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드니 복잡한 인간관계, 상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전전긍긍해야 하고 진을 빼놓는 피곤한 인간관계에 신물이 날 때가 있다. 여기에는 끈끈한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도 예외가 아니다. 그냥 홀로 산속 깊숙이 들어가 자연인처럼 살아가고 싶을 때도 있다. 휴대폰도 끄고 세상과 연결된 그 어떤 통로와도 차단하고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돌싱이나 싱글을 측은하게 바라보거나 그들을 대할 때면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아예 가까이 안 하려는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홀로 사는 그들이 한없이 부러울 때가 있다. 사별이든 이혼이든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사업가가 아닌 이상 경제적인 어려움은 있을지 모르나 적어도 배우자에게 받는 간섭이나 무관심에 대한 스트레스는 안 받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기대를 하고 뭔가를 바라는 순간 그 관계는 균열이 생기고 시간이 경과하면서 서서히 무너진다. 남은 물론이고 부모자식 간이나 부부간에도 마찬가지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부모에게 이렇게 실망을 줄 수 있어?." "엄마(아빠)가 제게 해 준 게 뭐가 있어요?" "당신이 어떻게 나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어?" "사돈 남 말하네. 그럴 거면 일찌감치 갈라서."라는 말로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는 말을 무심코 내뱉고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존재자체가 환희고 사랑이며 온 우주와의 교감임을. 우리는 반려동물한테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내가 너를 키우고 정성을 쏟았으니 너도 그 보답으로 나에게 한 시간 동안 재롱을 부리라거나 저기압인 내 기분을 풀어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와 마주하는 순간은 티끌만큼의 거짓이 없는 원초적이고 무조건적이며 완전한 사랑이다.
애완견을 키우다 어떤 상황으로 버려지기도 하고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소중한 가족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옛날에는 개도 다른 가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적이 있었다. 강아지를 들여 새끼를 낳아 젖 뗄 정도로 자라면 그 새끼들은 전통시장에서 살림 밑천으로 팔려나갔다. 시골동네를 활보했던 개장수에게 두세 번 새끼를 낳은 어미개도 결국은 보신탕용으로 팔려나갔다. 제일 튼튼한 새끼 중 한 마리가 남아 가문을 이어갔다.
집집마다 그런 용도의 개들이 득실거렸다.
우리 집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푸른빛과 검은빛이 뒤섞인 강아지 한 마리를 시장에서 사 왔다. 국민학교 4학년 무렵이었다. 내가 몇 날 며칠을 고민해 지은 '모스'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암컷 잡종견이었다.
모스와는 잠자는 시간 외에는 늘 함께했다. 어떤 때는 내가 학교 가는 길에도 몰래 따라오다 들킨 적이 몇 번 있다. '모스야 집에 가서 기다려 나중에 보자.' 하고 보내면 가는 시늉을 하다 안보는 사이 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오곤 했다. 내가 휙 돌아보며 '학교에 너 있을 곳 없어. 집에 가서 놀고 있어.' 해도 못 들은 척하더니 교문 앞에 이르러서야 더 이상 떼를 쓰도 소용없다는 걸 아는 듯 포기하고 돌아가던 영리하고 사랑스러운 녀석이었다. 그 후로 3여 년이 지나는 사이 새끼들도 세 번 정도 낳아 다 팔려나갔지만 모스만은 여전히 내 곁에 남아 재롱을 피웠다. 영원히 함께 할 거라는 믿음에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때의 어느 하굣길에 집으로 오는 비포장도로를 걷고 있었다. 그런데 길거리에 서 있던 모스가 나를 보더니 꼬리를 치고 있었다. 충격적 이게도 단단한 쇠사슬의 목줄에 묶인 채 어느 아저씨의 손에 끌려가던 중 잠시 그 아저씨는 지인인듯한 분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모스야 ' 부르니 꼬리를 치면서도 자신이 팔려간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체념을 한 듯 내게 안기지도 않고 너무도 슬프게 바라보며 "현아 그동안 고마웠어. 내 걱정은 하지 마. 나 없어도 잘 살아 돼." 하는 듯 한 처연한 눈빛을 담고 있었다.
순간 부모님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개장수 아저씨한테 얼마에 샀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나에게 그만한 돈이 있었다면 한치의 망설임 없이 모스를 되샀을 것이다. 안 팔려고 하면 더 얹어 주고라도 샀을 텐데 슬프게도 내게는 땡전 한 푼 없었고 그 짧은 순간에 빌릴 데도 없었다. 몇 초의 짧은 순간에 "저 아저씨를 밀치고 모스랑 도망칠까? 아니 저 아저씨의 뒤를 밟아 보신탕집에 맡기기 전에 몰래 데리고 탈출할까?" 온갖 상상을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눈앞에서 모스를 떠나보내야만 했다. 모스가 슬퍼할까 봐 눈물도 보일 수 없었다. 그러나 가슴으로 피눈물을 삼켰다. 오랜 세월 동안 모스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만 했다. 44년이 흐른 지금도 그때의 슬픈 눈빛의 모스를 잊지 못한다.
존재 자체로 내 삶의 전부인 관계, 나에게 남아 있는 사랑을 다 내어 주고도 끊임없이 주고 싶은 애틋한 관계, 미운짓을 해도 미워할 수 없는 존재, 보고 또 봐도 보고 싶고 한 순간도 싫증 나지 않는 존재, 그가 아프면 나도 같이 아픈 존재
나는 그런 사랑을 견공사랑이라 명명한다.
이 세상엔 남을 누르고 앞서가려는 경쟁과 끝없는 욕망 그리고 배신과 사기가 난무한다. 그러나 이 세상 곳곳에서는 아무런 조건 없이 재능기부를 하고 천재지변을 당한 곳이나 장애인 시설을 찾아다니며 봉사라는 이름으로 숭고한 사랑을 묵묵히 실천하는 천사들은 존재한다. 그러기에 세상은 아직 아름답다 말할 수 있으리라. 조건 없는 사랑이 무엇인지 각인시켜 주고 간 모스가 오늘따라 더욱 그리워진다. 모스와 나 사이에 이어졌던 그 끈끈한 무지갯빛 사랑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서서히 물들이고 온 우주로 뻗어가는 희망을 꿈꿔 본다. 견공 사랑족이 늘어날수록 이 세상은 싱그러운 초록빛 수채화로 번져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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