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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돌 Sep 18. 2022

박범신 작가 '외등' 그 장편소설의 아픈 사랑은   

독서 그 이상한 힘



박범신 작가의  '외등'을 감동적으로 읽었다. 내일이 도서반납일이다. 오늘 내가 이 외등에 대한 독후감을 완성하지 못한다면 이 소설은 내 머릿속 기억에서 그늘져 있다가 잔잔히 쇄락해 갈 것이다. 그래서 적어도 내일까지 나는 이 소설에 대한 독후감을 완료하겠다는 어떤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박범신 작가는 80년대에 최인호, 한수산 작가와 함께 우리나라 소설계를 풍미하던 트라이 앵글 중 한 작가였다. 그래서였을까. 이 소설 역시 수려한 문장을 앞세워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이 소설은 작가의 문학적 기교를 바탕으로 긴장의 끈을 요소요소에 웅숭이도록 장치해 놓아 읽어내려 갈수록 그 다음의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이 소설은 시작할 때 목련나무 그늘을 도입하여 시적 기교를 살린다. 생동하거나 추락하면서 하늘을 나는 여러 개의  연에 수미상관관계를 식재하기도 하고 소설적 장치인 비 내리는 풍경이나 바람에 잇대어 독자의 몰입도에 깊은 완성도를 꾀하고 있다. 


박범신 작가는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가라고 받은 여비를 문학잡지를 구독하는데 쓰고 친척집에 숨어있기도 했다. 문학에 대한 열성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또 고등학교 때 두 번씩이나 자살시도를 했다. 이것은 미수에 그쳤으나 작가의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방증한다. 이 작가는 그 당시의 방황에 대해 준비 안 된 독서는 한쪽으로 과도하게 기울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해질 수 있다고 술회한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이 '외등' 소설은 이재희의 '나'라는 1인칭 소설을 형태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도 기술하고 있다. 이 소설은 '새벽에 나는 그 전화를 받았다. 서영우 씨 아시지요?'로 시작된다. 이복오빠인 서영우가 죽은 것에 대해 신원 확인이 필요하다는 경찰의 전화였다. 서영우는 평생 짝사랑했던 혜주가 감금된 대성그룹의 산아래  먼발치에서 그녀를 기다리다가 결국 얼어 죽고 말았다. 


이재희는 어려서 엄마의 재혼으로 가희동 목련꽃 그늘집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거기에서 이복오빠인 영우를 만나게 된다. 영우는 손재주가 좋아 연을 잘 만들었고 대나무에 구멍을 내어 피리도 만들었다. 또 그녀에게 나무를 깎아 기도하는 소녀상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재희는 영우를 좋아했지만 다가설 수 없었다.  


이웃에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 근무하고 6.25 때 군수물자를 납품하여 대부가 된 집안의 아들 노상규가 살았다. 노상규는 영우에게 때로는 굴종을 주기도 했고 고통스러운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그 집안의 위력이 무서웠던 영우는 대거리조차 않았다. 영우의 아버지는 빨갱이 누명을 쓰고 있었고 노상규의 아버지는 정보부에 고위직에 있었기 때문에 심한 감시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재희는 방에 들끓는 쥐가 무섭거나 한밤중 내려치는 뇌성 번개가 무서워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영우는 알고 있었다. '정 무서우면, 내 방문을 두드려' 영우가 말이었다. 그 후 재희가 신호를 보낼 때마다 영우는 아무도 몰래 재희의 방으로 건너와 잤다. 재희는 가만히 있었지만 영우가 살며시 그의 얼굴을 만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해 여름, 서산 댁과 그의 딸인 혜주 언니가 가희동 집 문칸방에 달세로 들어왔다. 노상규는 혜주를 좋아해서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거나 문칸방에서 그녀를 기다리고는 했다. 사실 혜주에게 보낸 편지는 영우가 대필한 편지였다. 


어느 날 혜주는 난폭한 노상규의 친구들에 의해 제과점으로 끌려갔고 그 불한당 같은 친구들에 의해 막말이 섞인 겁박을 당했다. 노상규는 눈빛이 번득이는 칼날로 친구들을 후려쳤다. 그때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다. 혜주의 손바닥이 노상규의 얼굴을 호되게 후려갈긴 것이다. 노상규는 그 후 자취를 감췄다. 


가희동을 떠나 대학생이 된 영우와 혜주는 우연히 전시회장에서 조우했다. 그 뒤로 둘의 사랑은 더욱 깊어지지지만 혜주는 군부정권에 저항하던 영우를 지켜주기 위해 노상규를 택한다.  노상규 집안은 군납업과 가발공장으로 돈을 벌어 아주 커다란 방직공장까지 인수하고 있었다. 


'혜주가 처음이었어' 영우가 그 말을 했을 때 혜주는 '나도 그래, 영우 씨'라고 말했지만 혜주는 사실 일주일 전에 노상규와 관계를 가졌었다. 그런데 정작 혜주는 영우의 아이를 갖게 된다. 


노상규와 결혼은 행복하지 않았다. 노상규는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혜주를 폭행하기도 했고 미국에서의 신혼 생활은 늘 자포자기였다. 한국에 돌아와 둘은 결혼식을 올렸지만 노상규는 많은 염문을 뿌리며 바깥으로 돌았다. 그 후 외환위기로 점차 내몰리면서 노상규는 집안이 일어날 가망이 없어지자 미리 준비한 회칼로 20센티미터 이상 자신의 배를 갈랐다는 기사가 실린다. 


혜주는 노상규와 이혼을 하고 양수리에 집을 지어 정신대 피해 할머니를 모시고 살아간다. 가희동의 그 젊은 날의 목련나무가 마당에 이식되는 장면을 보고 재희는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린다. 



아래는 외등을 읽고 밑줄 그은 부분이다.  


짜증이 잔뜩 서린 갈라진 목소리로

줄이 끊긴 연은 산허리를 치더니 곧장 강 건너 안갯속으로 자맥질해 들어갔다

온몸의 세포가 비로소 잠의 비늘을 털면서 급격히 깨어나는 걸 

아까보다 선명히 들린다.

산비탈을 휘돌아 지나고

늙수그레한 방범대원이

그의 서리 깊은 정한은 불탈 수 없을 터였다

단순한 객사자로 처리되었다

성긴 머리털 사이를 지나

겸연쩍다는 듯

북향의 작은 골방이 내 방이었다

적의로 번뜩이는 불의 시선을 내게 보내고는 했는데

그때마다 공포감 때문에 오금이 저려오는 느낌을 받았다

봄이 오면 먼저 목련이 피었다

조선의 사대부 여인들이 지녔던 기품과 인덕의 끄트머리를 체득하면서

낡은 습기가 낡은 기와집인 우리집 구석구석을 좀먹고 있었다

그들이 다녀간 날이면 어머니는 더욱 전의에 불타오른 표정이 되어

척추가 휘는 무거운 고통의 짐을 스스로 지고 살았다

장마전선이 그제야 물러났다

여자를 향해 하얗게 눈을 흘겼다

이맛살을 찌푸렸다 

열린 대문 밖에서 그는 안의 대거리를 다 들은 눈치였다

그날 그 세람이 취한 각자의 포즈가 30년 가까이 계속되어 하나의 비극적인 운명으로 아퀴 짓게(일이나 말의 끝을 마무리하다. 마무리보다는 세고 단판보다는 약함)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예)기필코 내 손에서 아퀴를 짓고 말겠소. 영암댁은 말을 뚝 잘라 아퀴를 지으며. 그녀는 하던 일을 아퀴 짓고 퇴근하겠다고 했다

곧 비에 잔뜩 젖은 마당에서 태질이 처졌다. 

그날의 사건은 오히려 두 사람의 관계를 보다 내밀하게 만들어주었다.

- 이 소설을 읽고 느낀 점: 비, 눈, 바람, 나무의 장치를 적절하게 소설에 집어넣자

그렇다면 통한의 파편에 맞아 몸을 팔거나 함부로 유린당할 수밖에 없었던 운명적 시간을 겪어왔다는 해석이 가능해졌다. 

격렬한 고통의 어조로 덧붙였다

아내를 가두고 장모를 납치하는 저들의 조직화된 포획성이라면 딸 하나쯤은 언제나 식은 죽 먹기로 제갈을 물리거나 수갑을 채울 수 있는 것이다.

권력과 황금을 손에 쥐고 있는 유기체적 거물이었다

유랑의 삶을 여전히 끝내지 못하고 있는 나 같은 것쯤 생체실험의 흰쥐처럼 잡아 가둘게 틀림없었다. 

새벽 비에 속절없이 낙화하고 마는 목련꽃잎의 정서로 그것과 감히 맞서려 했던 영우 오빠는 한낱 미치광이에 불과했다. 

감정이 서린 목소리로 나는 말했다. 

물리적인 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힘은 본질에서 나와 

어머니 눈에 당장 눈물이 차 올랐다

밤 깊어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어귀의 언덕길을 오를 때면 아카시아 나무들이 부시시부시시 마른 소리를 내곤 했다. 가슴에 오래오래 그 소리가 공명했다.  

노상규는 은인자중(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몸가짐을 신중히 함)했다

평생 잔인한 애정으로 맺어져 있던 어머니

그녀는 딴청을 부렸다

왼쪽으로는 계속 어둠에 잡아먹힌 천 길 낭떠러지가 따라왔다. 

오랫동안 내 직관의 중심에서 

나를 불안하게 해던 예감의 비늘이 무의식의 갑옷을 뚫고 지상으로 올라오는 것을 그녀는 선연히 느꼈다

그토록 끔찍한 파국을 배치한 신을 그는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을 뿐 그녀는 그녀 자신이 포착한 그 어떤 징후들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했다. 

임신이라는 객관적이고 추상적인 사실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생명을 만난 것이다.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았다. 

머리털까지 다 빠져 목불인견이었다. 

내장이 쏟아져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넌덜머리 나는 여름이었다

그 도도하기 짝이 없는 비는 용케 9월을 건너뛰더니 이젠 10월도 무색하게 또 퍼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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