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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돌 Mar 21. 2021

공직 생활에 후회는 없었나요?

너희들이 공무원을 아느냐


공시족인 Y 씨, 벌써 3년째 공무원 수험준비지만 계속 고배의 쓴 잔을 마시고 있다. 요즘 들어 공무원이 전부일까 회의감이 들고 시골에서 매월 생활비를 보내주는 부모님이 미안해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그는 지금의 현직 공무원들은 공무원 선택에 후회가 없을까 불현듯 궁금해졌다. 



공직 생활하면서 어찌 후회되는 순간이 없었을까. 사실 나도 공직에 대한 회의감에 의원면직하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사기관수사를 받을 때의 피로도였고, 다른 하나는 업체와의 결탁을 요구하상관과의 업무적 마찰로 인한 회의감이었다. 


벌써 이십 년이 훌쩍 넘은 일이어서 이제는 담대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날 근무하는 사무실에 팩스 한 장이 날라 들었다. 귀하를 K 사업 관련하여 비위 조사를 하고자 하오니 언제까지 어디로 출두해 달라는 팩스였다. 발신 기관은 그 당시에 모진 고문과 구타를 일삼는 악명 높은 수사기관이었다. 


기관에 끌려가기 전날 밤, 수사의 두려움에 밤새도록 뒤척였다. 업체와의 결탁으로 군사요구도를 만들었다고 그들이 올가미를 씌워서 내게 수갑을 채우는 일은 생각만 해도 아찔했고, 그 모습을 아내와 아이들이 본다는 것은 풀썩 주저앉고 싶었다. 


수사기관에 들어가기 전에 이웃한 약국에서 우황청심환 한 알을 사서 입안에 넣었다. 심장의 박동 소리가 유난히 커져가는 것 같았다. 수사기관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과거에 썼던 수필집이라면서 수사관들한테 한 권씩 돌렸다. 수사를 조금이라도 부드럽게 이완시키기 위한 하나의 술책이었다. 


담당 수사관은 한 장의 서약서를 내밀더니 지장을 찍으라면서 내 손에 인주를 묻혔다. 그 서약서에는 수사기관에서 보거나 경험한 어떠한 행위에 대해서 외부에 발설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 발설할 경우에는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다는 각서였다. 지장을 찍는 내 엄지가 심하게 떨려왔다.   


수사관은 특허가 있는 특정업체 도면을 그대로 군사요구도로 제정해서 국가 조달시장을 교란시켰고 특정업체에 수십억 원의 일감을 몰아주어 불평등한 수의계약을 방조했다면서 내게 모든 것을 책임질 것을 종용했다. 나는 차분하게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수사관을 설득해 나갔다. 


수사관님, 장비 관련해서 조달 등재된 업체가 23곳입니다. 23개 모든 업체에 이렇게 면 요청을 의뢰하였습니다. 그리고 도면 검토한 결과를 다시 23개 업체에 보내 이견 없음을 통보받았습니다.

 

수사관님, 군사요구도는 저희가 작성하는 것이 아니고, 국방획득관리규정에 의해 실사용자인 수요군에서 작성하는 수요군 고유의 업무입니다. 제가 작성한 군사요구도는 제정도 아니고 채택도 아니고 그저 참고용 자료일 뿐입니다. 문서를 보십시오. 제가 수요군에 마지막 발송한 문서입니다. 


- 귀 군에서 작성한 군사요구도 저(하)급품 납품이 우려되어 우리 기관에서 참고로 작성한 군사요구도를 보내드리니 실사용자인 소요군에서 실정에 맞도록 군사 요구를 재작성하여 조달에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수사관은 자료를 보더니 더 이상 나를 추궁하지 않았다. 사실 문학을 전공해서였을까. 그 당시 나는 문서 기안과 보고서를 즐기고 있었다. 어찌 보면 공무원이 체질이었던 모양이다. 문서 기안을 통해 논리를 세우는 것도 재미있었고, 내가 원하는 방향의 보고서를 작성하고 그것이 결재 났을 때 가슴 떨림의 밀도는 매우 컸다.

  

사실 그 당시 업체에서는 수의계약을 받을 수 있도록 도면에다가 특정 업체명 기입해 달라고 압력을 넣었고, 또 결재권자는 관련 업체 도면 채택이 유리하도록 작성해서 기안을 다시 올리라는 부당한 지시도 있었다. 하지만 경험이 많지 않았던 그 당시 나는 이상하리만치 그렇게 했을 때의 불길한 화약냄새를 맡았다. 


업체나 결재권자의 의견에 굴하지 않고 방식대로의 문서 작성하면서 근거 자료를 남겨두었던 것은 두고두고 다행으로 남았다. 공무원은 정작 한 번에 훅 갈 수가 있다. 세칭 꼬질대 나갈 수가 있다는 말이다. 만약 그때 작은 실수나 허점이 있었다면 사회적 분위기상으로 파면이나 해임까지는 아니었어도 징계를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공직 생활을 하면서, 중앙지검 수사나 감사원 감사, 부패방지조사단 조사 같은 것들은 나를 지치게 했고 또 다른 업무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일련의 사건들이 나를 한층 거듭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공직 생활에 대해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공직은 내게  많은 꿈을 이루게 해 줬고 많은 선물을 주었다. 첫 번째는 공직에 있으면서 문단에 등단을 했다. 몇 권의 책을 낼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또 전국을 다니면서 강의까지 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또 우리 집 식구들이 먹을 수 있는 밥이며 아이들 대학 등록금이 전부 공직에서 나왔다. 


공직 생활을 하면서 적절한 재테크에 성공을 해서 노후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퇴직 후에는 시낭송가 인증서가 있어서 시낭송 강의를 할 수 있고 사단법인 대한 하모니카 협회 하모니카 강사 자격증이 있어서 평생교육원에서 하모니카 강의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공직이 내게 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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