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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돌 Oct 01. 2021

녹동 장날

살아가는 이야기


살아가는 일이 허기지고 헛헛한 바람에 시달릴 때면 시장에 가고 싶다. 시장은 늘상 심장의 박동 소리처럼 살아서 움직이고 그래서 자꾸 작아지려는 나를 다잡게 만든다. 그리고 시장에는 사람의 향기가 나서 좋다. 오늘도 시장이 그리웠던 것은 딱히 장날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어쩌면 고)도(孤島)에 살아가는데 말미암은 사람 향기가 그리움이었으리라. 


녹동시장에 갔을 때는 해가 서산에 뉘엿뉘엿 기울어가고 있었다. 방파제 어름의 바다에는 은빛 숭어가 뛰어올랐다. 그때마다 파도의 골은 깊어져 바다에 물비늘이 일었다. 녹동시장은 파장이 다가오는 해거름이어서 그런지 부산 대지 않았다. 옛날의 시장이 중앙에 난전을 펼치는 도떼기시장 같았다고 한다면 요즘 시장은 개량되어 상점도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다.  


시장 초입을 지나자 천막집 아줌마가 나를 보더니 해맑은 미소와 던지며 인사를 건넨다. 가끔 그 아줌마한테 생굴을 사고는 했었다. 50대로 보이는 그 아줌마는 체수가 앙바틈하고 피부가 고왔다. 늘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지전을 거슬러 줄 때면 입가의 환한 웃음을 먼저 거슬러주고는 했다. 


녹동시장에서는 어패류를 파는 상점이 많이 있다. 비단 생선 가계에서만 어패류를 파는 것이 아니다. 시장 아줌마들은 가게 앞에서 어패류를 까서 판다. 천막집 아줌마도 어패류를 까서 팔고, 철물점 아줌마도 어패류를 까서 판다. 심지어 이불집 아줌마도 어패류를 까서 판다. 그럴 때면 시장 골목에는 갯바위 붙은 고동의 향이 깊게 떠다니고는 한다.  


그 아줌마들이 까서 파는 어패류는 정형화된 계절의 나이테를 갖고 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점포 앞에서 긴 앞치마를 두르고 일제히 석화를 까서 판다. 석화는 스테인리스 밥사발이나 사기 종기에 담아서 파는데 오천 원어 치면 생굴과 숙회 굴을 먹기에 충분하다. 


아줌마들이 석화가 까다가 바지락으로 바뀌면 어느새 봄이 잇대 왔다는 것이다. 바지락은 진달래가 붉게 피려고 하는 무렵의 맛이 가장 으뜸이다. 바닷가 사람들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바닷가 사람들은 진달래가 필 무렵에 바지락을 가장 많이 즐겨 먹고 또 많이 보관을 한다. 심지어 겨우내 먹을 바지락을 넉넉히 사서 냉장고에 쟁여놓고 1년을 먹기도 한다. 비록 냉동을 한 봄 제철의 바지락이라 할지라도 그 어떤 철 지난 계절의 살아있는 바지락보다도 더 맛이 좋다는 것을 바닷가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봄에 캔 바지락을 넣고 끓인 칼국수를 먹어 본 사람이라면 진한 국물 정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일반 사람들은 겨울에 바지락 칼국수를 먹고는 이 맛이 아니라고 실망을 한다. 바지락이 가장 맛이 없을 때가 겨울이다. 겨울에는 씨알이 커도 몸살이 작고 국물 맛도 우러나지 않는다.  


어시장에 갔다. 고무동이에 청게 한 마리가 얼핏 보였다. 청게는 소록도에 와서 처음 알게 되었다. 녹동 토박이들도 청게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청게의 크기는 꽃게만 한데 엄지 집게가 흡사 바닷가재처럼 생겼다. 작년에 소록도 해안가에 해루질 가서 처음으로 청게를 잡았었다. 해루질은 밤에 횃불을 들고 바다에 나가 어패류를 잡는 우리나라의 전통 어로 방식이다. 간조 때 허벅지까지 차는 바다에 가서 갯바닥을 예의 주시하는데 느릿느릿 기어가는 커다란 게가 시야에 들어왔다. 얼른 뜰채로 건졌더니 그것이 바로 청게였다.  


청게는 생긴 것도 참으로 우수꽝스럽게 생겨먹었다. 처음 잡았을 때는 청게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던 터라 먹어야 할지를 놓고 기로 선상에 빠졌다. 복어처럼 게껍질 안에 독이 가득 들어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게를 잘못 먹고 죽었다는 사람은 듣지 못해서 용단을 내릴 수 있었다. 청게를 삶아서 입안으로 가져갔더니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맛이었다. 게눈 감추듯 연이어 입으로 들어갔다.  


청게가 꽃게보다도 몇 곱절 비싸다는 것을 그 후에 어시장 경매사를 통해 알았다. 경매사는 어떻게 청게를 먹어봤냐면서 뜨악하게 물었다. 지금 청게를 예약하신 몇 분 있는데 워낙 희귀한 게여서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심지어 병원에서 투병하시는 분이  죽기 전에 가장 먹고 싶어 하던 게가 바로 청게였다고 했다. 


그밖에 녹동에는 동해나 서해에서 맛볼 수 없는 맛있는 해산물이 많이 있다. 그중의 하나가 금풍생이다. 그 생선도 녹동에 와서 처음 먹어 보았다. 민물고기로 치면 흡사 꺽지처럼 생겼고 바닷고기로 치면 흡사 볼락처럼 생겼다. 녹동에 있는 힐링비어 호프집에 가니까 노릿하게 튀겨져 나왔다. 맛이 일품이다. 지느러미까지 오독오독 씹어 먹으면 입안 전체에 고소함이 퍼진다. 금풍생이의 이름도 다양하다. 옛날에는 금풍선, 혹은 샛서방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금풍선은 충무공 이순신과도 관계가 있다.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이 녹동에 진을 쳤을 때 바다에 나간 관노가 금풍생이를 잡아왔다고 한다. 이 생선을 먹어 본 이순신 장군은 그 맛에 반해 생선의 이름을 물었고 관노가 '금풍생이라 하옵니다.' 하자 이순신 장군은 '앞으로 이 생선도 조선을 지키는 나랏일을 하니 금풍선이라고 하거라' 하고 생선의 이름을 명명했다고 한다. 


샛서방의 유래도 재미있다. 남편의 병세가 시낭 고난 악화되어 가는데 부인은 새서방과 딴살림을 차렸다. 이 금품생이를 잡아다 남편 몰래 숨겨놓고 새서방한테 갖다 주었다고 해서 샛서방이다. 녹동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재미있는 지역의 설화를 많이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오는 길에 보니까 작은 고무동이에 금풍생이를 담아 8만 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쑴뱅이보다 몇 곱절 더 값이 나가고 있었다. 요즘은 하모회가 제철이다. 3만 원어치를 샀다. 소록도로 오는 길에는 서서히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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