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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돌 Mar 26. 2021

민원 없는 세상에 살고 싶어요

너희가 공무원을 아느냐


공무원 3년 차인 M 씨. 시청 건축과로 발령을 받았는데 요즘 악성 민원 때문에 고민이다.  악성 민원인은 수시로 찾아와서 아파트 공용 부분에 하자가 발생했다며 정보공개를 요구하고 있고 준공 승인을 취소해달라며 폭언과 더불어 지속적인 민원을 넣고 있다. 공무원 M 씨는 선배들도 악성 민원을 많이 겪었을 텐데 어떻게 처리했는지 궁금해졌다. 



공직생활에 가장 힘든 부분이 바로 민원이다. 공무원과 민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이면서 고통의 관계다. 공무원은 국가직이나 지방직 모두 방대하고도 경우의 수가 다양한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  강도 높은 민원을 견디지 못해 의원면직하는 공무원도 다수 있고 심지어 유명을 달리하는 공무원도 있다. 비근한 예로 얼마 전 서울시 7급 공무원도 1년에 6천 건의 민원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목숨을 끊었다. 


먼저 민원의 유형부터 찾아보자,  민원은 크게 보면 생활 민원, 진상 민원, 악성 민원, 지능 민원으로 분류할 수 있다. 생활 민원은 주로 일선에서 많이 발생을 하는데 공사장 현장에서의 소음 문제와, 노점상으로 인한 통행의 불편함 같은 민원들이다. 


하지만 생활민원이나 진상 민원 같은 것들도 이권이 개입되어 있으면 상황은 급격하게 달라진다. 예컨대, 공사장 소음의 민원이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보상금을 노리는 행위이거나, 불법 노점상 영업이 도로 통행의 방해가 아니라 영업권을 둘러싼 상인들 간의 이권 다툼이라면 민원 처리가 결코 녹록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런 악성 민원과 지능 민원은 사회적 병리현상과 맞물려 독버섯처럼 자라나 끊임없이 공무원을 괴롭힌다. 심지어 지능 민원인 같은 경우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어떻게 공무원을 괴롭히는지 그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실례로 15년 동안이나 공무원이 부서를 옮겨도 따라다니면서 괴롭히는 민원인도 실제 있었다. 


지방에 살면서 민원인은 어떻게 서울 청사에 근무하는 공무원을 15년 동안 괴롭힐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국민의 알 권리라는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서 담당 공무원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그 지능적인 수법이 혀를 내 두를 정도였는다. 하지만 민원 방법론에 있어서는  또 다른 민원을 양산할 수 있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겠다. 


사실 이 지능 민원인도 처음에는 선량한 생활 민원이 근원이었다. 자신이 응시한 자격증 시험문제에 오류가 있으니 바로 잡아달라는 민원이 발단이었다.  그러나 출제위원들이었던 대학교수와 전문위원들은 스스로의 과오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시험 문제에 이상이 없는 것으로 그 민원인한테 재심의 결과를 회신했다. 


이 민원인은 결국 오류 시험 문제 하나로 낙방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15년간의 길고도 고단한 싸움을 택했다.  그는 제일 먼저 담당 공무원의 업무와 그 기관의 관련 규정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결국 어느 순간 담당 공무원보다 업무적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사실 담당 공무원은 2년마다 인사이동을 하기 때문에 그 민원인의 업무적 깊이를 따라가는데는 한계가있었다.


이 민원인은 문제를 출제하는 담당 공무원이 인사발령받을 때마다 따라다니면서 괴롭혔다. 본부로 발령 받으면 본부에 민원 넣어서 괴롭혔고 일선 센터로 가면 일선 센터로 가서 괴롭혔다. 오류시험 문제도 끈덕지게 파고 들었다.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과거의 시험문제 오류 사건을 해결해 달라고 지속적인 민원을 넣었다. 민원이 처리되지 않으면 그 기관의 게시판에 '기관장과 담당자를 당장 잘라라' 하면서 스팸 민원을 지속적으로 넣었다.


담당 공무원도 그 민원인의 15년간 쌓아 올린 업무의 전문성과 달변가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사실 일선 기관에서는 관련 규정대로 처리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일들이 많이 있고. 처리하고 싶어도 관련 규정 미비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바로 사회는 급변하게 변해가는데 관련 규정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민원인은 이런 제도적 허점을 이용했다. 


악성 민원에 대한 대응 방법


먼저 악성 민원의 사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내가 경험한 악성 민원인은 발명가였다. 젊은 날의 인생을 모두 바쳐 건물 고층에서 내려올 수 있는 피난장비를 개발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민원인 개발한 피난장비는 처음부터 국가에 납품할 수 있는 장비가 아니었다. 


가장 치명적인 결함은 안전성이었다. 안전성 결함을 해결하면 제품의 결함이 있었고 제품의 결함을 해결하면 안정성의 결함이 있었다. 이 민원인이 3차에 걸쳐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결국 패소했다. 하지만 이 민원인은 평생 개발한 피난장비의 하자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발령을 받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 민원인은 아침에 찾아왔다. 본인이 개발한 피난장비를 국가에서 도입을 해주지 않는다면서 담당 공무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언성이 오고 가기 시작했고 급기야 그 민원인은 독사처럼 퍼렇게 불타올라 고성을 지르며 담당 공무원한테 막말을 하기 시작했다. '너는 애비도 없느냐'는 민원인의 모욕에 담당 공무원의 얼굴도 붉어져 몸싸움을 할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나는 그 당시 중간 관리자였다. 담당 공무원에게 사무실을 잠깐 나가 있으라고 하고 내가 그 민원인을 상대했다. 민원인은 개발한 제품에 대해 관련 서류를 내밀면서 격앙된 설명을 이어갔다.  KBS 방송에서도 극찬을 한 제품이고, 29층 높이에서 피난하는 공개시험에도 성공을 했고, 특허도 있고, 시험성적서도 있고, 교수님 추천서도 있는데 내 전임자가 관련기관과 공모하여 청와대까지 속여 왔으니, 사실을 밝혀주고 제도권 도입을 해달라는 민원이었다. 


사실 민원인이 개발한 피난장비가 공개시험에 성공했다고 하지만 심의위원이 지나가면서 그 민원인한테 제품이 참 기발하고 기똥차다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민원인은 공개시험에 성공했다고 우격다짐을 놓고 있었다. 또, KBS 방송에도 극찬을 했다는 것도 29층 높이에서 로프에 의존해 내려올 수 있는 상황에 놀란 것이지 그 장비에 대해 극찬한 것은 아니었다. 


그 개발자는 10년 동안 장비를 개발하고 시험을 했다. 20층 높이에서 로프에 의존한 채 숱하게 내려오는 학습을 다년간 체험해서 런닝커브를 극대화 할 수 있었다.  만약 실제의 화재의 현장에서 패닉 상태의 국민이 그 장비를 타고 10층에서 내려올 수 있을까. 그것은 자살행위였다. 


그리고 특허 출원을 했다고 하지만 그것 역시 제품의 성능을 담보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시험성적서도 있다고 하지만 국가 기관의 기준이 아닌 민간 기업의 시험성적서였다. 교수님 추천서를 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이름도 없는 지방대 교수의 추천서를 국가가 인정해 줄 수 있는 노릇도 아니었다. 나는 그 민원인한테 조용하고도 차분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희 기관은 수사기관이 아닙니다. 정책부서입니다. 지금 선생님께서 요구하신 우리 기관이 타 기관에 공모하여 청와대까지 속여왔기에 조사해 달라고 하는데 그 내용은 감사대상도 아니고, 실사대상도 아니고 감독 대상도 아닌 수사대상입니다. 저희 기관은 수사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수사를 하고 싶어도 법적 자격이 없어서 할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이 담당 공무원을 직무 유기와 허위 공문서 작성으로 경찰에 고소하여 현재 수사 진행 중에 입니다. 수사결과에 따라 저희 직원이 공모한 것이 사실이라면 문책을 당할 것입니다. 수사 결과를 보고 처리할 계획이니 그 점 양해해 주시고 돌아가 주시기 바랍니다. 


민원인은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더니  버럭 화를 내기 시작했다. '당신은 전임자보다 더 나쁜 놈이야. 모가지를 비틀어 버릴 XX'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덤벼 들었다. 나는 다시 나직하게 이야기했다.


선생님, 지금 제 모가지를 비틀어 버린다고 하셨습니까. 선생님하고는 더 이상의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앞으로 선생님과의 일체의 대화를 거부하겠습니다. 필요하시다면 문서로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정중하게 성심성의껏 회신토록 하겠습니다. 


민원인은 그다음 날도 내게 찾아왔다. 나는 할 이야기 있으면 정식 문서로 달라고 했고 업무를 수행해야 하니 나가 달라고 했다. 민원인은 나가지 않고 내 앞에서 고성을 지르면서 막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민원인을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 조용히 경찰서에 공무방해로 신고 했을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차가 사인렌을 울리며 달려와 그 민원인을 체포해 갔다. 


그 후 민원인은 자체 감사관실에 민원을 넣었고 해결되지 않자, 감사원에 민원을 넣었다. 그것도 해결되지 않자 이번에는 청와대에 민원을 넣었다. 그 후에도 민원인은 동일한 민원을 반복적으로 집어넣었다. 하지만 나는 그 민원에 대해 더 이상 응대하지 않았다. 


근거는 민원사무 처리에 관한 법률에 있다. 민원사무처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1조 1항에 보면 정당한 사유 없이 3회 이상 반복하는 민원에 대해서는 2회 이상 그 결과를 통지하고 그 후에는 행정기관장의 결재를 받아 종결 처리할 수 있다는 규정이었다. 


그런데도 이 민원인은 집요하게 공무원을 괴롭혔다. 투서가 먹히지 않자 이번에는 청사 앞에서 식음을 전폐하면서 1인 시위를 시작한 것이다. 나는 관련 규정을 분석하고 타기관 1인 시위 사례를 찾아봤다. '대한민국의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에 의해 1인 시위는 정부가 보장하는 합법이었다. 타기관 사례를 분석해보니 고충민원조사단과 부패척결추진단에서지속적인 1인 시위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며 해결책이 있으면 오히려 나에게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1인 시위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을 했다. 제일 먼저 기관장한테 1인 시위 내용을 알리는 보고서를 작성 했고 그 내용을 관련기관에 전파를 했다. 담당 직원한테는 실시간 1인 시위 민원인의 동향을 파악하게 했고 나는 그 1인 시위 가족을 만나 설득하기 시작했다. 또 행여나 모를 사고에 대비해 경찰서에 연락해 순찰을 강화하도록 했고, 시청에 전화해서 일일 건강상태를 체크하도록 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1인 시위 점검일지를 작성하도록 했다. 


다행히 민원인은 추석이 지나고 찬 바람이 불자 1인 시위를 접고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갔다. 


지능 민원에 대한 대응 방법


지능 민원은 사실 진상 민원이나 악성 민원보다 더 대응하기 힘들다. 진상 민원이나 악성 민원은 막말을 듣고 한쪽 귀로 흘리면 되고 폭행을 당하면 경찰에 신고하면 된다. 그런데 지능 민원은 공무원을 괴롭히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담당 공무원의 피로도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내가 만난 지능 민원은 삼성에서 근무하다가 재난장비를 개발한 민원인이었다. 이 민원인이 개발한 장비는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가독성이 좋지 않고 정전 시에는 작동될 수 없다는 연유로 채택되지 않았다. 이 민원인은 여기에 불만을 품고 4년 가까이 기관과 담당 공무원을 괴롭혔다. 


이 민원인은 전 기관의 연구 분석 사례를 가지고 감사원과 청와대에 지능적인 투서를 넣었고, 수시로 국장 면담을 요구했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청구 소송을 냈고 기술적인 답변을 기관에 11회 요구를 했다. 또 담당자 문책을 3회에 걸쳐 요구했다. 


담당 공무원은 지능 민원인의 논리에 밀려 장비 채택을 해주자니 이권이 있는 관련 협회와 유관기간이 들고 일어났다. 가만히 있자니 지능 민원이 그럴듯한 논리를 앞세워 또다시 장비 채택을 요구하며 괴롭히고 있었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었고 사면초가였다. 이 공무원은 이 총체적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전문위원회 구성하거나 학회에 용역을 주는 방법이었다. 담당 공무원이 기술성과 전문성 등으로 제도권 도입을 결정하지 못할 때는 객관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문학회에 용역을 주거나 전문위원회 심의를 통해서 결정할 수 있다. 


이 지능 민원 건도 결국 전문위원 심의회를 통해서 결정을 했고 거기에 대해서는 이의제기를 할 수 없었다. 다년간 민원을 상대하면서 내가 경험한 가장 좋은 민원 처리 방식은 무엇이었을까. 


'전문성을 쌓아라'


그것은 바로 지능 민원인보다 업무적 전문성을 더 많이 쌓는 것이었다. 그것이 담당 공무원의 살 길이었다. 물론 과정이 결코 녹록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능 민원을 상대하는 경험이 늘어나고 또 민원인보다 더 많은 전문성을 확보한다면 어느 순간 민원 상대하는 일이 결코 두렵지도 않고 지능 민원으로부터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반석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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