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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문화는 악습이다.

사랑의 밥상을 선물하자.

by 피닉스

내 남동생들과 오빠는 수시로 아버지댁을 드나들며 안부를 묻고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간식을 사 오곤 한다. 아들들이 방문을 할 때면 얼굴에 화색이 돌고 겨드랑이에 날개라도 돋아나 금방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기세다. 아버지께 누군지 아시겠냐고 물으면 정확히 세 아들 이름을 거침없이 말하신다.


큰아들 작은아들 막내아들 이름은 술술 꿰면서 하나밖에 없는 귀한 딸은 이름은커녕 한 번씩 딸인 줄도 모르고 조카에서 동생으로 집사님으로 시시각각 호칭이 바뀌면서 말이다.


병시중을 들고 목욕을 시키고 밥시중을 드는 딸이건만 정작 가장 가까이 있는 딸은 가끔 잊어버리고, 안개 낀 길을 한참을 헤매다 간신히 갈길을 찾아낼 때도 있고, 끝내 못 찾고 "몰라"를 연발하는 흩어진 기억들은 바다에 이리저리 떠돌며 표류하는 난파선의 잔해를 닮아있다. 내심 서운해 자주 불만 아닌 불만을 쏟아내곤 한다. 왜 아들은 기억하면서 딸은 몰라볼 수 있느냐고.

그 대답이 가관이다. 아들은 같이 오래 살았고 딸은 출가외인이라 기억을 못 하신단다. 신혼 초에 잠깐 외지로 나가 3년 반을 머물다 온 이후론, 줄곧 부모님의 둥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은 근거리에서 4남매가 모여 살았었기에 아버지의 말씀은 맞지 않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살았지만 명절이나 어버이날 등 집안의 행사 외에는 얼굴 비추기도 쉽지 않았던 건 아들이나 딸이나 매 한 가지였다. 철저히 가부장적이고 봉건주의 사상으로 무장된 아버지의 내면에는 여자와 딸은 출가외인이라 남이라는 관념이 여전히 깔려 있다.


기억이 희미해지는 와중에도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붙잡으려는 본능이 마지막 몸부림으로 작용하는 것이리라. 아버지에게 있어 아들은 마지막까지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고 본향과도 같은 존재이다.


중학교 3학년때의 일이었다. 할머니의 첫 기일 때 제상에 손녀로서 당연히 절을 올리려는 나를 가로막으며 딸은 출가외인이라 제상에 절을 하는 게 아니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비수가 되어 지금도 그 상흔이 선연히 남아있다.


지역이나 집안마다 제례의식이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집은 기제사나 명절제사 때 그 집 며느리나 딸은 죽어라 음식장만 하느라 종종걸음을 치고 찾아오는 손님들 뒤치다꺼리에 허리 펼 시간이 없고, 그에 반해 남자들은 세상 편하고 한가롭게 둘러앉아 고스톱판이나 술판을 벌이고 희희낙락하다가 다 차려진 제상에 깔끔한 양복 차림으로 절을 올리는 것으로 의식이 끝이 난다. 제사가 끝난 후면 또 앉아서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대접받는 풍경은 어느 집이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 실제로 귀신이 와서 제사 음식을 싹싹 비우고 가면 최고급 음식으로 제사 지낼 사람 아무도 없을게다."

나의 할머니가 살아생전에 남기신 명언이다.

그렇다. 제사는 망자를 위한 것이 아닌 살아있는 자를 위한 허례허식이다.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라도 생기면 "조상님에 대한 정성이 부족해서 노하셨나? 조상의 묏자리가 안 좋은가? 굿이라도 해야 하나? 명당에 이장을 해야 하나?" 온갖 불길한 상념들이 들끓는다. 미신에 빠지면 끝도 없다. 제를 올리고 묘를 이장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조상을 위함이 아닌 본인을 위함이다. 조상을 핑계 삼은 철저한 나와 내 가족을 위한 방어책이다. 하여 허례허식인 제사문화는 없어져야 할 폐단이고 악습이다.


우리 집은 조상 대대로 불교집안이었던 과거에는 제례가 엄격한 집안이었다. 그러다 30여 년 전에 부모님이 기독교로 전환하면서 절 올리는 것 대신 기도로 대체했으나 어느 정도의 구색은 갖춰 제상을 차리니 제사를 안 지낸다고도 또 지낸다고도 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중간 형태의 제례형식이다. 교회는 발바닥이 닳도록 쫓아다니고 주야장천 기도하며 찬송가를 부르면서 제사를 완전히 없애지 못하시는 부모님이 못마땅할 때도 있었지만 자식들은 불만 없이 묵묵히 따라 주었다.


해마다 아버지의 주도로 제례기도를 올리다 작년 추석을 기점으로 다시 절을 올리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모기소리만 해 더 이상 기도를 올릴 기력이 없고 정신이 맑지 않으니 스스로 그 불문율 아닌 불문율을 깨신 것이다. 그냥 물 한잔 차 한잔 올리고 기도만 하면 될 것을 굳이 음식장만을 하는 것에 약간의 불만이 있다가도 정성으로 마련한 음식을 가족들과 나누어 먹는다는 개념으로 준비하니 딱히 나쁠 것도 힘들 것 또한 없었다. 지금은 아버지의 정신이 흐려지고 있으니 오히려 예전에 기도제례로 그나마 기독교 분위기를 풍겼던 예전이 새삼 그리워지기도 한다.


제사는 정해진 규칙대로 지내는 것보다 각자의 상황이나 형편대로 모시는 것이 현명하고 마땅할 것이다. 평소 부모님께 전화 한 통도 없다가 돌아가신 후에 제상에 빠지면 안 되는 음식의 종류와 위치, 방향, 모양 따져가며, 생전에는 구경도 못한 최고급 음식으로 상다리 부러지게 차리는 행태, 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모순적인 행위인가?


산해진미로 장식된 화려한 제사상이 아닌 따뜻하고 훈훈한 대화가 오가는, 소박하지만 웃음꽃 피는 사랑의 밥상을, 가끔씩 아주 가끔씩 만이라도 부모님께 선물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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