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하나가 되는 세계

by Impresario

어릴 적, 외할머니는 우리가 아는 것과는 조금 다른 멜로디로 애국가를 부르곤 하셨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안익태 선생의 장중한 선율이 아니라, 어딘가 서정적이고 애틋한 곡조였다. 그 멜로디가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였다.

졸업식 날, 우리는 이 노래를 한국어 가사로 함께 불렀다. 친구들과 손을 맞잡고 눈물짓던 그 순간, 멜로디는 이별과 회한, 그리고 새 출발의 감정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이후 송년 모임이나 신년맞이 자리에서도 이 곡은 빠지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도 그 감정은 세대를 관통해 우리 곁에 머물렀다.


놀라운 사실은, 일제강점기 우리 조상들이 이 스코틀랜드 민요에 한국어 가사를 붙여 ‘애국가’로 불렀다는 점이다. 조선총독부가 강요한 일본 국가 ‘기미가요(君が代)’ 대신, 민중은 스스로의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선율을 선택했다. 이 노래에 나라를 향한 마음을 실었고, 그 곡조는 민족의 기억을 품은 노래가 되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나는 ‘영국’이라는 이름에 가려졌던 ‘스코틀랜드’라는 민족과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대학 시절, 멜 깁슨 주연의 영화 *브레이브하트(Braveheart)*는 그 관심을 경외심으로 바꿔놓았다. 주인공 윌리엄 월리스가 처형 직전 외친 “자유를!”이라는 절규는 단순한 대사가 아니었다. 억압에 맞선 민족의 자존과 연대, 공동체의 용기가 뼛속 깊이 전해졌다.

그들은 한국전쟁에도 영국군의 일원으로 참전해, 머나먼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백파이프를 앞세우고 전선에 섰다. 이 역사를 알게 된 후, 나는 스코틀랜드를 존경의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지금까지 여러 차례 그 땅을 찾게 되었다.


문화예술을 업으로 삼는 이들에게 8월의 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는 특별한 계절이 된다. 세계 최대 공연예술 축제인 에든버러 페스티벌은 예술이 어떻게 언어와 국경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거리극, 실험연극,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무용과 음악까지—그 다양성과 포용력은 단순한 축제를 넘어 ‘예술을 통한 민주주의’의 현장이 된다.


그리고 지금, 한국은 스코틀랜드와 함께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국내 문화예술계는 스코틀랜드의 예술기관 및 예술가들과 긴밀한 협력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사회참여예술(Socially Engaged Arts)’을 중심으로 장애 예술, 창의적 고령화, 기후위기, 공동체 회복 등 현대사회의 주요 이슈를 예술적으로 사유하고 실천하는 작업들이 함께 이뤄지고 있다. 컨퍼런스와 워크숍, 대화와 교류를 통해 우리는 예술이 사회와 얼마나 깊이 연결될 수 있는지를 실감하고 있다.


사실 스코틀랜드와 한국은 역사적·정서적으로도 많은 공통점을 지닌다. 두 민족 모두 강대국 사이에서 정체성과 자율성을 지켜내기 위해 싸워왔고, 고유한 언어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문화를 동반자로 삼아왔다. 일본과 영국이라는 ‘탑독’(top dog)에 비해 ‘언더독(underdog)’이었던 두 나라는 비슷한 상처와 경험을 공유하며 더욱 깊은 예술적 교류를 만들어가고 있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을 맞는 해다.

압제의 시대 속에서도 민중은 스스로 노래를 만들고, 자유를 꿈꾸었으며, 예술을 통해 마음과 마음을 이어왔다. 그 정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 한국과 스코틀랜드의 문화예술 교류는 서로의 기억과 가능성에 공감하는 ‘예술적 우정’이며, 새로운 국제 협력의 모델이 될 수 있다.

2025년 8월 15일, 광복 80주년 기념식에서 한국의 성악가가 이 스코틀랜드 민요에 담긴 애틋한 애국심을 다시 한 번 노래해주길 소망한다. 예술은 언제나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서 흘러나와 서로를 잇는 언어다. 언어와 피부색, 종교가 달라도 선율은 마음을 울리고 몸짓은 감정을 전한다. 예술은 전쟁과 억압, 차별과 갈등을 넘어 사람들을 연결해왔다. 한국과 스코틀랜드의 인연은 그 증거다. ‘올드 랭 사인’은 한때 억압받던 조선 민중의 노래였고, 지금은 광복을 기리는 우리의 기억이다. 그 곡조는 바다를 건너 세대를 잇고, 이제는 국제 협력과 우정의 상징으로 다시 울려 퍼지고 있다.


예술은 개인의 위안을 넘어 공동체를 잇고 세계를 하나로 묶는 힘이다. 스코틀랜드의 언덕에서, 부산의 바닷가에서,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우리는 같은 노래를 부를 수 있다. 그것이 ‘예술로 하나가 되는 세계’라는 우리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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