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안녕하세요, Y입니다.
오늘 편지는 조금 특별한 장소에서 쓰고 있습니다. 어디냐고요? 바로 제가 다녔던 학교, 도쿄외국어대학교(이하 도쿄외대)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동창회가 열립니다. 모든 문부과학성(일본의 교육부) 국비유학생들은 일본에 도착한 첫 1년 동안은 도쿄외대 혹은 오사카외국어대학교에서 어학연수를 받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성적으로 향후 진학할 대학이 갈립니다.
한마디로 두 번째 고등학교 생활이라고 할까요? 비단 공부뿐만 아니라 평생을 함께할 친구도 사귀고 좋은 추억도 많이 만들 수 있죠. 각자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결국 유학생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니 친해질 계기도 많습니다. 대학교에 정식 입학한 뒤에도 일본인 친구는 만들기가 어렵고 어색하다는 이유로, 유학생끼리만 다니는 장면도 심심찮게 봅니다.
무엇보다도 같은 유학생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큰 위안이 됩니다. 돌이켜보면 계속적으로 교류하며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대등한 관계가 있기에, 5년이라는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동창회는 오랜만에 친구들 얼굴 한 번 본다는 가벼운 의미도 있지만, 그리움과 추억의 장소에 다시 한데 모이는 뜻깊은 자리이기도 합니다. 사실 실제로 참석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일본에 있었을 때는 대학교 과제하랴, 발표 준비하랴, 시험 공부하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거든요. 때마침 이번 여행 기간 중에 동창회가 끼여있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두 번 다시 동창회에 참가 못 할 뻔했어요.
그래서 동창회에 참가한다는 소식을 다른 친구들에게 알렸더니, 그걸 계기로 오랜만에 다 같이 모이자는 약속까지 잡혔습니다. 다들 대학교를 졸업한 지금은 대학원에 다니거나, 혹은 직장에 갓 입사해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바쁩니다. 그래서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이렇게 동창회를 계기로 우연히 모이게 되네요. 1년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추억을 쌓았던 도쿄외대에서 헤어졌던 친구들을 다시 만난다니, 제법 낭만 넘치는 재회죠?
그래서 이번 편지에서는 도쿄 외대에 대해 조금 알려드리려 합니다. 제 추억을 당신과도 공유하고 싶거든요.
제일 먼저 도쿄외대에 오게 되면 다마역(多磨駅)이 보입니다. 도쿄외대에서 가장 가까운 역이고, 또 여기서 세이부타마가와선을 타야 시내로 나갈 수 있으니 도쿄외대에서 살 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들락거린 곳입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본 다마역은 옛날과 완전히 딴판이더군요. 예전에 봤던 조그만 시골역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대신 삐까번쩍한 신식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솔직히 시골 동네에 이렇게 크고 화려한 역을 세울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지나는 노선도 겨우 1개인데 말이죠. 게다가 너무 커진 바람에 역 입구로 가려면 빙 둘러가야 되서 더 불편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역에서 학교로 걸어가는 길은 전혀 달라진 게 없어서 안심했습니다. 로손 편의점 앞을 어슬렁대는 외국인 유학생들을 보고 그제야 '아, 드디어 도쿄외대로 돌아왔구나'하는 실감이 났습니다. 한때는 저 역시 이쪽 거리를 돌아다니는 유학생이었으니까요. 게다가 2018년에 막 개장했던 타코야끼 가게도 그대로입니다. 당시에는 이 마을에서 유일한 타코야키 가게여서, 다 같이 뺀질나게 드나들면서 야식으로 타코야키를 사 먹었죠. 2018년 월드컵 당시에도 한 손에는 타코야키, 한 손에는 리모컨을 들고 TV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사소하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추억이죠.
이런저런 풍경을 둘러보는 새에 도쿄외대에 도착했습니다.
학교 정문으로 들어서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온 기분입니다. 2018년, 제가 처음 일본에 왔을 때와 전혀 달라진 점이 없어요. 거기다 날씨는 또 얼마나 좋은지, 학교 곳곳에 가득한 심록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이룹니다.
가장 먼저 도서관과 연구동으로 이어지는 광장이 저를 반깁니다. 사실 한 번도 도서관과 연구동에 가 본 적은 없는데도 오랜만에 와서 보니 생전에 안 가던 건물까지도 반가워 보이더군요. 저곳을 지나다니는 이유는 단 하나, 로손 편의점이나 역으로 가는 길이 저곳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대로 직진해서 교내 식당을 지나자 익숙한 길이 나옵니다. 바로 기숙사로 향하는 길이죠.
이 길에도 많은 추억이 얽혀 있죠. 늦잠을 자서 기숙사에서 교실까지 전속력으로 뛰어간 날, 태풍이 불어닥치는 와중에 '여기는 천장이 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하고 나갔다가 쫄딱 젖은 날, 오밤중에 잠 못 드는 친구들끼리 모여 정처 없이 걸었던 날... 한국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경험으로 가득 찬 길입니다. 이곳에 얽힌 추억만 해도 편지 20통은 넘게 쓸 수 있을 정도예요.
외로움에 사무칠 때에는 그리운 고향 풍경과 음식 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걸었습니다.
슬플 때는 소리 없이 흐느끼면서 정처 없이 돌아다녔습니다.
도쿄대에 합격했을 때는 다 함께 합격 통지서를 들고 우다다 뛰어다녔습니다.
출출한 겨울날에는 로손 편의점으로 달려가서 어묵 꼬치를 한 아름 사 오고...
친구들과 보낸 365일의 추억이 고스란히 새겨진 길이죠. 그때의 기억이 지금의 저를 받쳐주고 있다는 실감이 새삼스럽습니다.
한창 혼자 돌아다니고 있으니 친구들도 하나둘 씩 모입니다. 어찌나 반갑던지요. 직장인이라고 하지만 막상 보면 그때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돈을 번다, 안 번다 정도의 차이죠. 잠깐 서서 담소를 나누다가 동창회가 열리는 연구동 226호실로 향합니다.
거기서는 별달리 한 일이 없네요. 옛날 옛적에 이곳을 졸업한 선배들의 강연, 유학생을 가르쳤던 선생님들의 이야기 등등... 사실상 '옛날엔 이랬지~'하는 추억 공유회(?)인 셈이죠.
하지만 오늘 동창회의 꽃은 연설이 아닙니다. 바로 디너파티이죠.
4시 즈음 학교 식당으로 이동하니 아주머니들이 분주하게 각종 음식을 내놓습니다. 학교에서 차린 것치고는 제법 본격적인 뷔페 메뉴가 갖춰졌습니다. 햄 계란 샌드위치, 초코 브라우니, 소시지 볶음, 미니 핫도그, 과일 모둠, 초밥 세트 등등!
이런 호화로운 식사를 무료로 즐길 기회를 마다할 리가 없죠. 몇몇 친구는 "사회초년생한테는 공짜밥이 최고야"라면서 시시덕거렸습니다. 개중에는 배만 채울 목적으로 일부러 디너파티 시간에 맞춰 오는 사람도 있었죠.
그런데 문부성에서 온 높으신 분이 파티 개회사를 어찌나 길게 하는지, 다들 눈치 없다면서 속으로 투덜거렸습니다. 게다가 그 긴 시간을 참았더니 이번에는 학교 선생님이 축사를 이어가고... 정말인지 쓰러질 지경이었습니다.
참다못한 친구가 귓속말로,
"저 사람이 이야기하는 틈에 도시락 통에 음식을 싹 다 쓸어 담아버릴까?"
이러는 거 있죠. 어찌나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던지 저도 모르게 킥킥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제 딴에는 진지했는지 입을 비죽거리더군요.
"Y, 이런 거 하나 싸놓으면 하루 식비가 굳는다구. 네 것도 싸갈 수 있게 도시락 통 2개 갖고 왔으니까 빨리 뭐 담을지 찜해놓기나 해."
이 친구도 참 알아주는 절약가입니다. 심지어 그 와중에 제 몫의 도시락 통까지 들고 왔다는 말이 어찌나 우스운지... 이런 걸 사양하면 예의가 아니죠, 당장 통을 받아 들고 아까 전부터 눈여겨본 연어 초밥 코너 앞으로 슬금슬금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건배사가 끝나자마자 바로 집어 먹었죠. 이게 얼마 만에 먹는 초밥인지... 감개무량했습니다. 여행 기간 중에는 경비를 아끼려고 값싸고 양 많은 중화식당만 돌아다니다 보니 슬슬 질리던 차였거든요. 그리고 일본에 있을 적에는 꿈도 못 꿨던 신선한 과일 모둠에 야채샐러드까지, 확실히 돈 없는(?) 유학생들의 지갑 사정을 고려해서 평소에는 쉽사리 맛볼 수 없는 식단이 가득합니다.
이렇게 적고 나니 도쿄외대도 식단 선정에 꽤나 공을 들였네요. 센스 하나는 10점 만점에 100점입니다.
실컷 먹고 떠드는 도중 몇몇 아는 얼굴이 다가왔습니다. 도쿄외대에 있을 적에 같은 반 친구였는데 세상에, 품에 아기를 안고 왔더라고요! 너무 놀라서 "엥, 웬 아기야?!"하고 외치니까 걔가 깔깔 웃으면서 "나 학교 졸업하자마자 바로 결혼했잖아. 우리 딸 귀엽지?"랍니다. 저랑 동갑인데 벌써 아이가 있다니,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세월의 흐름이 무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1968년도에 이곳을 졸업한 대선배가 저희 쪽으로 오더니 서툰 일본어로 말을 걸었습니다. 반쯤 중국어 발음이 섞인(그분은 홍콩 출신이었습니다) 말투로,
"이렇게 다들 한 자리에 모이게 되서 너무 기쁩니다. 저는 홍콩에 돌아간 후에는 도통 만날 기회가 없어서... 거의 20년 만에 친구들 얼굴을 봅니다."
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들으니 살짝 서글퍼졌습니다. 저야 한국에 살고 있으니 언제든지 일본에 올 수 있지만, 뉴질랜드나 북유럽에 사는 친구들은 정말 몇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죠. 그분의 말투에서 젊은 시절을 향한 그리움이 뚝뚝 묻어 나왔기에, '참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았나 보다' 하고 공감이 갔습니다.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는 사이, 절약가 친구가 돌아와서 뿌듯한 얼굴로 "이걸로 내일 점심값은 굳었네"랍니다. 그러면서 도시락 통을 보여주는데 와... 한솥 도시락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담아 놨더군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참 알아주는 절약가입니다.
디너파티가 끝난 뒤에는 소화도 시킬 겸 다 같이 교내를 걸어 다녔습니다. 그런데 기숙사에 들러보니 웬걸, 4층 베란다 라인이 싹 다 그을린 겁니다. 일동 전부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고 "이게 뭐냐, 무슨 일이냐"하고 술렁거렸어요.
밤중에 봤는데도 확연히 그을음이 보입니다. 폭발이라도 일어난 건가, 싶어서 주변을 빙빙 둘러보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층수와 베란다 위치로 보니 저곳은 제가 예전에 살았던 방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친구들에게 말하니 하나같이 농담조로 "네가 태워먹었네, " "졸업할 때 몰래 지뢰 설치해 두고 갔지?"라면서 놀리기 바쁩니다.
하긴 생각해 보면 옛날부터 기숙사에는 화재 사고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한 번은 친구가 가스 밸브를 안 잠그고 귀국해서 불이 난 적도 있었고, 전자레인지가 폭발한 적도 있었죠. 그때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 식사도 공부도 내팽개치고 1층 로비에 집합해야 했습니다. 어떨 때는 샤워 중에 불이 나서 급하게 샤워 가운만 입고 뛰어내려온 적도 있었죠. 그때는 진지했는데 막상 그 상황이 지나고 나면 모두들 허겁지겁 뛰쳐나온 티가 나는지라 낄낄 웃기 바빴습니다.
실컷 둘러보고 난 뒤에는 각자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래봤자 어차피 다마역까지는 같이 가니까 헤어질 때까지 끝난 건 아니죠. 정신없이 걸어가고 있으니 뒤에서 찰칵찰칵 소리가 들립니다. 친구가 저를 찍고 있길래 "도촬범이다~"하면서 도망가니까 앞에 있던 친구도 덩달아 뛰고... 난데없이 한밤의 추격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정신없이 뛰다 보니 폐에 바람이 들어차서 헉헉대는 숨소리 사이로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왔습니다. 남들 시선은 신경도 안 쓰고 내달리던 저희는, 그대로 누가 다마역에 제일 먼저 도착하는지 내기를 시작했습니다. 뜬금없이 추격전을 시작하더니 갑자기 "내기 한판 하자"며 낄낄대는 게 꼭 어린애가 할 법한 발상입니다. 잃어버렸던 동심을 되찾은 기분이랄까요.
아, 내기의 결과 말인데, 결국 모두가 공동 승자인 걸로 결판났습니다. 중간부터는 힘에 부쳐서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느적느적 걸어갔거든요.
어둠이 사방을 뒤덮은 거리에서 유일하게 다마역만이 반짝반짝 빛납니다. 일본은 원체 가로등이 적기로 유명합니다. 도쿄 시내가 아닌 이상에야 웬만한 주택가는 밤 8시쯤 되면 온통 새카매질 정도입니다. 그 사실을 감안하면 왜 다마역을 저렇게 크게 지었는지 납득이 갑니다. 범죄 예방이라는 측면에서는 한몫할지도 모르죠.
저는 지금 집으로 가는 전철 안에 있습니다. 옆에는 친구가 꾸벅꾸벅 졸고 있고요. '내일모레면 또 출근이야'라며 징징거리다가 어느새 고개를 숙이더니 도롱도롱 코까지 곱니다. 이 광경마저 그립다고 느낍니다. 유학생이었을 때 조금 더 아이들과 추억을 쌓아둘걸... 조금 더 많은 곳에 가볼걸... 하는 후회가 미묘하게 들이닥칩니다. 그랬다면 후회와 미련은 떠나보내고 더 많은 추억과 행복감에 둘러싸일 수 있었을 테니까요.
당신에게 보내는 이 편지도 조금씩 끝을 보입니다. 제 편지가 조금이라도 당신의 기억 속에 추억으로 남길 바라며 오늘 편지를 마칩니다.
2024년 화창한 가을날, 도쿄외국어대학교에서
Y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