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들으면 당황하게 되는 말

by 정지이

연휴가 이제 끝이 난다. 뉴스를 보니 여행객들로 인해 인산인해 하는 공항의 모습을 비춰준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우리 가족도 여느 가족들처럼 이번 연휴에 국내 어디라도 바람 쐬러 다녀오자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난 그 제안을 받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내 마음이 연휴에 여행을 떠날 정도로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처해져있는 나의 상황이 가족들에게 표정으로 드러날까 봐 조금은 불안했고, 내 가족이 아니라 친정 가족과 함께라는 제안이었기 때문에 마냥 편할 수는 없을 거란 생각 때문에 다음으로 미루자는 변명과 핑계로 제안을 거절했다.


인터넷뉴스에서 이런 글을 봤다.

명절연휴에 며느리가 가장 당황하는 순간들과 사위가 가장 당황하는 순간들을 리서치한 것이었다. 며느리가 가장 당황하는 순간 베스트는 바로 '한 끼 더 먹고 가라'였다. 그 문구를 보면서 피식했다. 평소에 식사량이 나의 반의 반도 되지 않는 와이프는 시댁의 고봉밥과 삼시세끼 식사를 먹는 것을 두려워했다. 두 번째로 당황하는 순간 베스트는 '00(시누이나 시댁가족) 오면 보고 가라'였다. 글을 읽는 내내 재밌고 공감이 되었다. 대충 알만한 내용이지만 조사결과로 대부분의 며느리들이 이런 대답을 했다는 것에 팩트체크를 확인하는 그 상황이 너무 흥미로웠다. 사실 난 내 와이프가 시댁에서 눈치 보일까 봐 혹은 불편할까 봐 집에 같이 가더라도 항상 옆에 있어주고 밤늦게까지 머물다 가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 우리 엄마 또한 며느리 불편할까 봐 자고 가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기사를 봐도 피식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만약 내용들이 나와 우리 가족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다면 무언의 반박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남자(사위)가 친정에서 들었을 때 가장 당황하는 순간 베스트는 바로 '자고 가라'였다. 와.. 이거 정말 신뢰도 있는 조사결과가 맞다. 다른 사위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말이 가장 당황하게 된다. 우리 집에 아기고양이가 입양되고 난 후부터는 우리 부부는 여행이며 유흥을 위한 외박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하루정도는 외박을 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밖에 나가면 집에 고양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냥 걱정이 되고 함께 있어도 별건 없지만 그 별거 없는 시간을 함께 해야만 마음이 놓인다. 우리 부부가 친정에 가면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꼭 자고 가라고 말씀하신다. 갈 때마다 내놓는 제안이지만 들을 때마다 당황한다. 거절은 못한다. 고양이 때문이라고 말하면 극성이니 뭐니 하루정도 있다 가는 게 뭐 문제가 될 거라며 마치 'T'스러운 반박을 하신다. 어쩔 수 없다. 그냥 하루 자고 내일 오전에 일찍 나서자는 생각으로 밤새 장인어른과 술자리를 가지고 대충 자리를 깔고 잠을 잔다. 굳이 명절이 아니더라도 나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친정에 간다. 그렇다는 것은 한 달에 한 번은 의도치 않는 외박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함께하는 자리에서 혼자 하는 다짐은 역시나 이루어지지 않더라. 오전일찍이라는 다짐이 무색하게 아침식사라고 말하긴 조금 늦은 오전 11시쯤 식사를 했다. 식사만 바로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집에 가자고 말을 하기가 눈치 보인다. 그렇게 저렇게 별 대화 없이 시간을 보내다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향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시댁과 친정이 상반되는 자기표현을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내 부모니까, 내 가족이니까, 팔은 안으로 굽으니까 내 가족을 편드는 것이 아니다. 내 부모입장에서는 내 자식이지만 사돈의 자식이 혹여나 불편할까 봐 자고 가라는 말을 쉽게 하지 않는다. 아니, 단 한 번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피곤할 텐데 더 늦기 전에 얼른 일어나서 집에 가라고 등 떠밀곤 한다. 아쉽지만 그 말에 배려가 묻어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이 못난 나는 작은 불만을 품고 집에 돌아오는 길의 차 안에서 와이프에게 말을 건네었다. 다음 명절에는 외박은 하지 말자고, 늦은 시간까지 함께 있다가 잠은 우리 집에서 자고 아침 일찍 다시 집에 가는 일이 있더라도 그렇게 하자고. 참고로 우리 집에서 친정까지는 차로 40분 정도면 오갈 수 있는 거리다. 와이프는 왜 굳이 그렇게 해야 하냐며 되물었고 난 준비된 대답을 했다.


"하루(고양이)가 너무 걱정되고 맘에 걸려서 안 될 거 같다."


와이프는 흔쾌히 오케이라고 했다. 그렇게 하자고. 자기도 사실 하루 신경 쓰여서 잠도 제대로 못 잤다고.

정말 다행이었다. 하루를 이용한 급조한 변명이긴 했지만 영 아닌 사유도 아니다. 집에 동물을 키우고 있는 분들은 공감할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를 혼자 집에 두고 온 것처럼 자꾸 신경이 쓰인다. 어쨌든 이렇게 우리의 규칙이 하나 생겼다.


남자 또는 여자는 그 상대방을 선택하여 가정을 이루게 된다. 그 상대방의 부모를 선택하여 사위 또는 며느리를 자처한 것이 아니다. 선택한 만큼의 따라오는 책임으로 그 상대방의 부모를 최대한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는 것이다. 며느리가 시댁에게 예의를 갖추듯이, 사위가 친정에게 존중을 표하듯이 부모들도 자녀들을 하나의 가정으로 인정하고 이타적인 마음을 가지길 바라는 밴댕이 같은 속마음을 조심히 표현해 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가장을 가장하는 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