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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둥 Apr 20. 2022

타인의 아픔을 바라보는 나의 불편한 시선

내 가슴은 왜 이렇지?

직장에서 연차는 꽉 찼는데 고가는 형편없고 앞으로 잘 받을 가능성도 안 보여서 한참을 고민할 때에 문득 가깝게 지내던 지인의 딸아이가 자폐 판정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비슷한 연령의 아이를 양육하며 사진을 보여주며 즐겁게 이야기하던 사이라, 그 충격은 둔기로 머리를 맞은 듯했다. 사진 속에서 보았던 그 예쁜 아이가 자폐였다니 할 말을 잃었다.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 지도, 그런 걸 해야 하는지도 막막하고 먹먹했다. 역설적으로 이 사실은 낚싯바늘에 걸려 잔잔한 수면 밖으로 솟아나듯 끌려 나오는 작은 붕어처럼 나를 고민의 늪에서 건져냈다. 타인의 아픔 앞에서 내 고민의 가벼움은 옅은 입김에도 쉬이 날리는 먼지였기에 오히려 편안했다. 잔인하지만 내 현실을 긍정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날이 선 연민을 오래 쓴 연장처럼 무디게 하고 타인의 아픔은 그 만의 몫이 되어 버렸다. 매일 같이 뉴스에 나오는 수많은 사실 중 하나로 내 마음속 어딘가에 자리 잡았다. 한 때 나를 뒤흔들던 혼란의 자리에는 사라진 줄 알았던 그 가벼운 고민이 현상액 속 사진처럼 시나브로 형상을 드러내고 머릿속에서 음각되었다.

먼 나라의 전쟁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더 참혹하다. 동료들과 함께 전쟁으로 인해 등낙할 주식 이야기를 한다. 멀리서 전범을 비난 하지만 힘없는 메아리이고, 행동 없는 주장처럼 공허하다. 슬픔을 공감하기에는 물리적 거리만큼 심적 거리가 멀다. 지구상에서 가장 처참한 전쟁을 겪은 지 70년밖에 되지 않는 나라에 사는 내가 타인의 재앙 앞에 이토록 큰 괴리감을 느낀다. 오늘도 생사의 기로에 선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피 흘리며 쓰러진 아이를 끌어안고 울부짖는 어느 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잠시 동요했다가 건강을 생각해서 비타민을 챙겨 먹는다. 차라리 부끄러움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좋을 것을… 피하지 못하는 불편한 감정을 오래된 수첩처럼 덮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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