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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품격

60세부터는 본인의 삶에 집중할 때이다.

by 피닉스

인생 60세에 접어들면 자녀들이 거의 성장해서 각자의 자리에서 사회생활을 활발히 하거나 본인의 가정을 꾸리고 살아갈 때이다. 그러니 이제 자녀걱정을 조금씩 내려놓고 본인의 삶에 집중해야 할 때이다.


주위에 보면 자녀들도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고 노령연금과 자녀들이 매달 보내는 생활비를 보태면 편안하게 취미생활 즐기고 친구들과 무리하지 않은 선에서 여행을 즐기며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어카 끌고 하루 종일 박스를 주우며 몸을 혹사하며 사는 노인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여름에는 살갗이 타들어가는 듯한 뙤약볕 아래에서 겨울에는 시베리아 벌판 같은 매서운 바람을 뚫고 죽음을 불사한 대가가 겨우 일 이만 원인데 말이다. 물론 연세가 많아 취업은 불가능하고 박스라도 줍지 않으면 당장 끼니 때우기도 힘든 노인이 많은 것 또한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기도 하다.


몇 년 전에 마늘농장을 운영하는 지인이 인부를 구할 수 없어 납품에 차질이 생기겠다며 하루만 마늘 캐기에 동참해 달라는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간 적이 있다. 그곳에는 20여 명의 인원 중 대부분이 6-70대의 어르신들이었다. 60대 중반의 어느 부부도 같이 왔었는데 아내분은 다리 관절염으로 인해 제대로 걷지를 못했고 바닥에 앉아서 마늘을 캤기에 다른 사람보다 속도가 절반 이하로 느렸고 남편분은 아내분 뒤를 그림자처럼 뒤따르며 아내몫까지 분주히 움직였다. 안타까워 자꾸만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남편분도 부지런히 움직이기는 하나 아내 몸까지 챙겨가며 일을 하려니 한 사람이 할 몫을 그들은 두 사람이 하고 있어 자꾸만 옆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일하시는 게 짠했다. 앉은 상태에서 일어서거나 자세를 바꾸는걸 남편분이 도와주지 않으면 아내분 스스로 하지를 못했다.


나는 속으로 관절염으로 다리가 잘 펴지지도 않아 걷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아내를 데리고 중노동을 해야 하는 남편의 심정은 어떨까 싶은 마음에 한없는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분이 한 마디씩 내뱉는 말을 추론해 본 결과 생활이 크게 궁핍한 것 같지는 않았다. "큰 빚이 없으면 아내는 집에 두고 혼자 나오실 것이지. 얼마나 돈에 환장했으면 아내의 고질병에도 눈을 감을 수가 있을까? 아니 남편분은 그렇다 치더라도 자신의 몸은 본인이 더 잘 알 텐데.. 치료부터 하고 일을 하던지 하시지." 몇 푼 벌려다가 병원비가 더 나가겠다는 생각에 이르자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분들이란 결론에 이르렀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그 부부가 함께 일하는 일행들과 통성명을 한 후로는 일하는 중간중간에 남편분이 자식자랑에 열변을 토해냈다. 곁에 있는 분들의 표정을 보니 듣기 거북해하는데도 아랑곳 않고 틈만 나면 떠들어댔다. 자랑의 요지는 슬하에 아들만 3형제를 두었는데 모두 의사라는 것이다. 공교롭게 그 3형제 모두가 의사 며느리까지 데려와 본인 집안에 의사가 무려 여섯 명이라며 침까지 튀기며 열연했다.

."아이고 그리 잘난 아들 며느리가 모두 의사씩이나 하면서 어머니가 관절염으로 걸음도 못 걷는데 고쳐줄 생각은 않고 마늘밭에 돈 벌려가시게 놔두냐?" "그러게 저 말이 사실이라면 멀쩡한 아들들을 나쁜 놈으로 매장시키고 본인 얼굴에도 침 뱉는 행위인데 도대체 생각이란 게 있는 양반인가?" " 다 뻥 아니야?" 라며 옆에서 일하시는 어르신들이 쑥덕거렸다. "아이고 공부시키느라 고생하셨겠어요." "대단하시네요." "부러워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한 분도 없었다.


사람마다 행복의 관점은 다를 것이다. 자녀들을 번듯하게 성공시켜 놓고 이제는 먹고살만하니 힘든 일도 여유롭고 즐겁게 할 수 있고 아등바등하게 돈 버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다고 말이다.

옳은 말이다. 일을 하지 않으면 당장 굶어 죽을 처지라면 신변을 비관하며 죽지 못해 산다고 불평을 해댈 것이다. 그러나 일을 안 해도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사람이라면 적당히 일하고 지루하지 않을 만큼 인간관계도 유지하면서 용돈도 덤으로 따라오니 매일이 즐겁고 콧노래가 절로 나올 것이다.


전제가 붙는다면 건강한 정신과 신체가 따라 줄 때 가능한 일이다.

주위에 보면 돈이 많아도 아까워서 못쓰는 사람이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 사치를 부리거나 남한테 쓰는 데는 인색하더라도 본인의 건강을 지키는 데는 쓸 줄도 알아야 하는데 안타까운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자신의 몸을 혹사해 가며 힘들게 돈 벌어 자식과 손주한테 쓰는 것이 사는 보람이라 말하는 노인들이 의외로 많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단순한 생각이다. 자식에게 보태주지 않아도 그 돈으로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고 관리함으로써 질병을 원천 봉쇄해 소중한 자식에게 근심걱정을 심어주지 말아야 한다. 물론 건강을 위해 절제된 생활과 운동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분들 중에도 큰 질병이 닥쳐 온 가족들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엄습한 가정도 있다. 생로병사는 인력으로 막을 수 없겠지만 본인이 할 수 있는 노력은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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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일을 하지 않으면 왠지 시간낭비를 하고 정상적인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몸을 혹사한 대가로 자녀에게 순간적인 기쁨을 선사하는데 목숨을 걸지 말자. 또 생각 없이 던지는 경솔한 언행으로 일선에서 자신이 맡은 바 임무를 다하는 자녀들을 남의 입에 오르내리게 하거나 욕먹이는 행동을 당장 멈춰야 한다. 이제는 AI가 경제 주도권을 쥐고 모든 업무를 대신하는 급변하는 시대

에 살고 있다. 뼈를 깎는 고통이 스민 돈봉투나 과자 몇 봉지 사서 자녀나 손주에게 건네는 찰나의 기쁨에 의존하지 말고, 도서관에 가서 경제신문을 읽고 양서를 읽자. 자녀와 손주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하고 공감해 줌으로써 본보기가 되고 사회적인 이슈나, 책 속에서 발견한 보석 같은 문장으로 열띤 토론을 주도할 줄도 아는 지혜롭고 품격 있는 어른으로 거듭나야 할 때다.

사진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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