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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인 Dec 14. 2024

구 후루카와 정원에서 보내는 편지~1


 당신에게


 안녕하세요, Y입니다.


 지난 번 편지에서 이미 눈치채셨을 테지만, 이 편지는 거의 한 달이라는 간격을 두고 당신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10월 13일에 쓴 편지라면 당신에게 편지가 도착하는 날짜는 11월 13일이나... 혹은 훨씬 뒤겠지요. 왜 그렇게 텀을 두고 보내느냐고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당신이 제 이야기를 되도록 오랫동안 기억해주었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기억의 서랍장에 고이 넣어 두고 때때로 생각날 때마다 꺼내 읽을 수 있는 그런 편지가 되길 바라기 때문이죠. 그러려면 '언제쯤 도착하려나'하고 애태우는 편지가 제격이지 않나요?


 그래서 오늘도 당신의 기억에 남을 만한 멋진 장소, 바로 <구 후루카와 정원>에 다녀왔습니다. 아, 그전에 먼저 맛있는 가게부터 소개해야겠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오늘의 점심은 코마고메(駒込)역 근처에 있는 카페 앤 델리 쿡(Cafe&Deli COOK) 입니다. 코마고메역에서 도보 2분이면 도착하는 곳으로,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대로 지나칠 수도 있을 만큼 자그마한 가게입니다.


카페 앤 델리 쿡. 척 보기에도 귀여울 정도로 작은 가게지요?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카운터 앞에 놓인 5개의 의자. 그렇습니다, 이 가게는 좌석이 겨우 5석 밖에 없어요. 2층에는 카페만 운영하고 있어서 식사를 하려면 1층에서 먹어야 합니다. 저는 가게가 오픈하자마자 뛰어가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지만, 제가 식사하는 도중에도 네다섯 명은 뒤에서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여기가 왜 그리 인기가 많은지 이유를 몰랐는데 잠시 뒤에 나온 <오늘의 런치세트>를 보니 절로 납득이 가더군요. 단돈 990엔으로 원하는 음료 1잔에 골라먹는 메인 디쉬, 거기에 에피타이저까지! 도쿄에서 이런 가게는 꽤나 드뭅니다.


에피타이저 베이컨 키슈, 토마토 주키니호박조림 정식, 밀크티


 위의 사진만 봐도 군침이 돌지 않나요? 먼저 에피타이저로 나온 베이컨 야채 키슈를 한 입 베어 먹었습니다. 그러자 입 안 가득 짭조름한 베이컨 맛이 퍼지면서, 두툼한 야채 조각이 입천장에 뭉게질 때마다 풍부한 야채즙이 스며듭니다. 야채와 고기 토막이 너무 작지도 크지도 않은 크기여서 적당히 씹는 맛도 있고요.


키슈 안에 들어있던 버섯. 부드럽게 꼭꼭 씹으니 버섯 안에 스며든 육즙과 기름기가 터져 나옵니다


 에피타이저로 나온 키슈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메인 디쉬가 남아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을 정도였습니다. 솔직히 키슈만 서너개 먹어도 만족스러울 것 같더군요. 하지만 다음에 나온 메인 디쉬는 (좋은 의미로)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드디어 메인 디쉬의 등장입니다!


 그릇에 가득 담긴 새빨간 토마토 소스와 야채 모둠이 보이시나요? 편지를 쓰려고 앨범을 뒤지는 지금도 입 안에 침이 줄줄 고일 정도로 먹음직스워 보입니다. 안에는 저민 닭고기와 물렁하게 삶은 주키니호박, 가지, 피망 등등 각종 야채가 들어있었습니다. 한 술 떠서 입 안에 넣자마자 와... 감탄이 절로 나오더군요. 


 한 입 씹는 순간 입 안에 향긋한 허브향과 함께 진한 토마토 소스 맛이 퍼졌습니다. 안에 든 재료에도 구석구석 소스가 배어서 그런지 물렁한 닭고기를 씹으니 독특한 육즙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절 감동시킨 건 무더기로 쌓인 야채, 야채, 야채였습니다. 큼직큼직한 주키니호박 덩어리와 가지, 감자가 한데 어우러져 턱을 움직일 때마다 풍미가 더해지고, 고기 특유의 맛을 상쇄시키는 단맛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 가게만의 특징은 바로 모든 밥은 현미 혹은 흑미콩밥을 제공된다는 점입니다. 신기해서 이유를 물어보니 "일반적으로 먹는 백미보다는 건강에 좋을 것 같아서요. 저희 가게는 대개 야채 위주의 메뉴다 보니까 아예 컨셉 자체를 건강으로 잡았습니다." 라더군요. 확실히 보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메뉴입니다. 웬만한 음식에는 전부 야채가 꽉꽉 채워져 있고, 거기에 후식으로 나오는 음료에도 단 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으니까요. 사진에 나오는 밀크티만 하더라도 단 맛은 우유 특유의 고소한 맛 정도로만 느껴졌고, 반대로 홍차 특유의 향이 진하게 풍겨왔습니다. 말그대로 정통 밀크티라고나 할까요.


 건강도 챙기고, 지갑도 챙기고. 이게 바로 일석이조죠. 당신이 도쿄에 오신다면 언젠가 또 들리고 싶은 가게입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으니 이제는 몸을 움직일 시간입니다.

 아, 후루카와 공원은 너무 커서 편지가 좀 길어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편지는 1편과 2편으로 나뉠 예정입니다. 부디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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