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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돌 Sep 30. 2021

한센인, 그 인권유린에 대하여

살아가는 이야기


주말에는 '한센인권활동백서'를 추슬렀다. 이 책은 권당 700페이지 이상되는 두꺼운 4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찬찬히 읽어내려가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져 종주먹이라도 책상이라도 치고 싶었고 땡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한센인이기 때문에 유린당해야 했던 그 시절의 인권을 어떻게 보상받을까를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이미 죽은 자는 한센인은 말이 없고 살아있는 한센인은 죽을 날을 기다리는 초고령자들이다. 그들이 세상에 맞서기에는 너무나 멀찍이 비켜서있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고 1년이 지난 1963년, 소록도병원에서는 가족계획에 완벽을 기한다는 목적으로 가임기 여성에 대하여 의사와 간호사로 하여금 매월 정기적으로 임신 여부 검진했다. 그리고 임신이 되었으면 가차 없이 낙태를 시켰다. 


남편이 있는 부녀자가 임신을 해도 규율을 위반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그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퇴소와 낙태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사회적 배경상 한센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낙태뿐이었다.


그들은 일제 강점기부터 장기간 소록도에 강제 수용되면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손가락이 없는 꼬막손과 제대로 걷기 힘든 몽당발로 소록도를 벗어나서 그것도 임신한 몸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게다가 그 당시에는 문둥이라는 사회적 홀대까지 당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들은 눈을 질끈 감으며 낙태수술과 소파수술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더 잔인한 것은 이런 잘못된 정책이 1990년대까지도 그대로 답습되었다는 것이다.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남자는 단종수술을 받아야 했고, 여자는 강제적 낙태를 당해야 했다.


다음은 한센인들이 직접 증언한 피해들이다. 


1974. 한센병이 발병하여 1972. 경 소록도병원에 입원하기 위하여 병원 외과에서 단종수술을 받았고 단종수술 후 2달 정도 지나서 감금실에 4달간 이유도 없이 감금되어 직원에게 곡괭이 자루로 허리와 엉덩이를 폭행당했다.


1972. 소록도로 강송되어 신생리에 살았는데 1976. 20세경 임신을 하니 신생리 의료 주임이 소록도에 살려면 강제로 낙태를 강요하여 주사를 맞고 낙태를 당한 후, 그 해 연말 다시 임신되어 낙태를 당했다. 


1962. 부산에서 단속반에 잡혀 소록도에 강송되어 감금실에서 20일간 감금 폭행을 당하고 1967. 21세경 임신을 하니 낙태를 강요하여 주사를 맞고 낙태당했다. 그 후 1968. 다시 임신이 되어 또 낙태를 강요하자 약 15일 정도 외출을 허가하여 사회에 나와서 낙태수술을 한 후 귀원했다.


한센병이 발병하여 집을 나와 거리에서 생활하던 중 1950. 단속반에 의해 국립소록도병원에 끌려가, 환자가 거리를 돌아다녔다는 이유로 15일 동안 감금실에 갇혀 폭행을 당하였고, 1957. 임신을 하게 되자 강제로 낙태수술을 당하였다.


1940. 한센병 발병하여 1948.3. 19세에 임신을 하고 순창으로 피난을 갔다가 3달 만에 다시 소생원에 와서 이곤희에게 낙태수술을 받았고, 밥을 훔쳐 먹다가 공안대에 잡혀가 3일간 구금당하고 공안 대원들에게 발로 차이고 연탄집게로 폭행을 당했다.


1967. 20세에 격리 수용되어 생활하던 중 결혼을 하였고 임신을 하자 임신 8개월 경 원장의 지시에 의해 강제로 낙태 수수 술을 당하였다.


1960. 고창에서 발병하여 소생원에서 생활하던 중 1960. 경 장사를 하기 위해 무단 외출을 했다가 공안부 직원에 의해 일주일간 감금당하고 몽둥이로 등, 허리 등을 폭행당했으며, 1962. 경 이름 모를 남자 의사에 의해 수술에서 낙태수술을 당하였다.


이 외에도 피해자의 증언은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진다. 태아가 너무 커서 낙태가 어려운 경우에는 배를 갈라 태아를 꺼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렇게 낙태하고 복개 수술해서 꺼낸 태아를 유리병에 집어넣어 일렬로 선반에 진열을 하기까지 했다. 


소록도에서 한센인들은 말 그대로 마루타였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은 파상풍균과 괴저 균을 연구하기 위해서 한센인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감행했다. 한센인이 궤양이 있거나 몸에 상처가 생겨 진료실에 가면 '땡긴주사'를 놓았다. 일명 경련 주사라고도 하는데 이 주사를 맞으면 마치 뒤에서 무엇인가 땡기는 것 같더니 나중에는 뒤로 넘어져 죽는다고 해서 한센인들은 이 주사를 땡긴주사라고 불렀다.  이 주사를 맞는 한센인마다 이유 없이 사망을 하자 주사를 놓았던 일본인 의사는 조용히 본국으로 도일했다.


그것도 모자라 내처 한센인들한테 병을 치료한다는 명분으로 '흉골골수천자' 수술을 했다. 이 수술은 한센병 치료와는 상관없는 연구의 목적이었다. 수술하는 방법은 가슴 한 복판에 송곳으로 구멍을 뚫고 골수를 뽑아내 병균을 검사하는 것이었다. 이 수술을 당하면 시낭고낭 앓다가 죽거나 평생 갖은 병마에 시달려야 했다. 


안타깝게도 '흉골골수천자'라는 이 수술 역시 197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심지어 명절에 부모가 그리워 소록도를 벗어나 고향에 가고자 해도 강제로 이 '흉골골수천자' 수술을 시켰다. 고향에 간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이 수술을 받고 갈 수 있었다. 


세월은 가도 역사는 남는다. 소록도에 근무하면서 정작 한센인 애환을 다룬 소설 한 권 엮어내는 것이 내 삶의 목표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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