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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인 Nov 23. 2024

카도카와 정원에서 보내는 편지



 당신에게


 안녕하세요, Y입니다.


 오늘은 완벽한 날씨였습니다. 쌀쌀한 공기와 이를 적당히 데워주는 따스한 햇빛까지, 산책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날씨는 없을 거예요. 그런데 정작 제 몸 상태가 불량했습니다. 요즈음 여행을 다닌다고 너무 바쁘게 돌아다녀서 그런 건지, 아침부터 코피가 터졌습니다. 깜짝 놀라서 달려온 룸메이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기가 막힌다는 투로 대꾸하더군요.


 "Y, 너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책상 앞에만 붙어 있었잖아. 이제 졸업했고 공부도 끝마쳤으니까 그동안 갉아먹은 체력을 회복하는 데에만 집중해."

 

 구구절절 맞는 말이어서 머쓱하게 웃고 말았습니다. 백 번 옳은 말입니다. 게다가 아프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모처럼 기온과 햇살이 완벽하게 갖춰진 날에 외출을 포기하다니, 너무 아깝지 않나요? 


 그래서 늦은 점심을 먹을 겸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오늘 점심은 자루 소바와 튀김 세트입니다. 사진만 봐도 먹음직스럽지 않나요?


튀김 덮밥 체인점으로 유명한 텐동텐야의 소바&튀김 세트입니다.


 튀김으로 배에 기름칠을 하고 시원한 소바를 훌훌 들이키니 기운이 나더군요. 식사를 끝마친 다음에는 어디로 향할지 잠깐 고민하다가, 근처에 있는 카도카와 정원을 산책하기로 정했습니다. 가는 길에는 겸사겸사 마을 구경도 하고요. 


 마을 곳곳은 상점으로 북적입니다. 지나다니면서 재미난 장소를 찾으면 당신에게 보여주려고 사진을 찍었어요. 생뚱맞게 복덕방 옆에 위치한 김치 반찬 가게, 제빵 기술에 있어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기술을 가졌다고 호언장담하는 <얼마나 자기중심적 빵집>, 그리고 역 근처에 위치한 지장보살 불단입니다.


좌: 오기쿠보 기무치 / 중앙: 빵집 이름이 <얼마나 자기중심적> 입니다 / 우: 지장보살


 오기쿠보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제가 예전에 살았던 마을과는 묘하게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이곳은 JR 오기쿠보역과 니시오기쿠보역을 중심으로 상점가를 이루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색다른 가게나 카페도 많고, 조금만 걸어가면 북적이는 번화가와는 전혀 딴판으로 고요한 절이 나옵니다. 하나의 마을에 이렇게나 다양한 풍경이 섞일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만 느껴져요.


 저는 유학생이었을 적 도쿄대가 위치한 분쿄구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곳 오기쿠보와는 분위기가 완전 딴판이죠. 한국에서는 흔히 대학 근처라고 하면 젊음과 청춘을 즐기는 대학가를 상상하기 마련이지만, 일본은 조금 다릅니다. 적어도 도쿄대는 말이죠. 거리에 늘어선 가게라고는 값싼 라멘 가게나 중화반점, 노포 서점뿐입니다. 겨우 최근에야 대형 슈퍼마켓이 들어섰을 정도니, 얼마나 조용한 마을인지 짐작이 가시죠?


 오기쿠보 시장가를 구경하니, 새삼스레 5년이나 일본에서 살았는데도 아직도 제가 모르는 분위기와 향취가 곳곳에 충만하다는 사실을 실감합니다. 도쿄라는 딱 한 지역에서도 이렇게나 생판 다른 풍경과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니 단순한 마을 산책이라도 지루할 틈이 없어서 다행입니다.




 오늘의 목적지인 카도카와 정원은 상점가에서 동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오기쿠보에서는 나름 잘 알려진 명소답게, 한적한 주택가 골목을 따라가니 <카도카와 정원: 직진 200m>라는 간판이 보입니다. 


카도카와 저택(현 스기나미 시가관)이 위치한 카도카와 정원입니다.


 카도카와 정원은 일본 대기업인 카도카와 쇼텐창업주인 카도카와 겐요시(角川源義)가 실제 거주했던 자택을 기증받아 개조한 일본식 정원입니다. 열렬한 하이쿠 애호가였던 카도카와의 유지를 이어받아 자택은  <겐기산보(幻戯山房)>라는 시가관으로 재탄생했죠. 관내에는 카도카와가 발간한 하이쿠 전문 잡지와 그의 일대기 등을 전시한 자료관과 시가실, 다실이 있습니다. 후자는 실제 모임 장소로 사용할 수 있는지 안내인이 저에게 "예약하려고 오셨나요?"라고 묻기도 했어요.


좌: 시가실. 이곳에서 실제 하이쿠 교류회가 열립니다 / 그 외: 카도카와의 개인 작업실. 그는 여기서 정원을 내다보며 하이쿠를 즐겨 지었다고 합니다.


 실내는 목재로 구성되어서 어딜 봐도 눈이 편안해집니다. 은은하고 단정한 갈색을 둘러보면 자연히 유리창 너머로 고즈넉한 정원 풍경을 일망할 수 있죠. 분명 실내와 외부로 나눠져 있건만 마치 하나로 이어진 풍경화처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구조가 인상적입니다.

 

 이런 방에서 글을 쓰면 머릿속에서 절로 글감이 떠오르지 않을까요? 방의 구성, 책장을 가득 메운 하이쿠 관련 서적과 자료, 그리고 고급 종이와 붓 세트 등등... 작업실 전체에서 하이쿠에 오롯이 집중하고자 하는 그의 집념과 열의가 느껴졌습니다. 책상 위에는 그가 하이쿠를 지을 때 사용했던 붓과 원고지 세트가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당장이라도 카도카와가 척척 걸어 들어와서 붓을 쥐고 하이쿠를 써 내려갈 것 같은 생생한 풍경입니다.




 잠깐 시선을 벽 쪽으로 돌려봅니다. 그곳에 걸린 자료를 읽고 카도카와와 기업의 역사를 상세히 알 수 있었어요. 자료는 촬영 금지여서 대신 글로 설명하겠습니다.


 카도카와는 학창 시절부터 하이쿠를 즐겨 지었다고 합니다. 입시 시절에는 하이쿠 시인이 되고 싶다는 꿈과, 의사가 되라는 집안의 압박 사이에서 꽤나 갈등했다고 하죠. 일화에 따르면 독서를 사랑하는 문학 소년이었던 그는 수학과 영어에는 영 젬병(?)이어서 한문 선생님이 "너는 아예 국문학과로 가라, 그게 먹고살 길이다"라고 적극적으로 추천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마음 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문학부 국문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이후로도 하이쿠 동호회를 만들고 틈틈이 하이쿠 잡지를 발간하면서 카도카와 서점과 카도카와 문고를 창설했고, 그 외에도 다양한 사업 분야에 발을 뻗어 대기업으로 성장시켰죠.


 ...사실 이야기를 읽는 내내 마음 한편이 조금씩 무거워졌습니다. 꿈을 좇은 끝에 성공을 거둔 이야기는 충분히 감동적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꿈이 결실을 맺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뇌와 수고가 있었을지 절감되더군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추구하고, 가슴이 뛰는 방향으로만 나아가고 싶어 합니다. 저 역시 그랬죠. 글과 책에 둘러싸인 삶, 그것만이 제가 원하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제 삶에 '가치'가 매겨지기 시작하더군요. 그것도 제가 원해서 붙이는 가치가 아니라 타인이 멋대로 붙인 가치가 덕지덕지 붙어버려서 끝에는 내가 원래 추구했던 꿈이 무엇이었는지조차 모호해졌습니다.


 "도쿄대학교까지 나왔는데 고작 글이나 쓰면 너무 아깝지 않니?"

 "열심히 노력한 게 아깝잖아, 조금만 더 힘내서 직장을 얻어."

 "작가가 되고 싶다고? 지금 당장 편한 길을 선택하지 말고 더 열심히 정진해서 취직해라!"


 꿈에는 항상 '현실도피', '허무맹랑', '비현실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절망스러운데 더 슬픈 사실이 뭔지 아시나요? 저에게 저런 말을 가장 많이 하는 게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점입니다. 누구나 좌절과 실패는 두렵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날아오르지도 않았으면서 "이게 내 한계야, 더는 못 날아"라고 주저앉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럴 때마다 더욱 발악하듯이 노력하고 일에 몰두해서 겨우겨우 내면의 목소리를 물리치면 이제는 외부에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것도 그럴듯한 충고와 진심을 가장해서 말이죠.


 저에게 쏟아지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어떤 의도인지 분명하게 이해됩니다. 꿈만으로는 현실 속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없음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경험한 어른들이므로 '너 잘 되라고' 그런 충고를 할 수 있죠. 더군다나 그 꿈이 문학이라는 좁고 험난한 길이라면... 당연히 말리고 싶을 터입니다.


 그런데 우스운 사실은, 지금껏 제가 마음을 죽이면서 현실적으로 살려고 발버둥 쳐도 결국 마음이 갈구하는 원점으로 돌아온다는 겁니다. 예술도 작가도 돈이 안 된다는 주변의 조언에 충실하게 따라서 초등학교 때부터 불과 8개월 전까지 10년이 넘게 피 나는 노력을 거듭했습니다. 오로지 최고의 학교, 최고의 평판, 최고의 성적을 위해서 눈도 한 번 안 돌리고 쉼 없이 달려왔어요.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반항심은 점점 더 커져만 가더군요. 동시에 이제는 현실을 보라는 말이 진절머리가 납니다. 저는 그것이 안 보여서 지금껏 어둠 속을 방황하면서 달려왔건만, 이제는 그들이 말하는 '현실'은 결코 제가 보는 현실과 같을 수 없다는 사실만이 뼈저리게 느껴집니다. 막연하게 현실을 돈과 지위로 치환해서 달려온 세월이 분명히 어느 정도 도움을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솔직한 마음으로는 억울함과 분노가 먼저 차오릅니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서 달려왔으며, 누구에게 인정받으려고 매일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지내 온 걸까요?


 그러다 보니 이제 와서 제가 좋아하는 것에 힘을 쏟으려 해도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습니다. 겨우 제 마음이 가는 방향으로 나아갈 길이 보였건만, 이제는 노력과 최선이라는 말 자체가 알레르기 반응처럼 과거를 연상시킵니다. 결코 채워지지 않는 갈증 때문에 허덕이면서도 막연히 명예와 인정을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던 그 세월을 떠올리기만 해도 오한이 듭니다. 그 때문에 카도카와의 이야기가 꼭 저를 압박하는 목소리로 들려왔죠.


 "너도 꿈을 이루고 성공을 거머쥐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해! 또 피박 터지게 싸우란 말이야!"


 가벼운 마음으로 들렀던 시가관이었건만 나올 때는 몸도 마음도 축축 늘어집니다. 아직도 저는 스스로를 오롯이 인정해 주는 마음이 부족한 모양입니다. 전시 자료 하나에 이렇게나 마음이 휘둘리니 말이죠...

 



 죄송합니다. 그저 당신에게 감상을 전해주려고 했을 뿐인데 어쩌다 보니 지면 위로 울적한 말만 늘어놓았네요. 마음도 추스를 겸 다음 장소로 이동해 봅시다.

 

 

 현관으로 나오면 곧장 일본식 정원이 나옵니다. 그곳에 서 있으면 통유리로 된 집안 전경이 훤히 보이지요. 정면에서 보이는 방은 시가실입니다. 단아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한 손에는 종이와 붓을 들고 한 수씩 읊어나가는 광경이 저절로 상상됩니다. 실제로 그런 풍경일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요!


 정원 자체는 아주 작지만 그래도 바깥에 나와서 초록색을 눈에 담으니 마음이 진정됩니다. 이 풍경을 가족과도 공유하고 싶어서 그 좁다란 공원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찍었습니다. 


 공원 전체를 한 바퀴 빙 도는 돌길을 따라가니 나무에 걸린 풍경이 고운 소리를 내고, 조그마한 돌부처가 "이보게 잠깐 머리 좀 식히게나"하고 명상을 권합니다.


 제 글을 읽느라 머리가 복잡했을 당신에게도 풍경을 담아서 보냅니다.


 



 이곳을 나설 무렵 휴대폰이 '카톡'하고 울렸습니다. 아버지가 보낸 문자였죠. 문자에는 딱 한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네가 그 정원 접수하고 살아라♡♡"


 그 한 마디가 어찌나 위안이 되고 또 우스운지요. 저도 모르게 입가가 느슨해져서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왔습니다. 하지만 영 허무맹랑한 내용은 아닙니다. 그야, 어디든지 전원주택을 짓고 그곳에서 책과 글에 둘러싸여 산다면 적어도 카도카와의 겉모습 흉내 정도는 될 테니까요. 게다가 도서관에서 살고 싶다는 오랜 장래희망도 이룬 셈이니 일석이조입니다.


 이렇게 가볍게 내려놓고 보면 꿈이 막연히 멀고 먼 것이 아니네요. 갑자기 희망이 샘솟습니다. 어쩌면 저는 주변 사람들보다 훨씬 더 현실에 사로잡혔던 걸지도 몰라요. 무의식적으로 꿈을 성취한다는 목표에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골 대신에 부와 명예를 골 지점으로 설정했으니까요. 타인의 가치에 휘둘리기 싫다고 반항하면서 실상은 그걸 고스란히 답습해서 스스로의 마음을 짓밟았던 건 바로 저였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았으니 오늘 산책에는 충분히 수확이 있었습니다. 거기다 건강까지 챙겼으니까요. 돌아가는 길에는 친구와 나눠 먹을 빵을 사갔습니다. 나갈까 말까 미적이던 제 등을 떠밀어줬으니 약간의 성의를 보여야겠죠?


 한국에 돌아가면 당신과도 꿈 이야기를 해보고 싶네요. 그러다 보면 잊고 있었던 마음에 불이 붙을지도 모르죠? 오늘 얻은 귀중한 깨달음이 다음 편지를 쓸 때까지 남아 있길 바라며 오늘 편지는 이만 줄이겠습니다. 


 2024년 화창하고 따스한 날, 카도카와 정원에서

 Y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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