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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인 Dec 07. 2024

혜성 아래에서 보내는 편지



 당신에게


 안녕하세요, Y입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분쿄구에 위치한 도쿄대 YMCA를 찾아갔습니다. 도쿄대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제가 살던 기숙사입니다. 도착하자마자 후배인 K가 "온니!!!(K는 언니 발음이 안 되서 항상 저를 온니라고 부릅니다)"하고 우렁찬 기합을 내지르면서 한달음에 달려왔습니다. 이 친구는 제가 4학년이 된 해에 들어온 신입인데, 저랑 쿵짝이 잘 맞아서 기숙사에 이벤트가 열릴 때마다 함께 분위기를 끌어올리곤 했습니다. 지금은 기숙사를 나갔지만 여전히 기숙사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귀염둥이 막내이지요. 

 

 제가 일본에 간다는 소식을 전하자 고맙게도 오카야마(岡山県)에서 곧장 도쿄로 날아와 주었습니다. 얼굴을 보니 너무 반가워서 K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자 깔깔 웃음을 터트리고, 또 그걸 들은 다른 학생들도 하나둘 씩 1층으로 내려오더군요. 다들 저를 보더니 씩 웃으면서,


 "이게 누구야~ Y씨, 이제야 일본으로 돌아온 거야? 기다리다 목 빠지는 줄 알았어."


 퍽 능글맞은 인사에 저도 이렇게 받아쳤죠. "니들이 비행기 값 마련해준다고 기다리다가 먼저 왔다."


 옛날과 변함 없이 왁자하고 유쾌한 분위기가 감돕니다. 이렇게 허물없고 실없는 대화가 어찌나 그리웠는지, 꼭 고향집에 돌아온 기분이었어요. 모두들 어찌나 친화력이 좋고 사근사근한지, 다들 인성 부문으로 도쿄대에 합격한 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듭니다.


 한참 근황 이야기로 떠들고 있자니 K가 [그러고보니까] 라며 운을 뗍니다.


 "Y 온니, 오랜만에 다같이 놀러가자! 오늘 일요일이니까 다들 방에 있을 거야."


 그러자 마침 이야기를 듣고 있던 W가 눈을 반짝이면서 혜성을 보러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W는 중국에서 온 유학생인데 평소에도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서, 항상 좋은 피사체를 찾아다니죠. 거기다 듣기로는 무려 8만년만에 지구로 돌아오는 혜성이라 하더군요. 저와 K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장 "콜!"을 외쳤습니다.


 그렇게 저와 K, W, 그리고 기숙사에 남아있던 I까지 총 4명이서 혜성을 보기 위한 여정(?)에 올랐습니다. 저희가 향한 곳은 분쿄 시빅센터 전망대(文京シビックセンター)였습니다. 도쿄돔 근처에 위치한 높이 105m의 무료 전망대입니다. 기숙사에서 걸어서 15분 정도로 가까운데다가 사람이 적고 조용해서, 한창 졸업논문 때문에 머리가 복잡할 때는 이곳에 자주 들렀죠.




 일몰이 가까워진 오후 5시 20분에 전망대를 오르니 발밑에 도쿄 전경이 펼쳐집니다. 주홍빛 태양이 구름층 너머로 이글거리더니 차츰차츰 조그매집니다. 이내 점이 되어서 완전히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게 장관입니다.



 저희는 혜성이 언제쯤 나오려나 기대하면서 눈을 부라렸습니다. 뉴스에서는 분명,


일몰 즈음에 태양의 북서쪽 15도 각도에서 관찰 가능하다


라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아직 충분히 어두워지지 않아서 그런지 혜성은 코빼기도 안 보입니다. 시간도 떼울 겸 구름을 헤아리고 있으니 저 멀리서 오리처럼 생긴 깃털구름이 둥실둥실 떠다닙니다. 그걸 보면서 "혜성도 저만한 크기면 눈에 잘 보일텐데"하고 실없는 소릴 늘어놓았죠.


의문의 깃털구름. 꼭 헤엄치는 오리처럼 보이지 않나요?


 그렇게 얼마 동안 기다렸을까요? 슬슬 지루하려던 참에 드디어 혜성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보랏빛 하늘 위로 아주 미세하게 흰 점이 보이시나요? 그게 바로 혜성입니다.


 이 혜성의 이름은 쯔진산-아틀라스 혜성입니다. 8만년 주기로 태양계에 돌아온다고 하죠. 특히 오늘 10월 13일에는 지구와 가장 가까운 근지점을 통과해서 관측사상 가장 밝게 보인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삶은 정말로 우연의 연속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우연히 10월 중에 일본을 여행하게 되었고, 우연히 여행 기간 중에 동창회가 겹쳤고, 또 우연히 8만년만에 지구로 돌아오는 혜성까지 만날 수 있었죠.


 8만년. 상상도 못할 시간입니다. 아틀라스 혜성은 오랜 시간 우주를 떠돌면서 어떤 만남을 이어왔을까요? 수많은 별이 탄생하는 순간과 스러지는 순간을 보았겠죠. 어쩌면 외계인과 접촉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 외계인들도 혜성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을까요.


 가끔 가슴이 터질 듯이 답답할 때면 우주에 대해 생각합니다. 광활한 우주 속에 있는 수억 수천 개의 별 중에서 단 하나, 지구에 살고 있는 나 한 사람. 그런 제가 아무리 고민하고 몸부림 친다 한들, 우주에 비할 수는 없죠. 하물며 우주 속에서 똑같이 하나밖에 없는 아틀라스 혜성조차도 억겁의 시간을 보내왔으니까요. 길고 긴 세월 동안 수많은 길을 드넓은 우주공간에 새겨왔을 겁니다.


 저는 사진기를 놓고 잠깐 혜성을 바라보았습니다. 물론 별에게 소원을 빈 것은 아닙니다. 저 별들을 만들고 순환하게 하신 그분에게 기도했죠. 그분이 제 삶의 여정을 예비해두셨음을 믿고 기도하면 잠시나마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있습니다.




 우연이라면 또 있습니다. 바로 제가 당신에게 편지를 쓴 계기가 우연히 주어진 것이지요.


 여행 다니면서 느꼈던 점, 스쳐간 인연들, 순간순간 머릿속을 번뜩이는 수많은 단어와 문장. 그 모든 걸 엮어서 당신에게 보내고자 했습니다. 언제든지 이 편지를 꺼내 읽으면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게끔 말입니다.


 혹여 마음 속이 어딘지 허전하고 먹먹할 때, 그때는 이 편지가 당신에게 혜성이 되어 날아와주길 바랍니다. 편지 속에 꾹꾹 눌러담은 저의 추억과 고민 위로 걱정을 얹어서 날려버리세요. 분명 멀리멀리 날아가고 다시금 누군가에게 위안을 전해줄 겁니다.


 그때까지 안녕.


 2024년 10월 13일, 분쿄 시빅센터에서 혜성을 바라보며.

 Y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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