불가피하다.

… 자유와 자립과 자아가 넘치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 대가로 하나같이 이런 외로움을 맛보지 않으면 안 되겠지.


배설 될 곳을 찾지 못하는 이 시절의 울분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지만 피해갈 수 없으니 조금 덜 괴로워 하면서 보냈으면 한다. 두부 같은 마음과 정제되지 않은 언변으로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쉬운 나이기에 그것이 관계든, 설익은 신념이든, 자기 자신에게든 절대적인 가치부여를 두려워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사람의 생각이란 세월의 흔적이 가슴에 퇴적 됨에 따라 변화를 경험하게 되므로 오늘 내가 가진 것이 내 존재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자. 단지 황량한 백지에 그것 하나만 덩그러니 쓰여져 있어 전부인 것처럼 보일 뿐이다. 살다보면 20대의 생각은 그 시절에 남겨두게 마련이고 30대에는 다른 생각으로 조금 덜 괴로울 테니 지금 가진 생각의 절대성을 항상 부인할 줄 아는 유연성을 이 책을 통해서 배웠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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