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어머니는 아직 생존해 계시는가?
딩동~ 딩동~
누구지? 올 사람이 없는데..
현관 앞에 서 계시는 분은 엄마의 친구분이셨다. "어세오세요. 여기 좀 앉으세요. 고구마 좀 드세요." "동생이 한 박스 사준 고구마가 꿀보다 더 달았다. 아버지와 내가 먹을 때마다 감탄을 연발하며 거의 매일 다섯 개씩 삶아 먹고 있던 중 오늘은 먹기 직전이라, 다 내 드렸더니 그분 역시 " 고구마가 참 달고 맛있네." 하며 그릇을 다 비우셨다.
"엊그제 내가 떡국 한 그릇 끓여 왔더니 사람이 없어 그냥 갔다. 어디 갔더냐? " 하고 물어와서 네 볼일이 있어 잠깐 나간 사이에 오셨나 봐요." " 내 좀 있다가 저녁때 떡국 한 그릇 끓여 오마." 하며 몸을 일으키셨다. 안 끓여 와도 되니 좀 더 놀다 가시라 해도 금방 자리를 털고 나가셨다.
그분이 가신 후 "아버지 아까 그분 누군지 아시겠어요?" 하고 물으니 "앞면이 있긴 한데 자세히는 잘 모르겠다."라고 하셨다. 엄마 친구분이잖아요. 하니 그때사 "아 그렇나?" 하셨다. 사실 나도 오늘로 그분을 네 번째로 뵙는 날이다. 20여 년 전에 엄마집에서 김장하는 날 도와주려고 오신 그분을 처음 뵈었었다.
그런 후 한 달여 전에 우연히 동네 교회에서 행하는 연례행사 중에 동네 노인들에게 식사대접을 하는 날이 있는데 아버지를 모시고 간 자리에서 뵈었다. 아버지로 인해 저를 알아보신 그분이 먼저 아는 체를 하셨다.
그때는 단발 파마머리의 단정한 모습이라 연세에 비해 세련되고 젊은 모습이었는데 쭈글쭈글한 할머니가 다 되어 있었다. 새삼 세월의 무상함에 가슴이 아려왔다.
"그래 아버지 집에 다니러 왔냐?" "아니요. 최근에 아버지가 허리 시술받아 거동도 힘들고 정신도 온전치 않아 모시기로 했어요." "그럼 이사를 들어왔냐?" "아니요. 애들과 남편은 저희 집에 따로 살고 있고 저만 들어왔어요." " 아이고, 그래 고생한다. 뭐니 뭐니 해도 딸이 최고다. " 라며 추켜세우셨다.
오후 5시쯤 되어 정말로 떡국을 2인분을 끓여 1회용 포장지에 포장해 들고 다시 들리셨다. 연로한 분께 제가 끓여드려야 하는데 죄송하고 감사했다. 2주쯤 전에도 호박죽과 아욱국을 끓어 주셔서 잘 먹었는데 친딸도 아니고 지금은 하늘로 떠나고 없는 친구의 남편과 그 딸을 위해 수고로움을 자처해 가며 음식을 가져온 그분의 따뜻한 정과 정성이 눈물겹도록 감사했다.
엄마가 떠나시기 전 마지막으로 항아리에 가득 남기고 가신 멸치액젓이 있었다. 깨끗이 씻어둔 빈병 네 개(2리터짜리 두 개 1.5리터짜리 두 개)에 담고 그사이 삶아둔 아직 따끈한 고구마 다섯 개도 할아버지 드리라며 봉지에 넣어 드렸더니 "아이고 이리 많이 주냐?" 너무 많다면서도 잘 먹겠다고 다 들고 일어서셨다.
아버지도 더 쉬었다가 가라고 한마디 덧붙이는데도 몸이 좋지 않은 할아버지 혼자 계셔서 가봐야겠다며 서둘러 떠나셨다.
그분이 떠나신 후 "엄마 친구분도 많이 늙으셨네. 참 세월이 야속하다. 그 고운 얼굴을 저리 초라한 할머니로 만들어 놓았네." 했더니 옆에서 아버지도 "그러게 말이다. 가는 세월 붙잡고 싶네.
.........
"그나저나 자네 어머니는 생존해 계시는가?"
?????
오우 마이갓 ~~ 지금까지 멀쩡하게 대화를 잘도 이어가시더니 자네 어머니는 생존해 계시는가가 웬 말인고?
"제가 누군데요?" 또다시 반복되는 질문에 흠칫 놀라며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 말했음을 눈치채고 말문을 닫아버린 채 엉뚱한 곳을 향해 시선을 돌리시는 아버지..
아이고 신이시여, 이럴 때 저는 울어야 하옵니까? 웃어야 하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