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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돌 Mar 27. 2022

코로나를 설매화처럼 싱싱하게 나는 법

코로나 투병기 



내게 코로나 증상이 처음 찾아든 것은 4일 전이었다. 그날 정오 무렵에 몸에 으슬으슬 한기가 밀려들었다. 처음에는 컨디션 난조로만 치부했다. 하지만 한기는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집에 와서 방안에 누웠지만 한기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오후에 출근했을 때 공교롭게도 한센인 중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 한센인과 당구장에서 4일 전  그러니까 지난주 토요일에 접촉을 했었다. 신속항원키트를 구매하러 황급히 녹동에 있는 약국으로 갔다. 가는 길은 수심이 어리었다. 별의별 난잡한 생각이 다 들었다. 


사무실에서 면봉에 피가 묻도록 코를 쑤셔 검사를 시작했다. 코 쑤신 면봉을 시료에 넣은 후 신속항원키트에 용액 세 방울 떨어뜨렸다. 처음에는 한 줄만 그어져 이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휴' 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려는 찰나에  추가로 평행선 한 줄이 희미하게 그려졌다. 그 선은  바로 양성을 알리는 시그널이었다. 


사실 요 며칠 코로나 확진자 수가 천만명이 넘어가면서 나에게도 도덕적 해이가 있었다. 심지어 어제는 여덟 명이 갈빗집에서 술자리를 가졌었다. 감염관리지침에 의해 소모임이 여덟 명까지 가능하니 법의 범주 안에는 들었지만 적절한 처사는 아니었다.  


나는 어제 술자리에서 직원들에게 우리나라 국민 다섯 명 중에 한 명이 코로나에 감염되고 있다면서 이제는 코로나 감염이 더 이상 민폐가 아니라 불가항력적인 흐름임으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피력했다. 심지어 요즘 일각에서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 것도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였다. 


그런데 내가 신속항원검사 결과 양성 판정이 나온 것이다. 피시알 검사를 하기 위해 고흥보건소로 가는 길은 흡사 도살장에 가는 소울음 같았다. 언덕에 위치한 고흥보건소 앞에는 몽골텐트가 쳐져 있었다. 멀리서 보았을 때도 그것이 코로나 선별 검사소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내 앞으로 다섯 명이 줄을 서고 있었다. 갓난아기도 있었다. 저 갓난아기는 무슨 죄가 있기에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할까를 생각하니 어른으로서 코로나를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에 자조 섞인 한숨이 흘러나왔다. 10여분 기다리자 내 차례가 되었다.  


피시알 검사는 금세 끝났다. 면봉으로 한쪽 코를 두세 번 쑤시더니 끝났다고 했다. 코로나 검사 결과는 내일 아침에 문자로 알려준다고 했다. 그날 밤, 오한과 신열이 밀려들었다. 더불어 온몸의 뼈마디가 쑤시기까지 했다. 인내에 길들여 살아온 나였지만 고통은 나를 못 견디게 했다. 


아침 8시에 고흥보건소로부터 날아온 문자였다. 사무실에 코로나 확진 사실을 통보하는 전화는 내내 무거웠다. 그래도 직원들한테 위로의 전화가 걸려왔다. 어떤 직원은 내게 가오가 서지 않는다고 했다. 직원을 관리해야 할 중간 간부가 오히려 코로나에 감염되었으니 구구한 변명이나 설명 따위가 무슨 필요 있겠는가.  


코로나의 고통은 독감보다 수위가 훨씬 높았다. 평생 감기 한번 걸리지 않은 내게 경험해보지 못한 통증이었다. 머리는 지구 덩이만 한 무게가 짓눌렀으면 아무리 보일러 온도를 올려도 몸은 으슬으슬 추웠다. 약을 먹어도 뼛골까지 쑤시는 통증은 쉬이 사위어지지 않았다. 


작년에 줄기세포 무릎 수술하다 보니까 코로나 접종을 맞을 수 없었다. 코로나 미접종자는 감염 시에 더 큰 고생을 한다고 하던데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오한이 사라지는가 했더니 진해거담이 찾아들었고 진해거담은 그 후 인후통으로 전이되었다. 


3일째, 내 몸하고는 상관없이 자고 일어나니까 간밤에 화신의 봄비가 내렸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자 소록 해수욕장에서 피어오른 해무가 마을 경로당을 지나 산허리를 포복해 서서히 기어갔다.  대기는 무거웠고 공기는 농밀했다. 


정원에는 수선화가 꽃망울을 터트리려고 자태를 바꾸고 있었다. 식물은 늘 비를 맞을 때 웃자랐다.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저 수선화의 꽃망도 어쩌면 봄비가 키워낸 봄의 전주곡이었다. 정원의 새싹은 여기저기 움트고 있었다. 대견하기도 하고 자연의 영화로움에 절로 고개를 숙여지게 된다.


오늘이 코로나 4일째다. 코로나는 여전히 신열과 두통, 기침을 왕복하고 있다. 아침부터 해열제인 타이레놀과 진통제인 낙센, 진해거담제인 코대원 에스를 먹었다. 약을 먹으면 몽롱해졌고 한잠 자고 일어나면 다시 명료해졌다.


오후가 되어서야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해졌다. 간헐적인 잔기침과 약간의 인후통 외에는 더 이상 신열과 뼈마디 쑤시는 통증은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집안에서 책을 보다가 답답하면 현관문을 열고 바깥에 나갔다. 


왼편에 소록해수욕장이 아스라이 펼쳐졌다. 해송 사이로 아련하게 보이는 바다는 은빛이었다. 그럴게 멀거니 바라보고 있자니 꽃샘추위가 밀려왔다. 올 겨울은 유달리 짧았지만 꽃샘바람은 여전히 옷깃을 여미게 했다. 


다시 집에 들어와 책을 읽었다. 아직도 고흥 도서관에서 대출해온 책들 중에 읽지 않은 책이 많이 있었다. 코로나가 오히려 나를 설매화처럼 싱싱하게 주말을 나게 하고 있다면 그 기이한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코로나의 고통은 독서가 앞질러 가고 그 뒤를 환희와 기쁨이 나누어 가지고 있다. 코로나가 내게 시간을 선물해주었고 그 시간이 나를 책으로 인도하고 있다. 아직 내게 남은 일주일, 나는 도서 삼매에 빠져 글의 유희에 젖어 있으리라. 


오늘이 5일째, 코로나는 마침내 그 고통에서 나를 완벽하게 놓아주었다. 나는 그간 찌푸렸던 코로나를 책과 글이라는 따스한 봄 햇볕에 널어 말랑말랑해지도록 말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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