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을 가장하는 가장

가장 가장 같지 않은 가장

by 정지이

어김없이 오늘의 해는 뜨고 말았다. 백수생활 8개월째에 접어들고 있는 나는 평온하게 시작하는 하루가 점점 익숙해져 간다. 그리고 약간의 불안감. 오늘은 무언가를 해야지라고 계획하며 침대에서 일어나면 거실의 소파로 내 몸을 뉘이는 본능적인 움직임을 이기지 못한다. 티브이는 켜지 않는다. 잠시 생각을 한다. 5분, 10분, 20분 그렇게 멍하니 생각을 하다 정신 차려보면 어느새 내가 또 잡생각이나 망상에 빠져 20분을 그냥 보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하던 일을 접고 무언의 해방감에 매일이 기분 좋았던 백수 1개월 차엔 당장의 어떤 계획이 없으니 건강부터 챙기자라는 생각에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굳게 결심했고, 9개월째인 현재 내 체중을 무려 4킬로가 불어나있다.

그렇다. 가장 좋은 체중감량은 규칙적인 생활패턴과 적당한 스트레스가 내 건강체중을 지켜주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약한 결심을 한다. 체중을 얼마나 감량하겠다가 아닌, 운동을 열심히 해서 식스팩을 만들겠다가 아닌, 아침은 달걀로 밥을 대신하자. 점심은 식물성단백질로 구성된 식단으로, 저녁은 와이프와 식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밥은 먹되 반찬위주로만 식사를 하자. 아침은 성공했다. 식사를 마쳤는데도 몰려오는 공복감은 정말 지독히 고통스럽다. 물과 커피로 배를 채우려 2리터짜리 생수병과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옆에 두었다. 오늘 하루만 잘 성공한다면 내일 하루도 도전할 용기가 생길 것이고, 모레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리고 이후엔 하지 않으면 불안해질 것이라 믿는다.


유튜브를 보다 보면 중간에 광고가 나온다. 단 몇 초도 보기 싫은 광고를 주로 건너뛰기하는 게 당연하지만 무언가에 쫓기듯 절실한 상황에 놓여있는 나는 또 혹하기 시작했고, 다시 해외구매대행이라는 카테고리의 사업을 시작했다. 판매하는 아이템은 건강기능식품이다. 나 또한 오메가 3와 코큐텐, 아연 등을 섭취하고 있지만 정작 이것을 팔아볼 생각을 하진 않았다. 아니 생각지도 못한 발상이었던 것이다. 전문적인 판매처에서만 판매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소정의 교육과 이수를 마치면 일반인 누구라도 판매가 가능한 분야였던 것이다.

그렇게 각종 영업신고와 교육 등으로 약 20만 원의 지출을 했고, 평균 영업이익을 따져보니 20만 원에서 60만 원 정도가 마진이 된다. 현타가 온다.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꼬박 매달려서 소싱하고 상품등록을 했는데 성에 찰리가 없는 성과다. 1월인 현재 얼마나 했다고 건강기능식품 등록면허세를 내라는 고지서가 왔다. 세금 내고 다시 교육받고 하면 적자나 다름없는 성과지만 이제는 셀프퇴장하지 않는다. 돈이 좀 벌리지 않더라도 꾸준히 잡고 가볼 생각이다. '꾸준히'라는 단어에 동기부여를 받아 제 살 깎는 행위를 해왔던 지난날에 환멸을 느껴서 하던 일도 그만두었지만, 백수생활을 '꾸준히' 하면서 느끼고 깨달은 것은 지금 이 세상은 '꾸준히'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꾸준히'와 '어떻게'가 같이 합쳐져야 새로운 영역으로 개척할 수 있는 것이었다. 백수지만 이 귀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허송세월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도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의 이 간절함이 어떻게 닿았는지 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반가움과 근황을 짧게 전달하고 본론을 말하자면 동업을 하자는 것이다. 10년 이상 자영업을 해왔던 사람에게 동업을 제안한다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나 보다. 그래도 일단 들어나보자는 생각으로 아이템과 구성, 투자금과 수익률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말도 안 된다. 그 적은 투자금으로 그 정도 수익률을 낼 수 있으면 이거 합법적인 건 맞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투자비율을 듣고 단칼에 거절했다. 본인은 지금 가용가능한 현금이 없고 나와 또 다른 사람이 이 정도 투자하면 이 정도 벌어갈 수 있다. 일은 너와 내가 같이 하면 되는 거다. 헛웃음이 나왔다. 동업의 개념에 대해 잘 모르는 건 둘째치고 내가 물렁해 보여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모르겠다만 처음부터 누구는 투자를 하고 누구는 투자를 하지 않고, 일은 같이 하는데 수익은 동등하게 나눈다라는 게 어느 나라 동업시스템인지 모르겠다. 최대한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했다.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며 거절을 하고 싶었지만 딱 한 마디만 했다. 좋은 기회일 수도 있는데 동업은 할 수 없다고 잘라서 말했다. 나름 기대를 하고 전화를 했겠지만 예상 못한 거절에 이렇게 글로나마 더 풀어보자면, 수익률만 따지고 보면 너무 혹하는 사업이긴 한데 만약에 그걸 꼭 해야겠다면 너도 투자금을 동등하게 투입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친구야. 그리고 내가 투자금과 노동력도 같이 투입이 된다면 투자를 하는 쪽이 투자를 안 하는 사람보다 수익을 더 많이 가져가는 쪽으로 계산을 해야 하지 않니? 이래서 사업은 문서화된 계획서가 정말 중요하다. 단 몇 마디로 돈이 오가고 그나마 뽀송뽀송하지만 힘없는 한 줄기 털실 같은 관계가 쉽게 끊어져버릴 수 있다. 난 털실을 유지한 것일까 스스로 끊어낸 것일까. 이후에 또 편하게 연락을 할 수 있을까.


오늘은 장인어른의 생신이다. 며칠 내내 어디서 식사를 할까 와이프와 고민을 했는데 결국 답은 친정에서 맛있는 거 사 먹든 시켜 먹든 하자는 것으로 결론이 나왔다. 친정은 사위인 내가 백수인 것을 모르고 있다. 와이프도 그런 것까지는 굳이 자기 집에 공유를 하는 편은 아니다. 그래서 별 의미가 없는데도 고마울 때가 있다. 얼마 전 와이프와 함께 아웃렛에 가서 장인어른께 어울릴 만한 옷을 한 벌 샀고, 계산하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내가 자신 있게 지갑을 꺼내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으니 얼른 계산대에 달려가서 결제하는 와이프가 너무 고맙다. 조금만 더 있으면 백수생활만 1년이다. 어린 와이프의 말 없는 바람이 현실이 될 수 있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제 '어떻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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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떻게'를 '꾸준히'찾고 가장을 가장하고 있는 가장을 응원합니다. 함께 힘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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