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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돌 Jun 21. 2023

최진영 장편소설 '구의 증명' 그 자극적 애절한 사랑

구와 담의 이야기


1. 들어가면서 


요즘 최진영 작가가 쓴 '구의 증명' 스테디셀러를 기록하고 있다. 최진영 작가는 1981년에 태어나서 덕성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고3 때부터 장래희망이 국문학도와 작가였다고 한다. 


2006년 실천문학에 단편소설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2010년 한겨레문학상과 2023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소녀의 이름은' 다수가 있다.  


작가는 매일 낮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조건 모니터 앞에서 글을 쓴다고 한다.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한 방법으로는 직접 써보고 하나의 작품을 완결 지어보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이 지론이다. 



2. 줄거리


구는 사채업자한테 쫓기다 길바닥에서 죽는다. 구의 시체를 발견한 담은 절규하며 그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그의 손톱과 머리털을 핥으며 둘의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나는 너를 먹을 거야. 죽은 너와 끝까지 살아남아 내가 죽어야 너도 죽게 만들 거야.'


구와 담은 어린 시절부터 이웃이었다. 구의 집은 이모와 담이 함께 사는 곳에서 걸어서 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구와 담은 돈이 없어서 군것질조차 할 수 없었다. 기껏해야 담이 사는 이모집 찬장에서 흰 설탕을 꺼내 싱크대에 기대앉아 검지에 침을 묻혀가면서 콕콕 찍어 먹는 일이었다. 


둘은 비슷한 속도로 자랐고 둘은 늘 붙어 다녔다. 아이들은 그런 그들을 놀렸다. 친구로 대해주지도 않았다. 어느 날 놀리던 남자애와 구 사이에 싸움이 붙었다. 둘은 선생님한테 불려갔고 구의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도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담이는 중학교에 진학 후에는 구를 도통 볼 수 없었다. 담이는 보고 싶다. 보고 싶다. 하며 늘 구를 생각했다. 구가 담이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그녀의 옷 안에 초코파이를 두어 개를 넣어놓은 듯 가슴이 나왔고 목선은 가늘어졌다. 구는 생리를 할까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 막다른 골목에서 둘은 입맞춤했다. 둘의 첫 키스를 떠올리며 스물몇 살의 어느 밤에 사랑을 했다. 담은 간신히 바지만 내린 채 다리를 벌렸다. 단단해진 구의 성기가 미끈한 물고기처럼 담의 안으로 들어왔다. 


구의 부모님은 막대한 채무를 남기고 사라졌다. 열일곱 살이 되자마자 구는 사채를 갚기 위해 온갖 아르바이트를 했다. 담이는 구를 기다렸다.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상대를 끝없이 기다린다는 뜻일까.


구와 담이를 잘 따르던 노마가 자전거를 타다가 트럭에 치여 죽었다. 자전거 타는 방법을 구가 알려줬다. 둘은 충격에 빠졌다. 왜 노마인지, 어째서 죽어야 했는지, 신만이 대답해 줄 수 있는 그런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노마를 잃은 충격으로 인하여 구와 담은 서로를 피했다. 


이웃에 사는 진주 누나는 구를 '어린놈'이라고 불렀다. 진주누나는 결혼을 하고 이혼을 했다. 누나의 방은 작지만 따뜻했다. 구는 부모님 방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봤다. 집에 들어가 싫었다. 그날 그 방에서 소주를 마시고 누나와 섹스를 했다. 단조로운 사랑이었다. 누나는 긴 겨울이 지나면 각자의 길을 가자고 말했다. 


담은 구와 그 여자가 파라솔만큼 커다란 우산을 같이 쓰고 가는 것을 보았다. 같은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층 방에 불이 켜졌다. 담은 마음속으로 구를 불렀다. 구야 너는 왜 거기 있어. 담이는 생각했다. 이 비가 그치면 다시 구를 만나러 갈 수 있을까.


담이와 같이 살던 이모가 죽었다. 이모는 그의 아버지처럼 느닷없이 죽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이모는 살아생전 말의 시작과 끝마다 담한테 사랑한다고 말했었다. 호흡이 잦아들기 전에 이모는 담에게 잘 지내라고 말했다. 담은 잘 가라고 말하지 못했다. 할 수만 있다면 담이는 평생 이모의 몸과 같이 살고 싶었다. 


구는 입대를 했다. 도피처였다. 담에게 편지를 써볼까 고민도 했지만 그러지를 못했다. 휴가를 나가면 담을  꼭 만나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막상 그날이 다가오자 마음이 복잡해졌다. 휴가 마지막날 먼발치에서 담을 보았다. 


구는 전역 후 소고기를 샀다. 골목 끝에서부터 발소리가 들렸다. 느리고 단단한 소리였다. 담벼락에서 담이를 만났다. 담아, 라고 부르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왔어? 한참을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다가 담이 먼저 말했다. 소고기를 구워 먹고 매실주를 마셨다. 같이 살자. 담이 먼저 말했다. 


부모님이 사채를 남기고 사라지고 구가 성인이 되자 부모님의 빚이 모두 넘어왔다. 사채는 눈덩이처럼 불어 있었다. 놈들은 모르는 게 없었다. 놈들에게 있어서 구는 만족시킬 만큼 젊었고 젊다는 것은, 구에서 돈을 뽑아낼 수 있는 시간이 그만 기나길게 남았다는 뜻이다.


돈은 갖다 바치는 것이 아니라 상납이었다. 장부에 적힌 숫자는 줄어들지 않고 늘어나기만 했다. 그들의 계산법대로 하면 평생 돈을 벌어 그들에게 줘야 했다. '헤어지자' 구가 말했다. '우리 헤어질 수가 없어' 담이 말했다. 


구는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이삿짐도 나르고 공사장 일도 했다. 대리기사도 하고 주차요원도 했다. 세상은 법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법에 기대어 살면서도 거듭 사기를 당했던 부모님은 결국 법이 통하지 않는 영역에서 돈을 빌렸다.  


사채업자는 구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찾아가 폭력과 협박으로 돈을 뜯어오라고 했다. 구가 그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자 나이트에 집어넣었고 호스트바 일을 시켰다. 구는 2차에 불려 갔고 모텔에도 나갔다. 


도망가자. 담이 말했다. 그만둬. 구가 대답했다.  하지만 결국 둘은 도망쳐서 구로, 안양, 인천, 부산, 경산, 이곳저곳을 떠올라 다녔다. 놈들은 FBI처럼 찾아냈다. 둘은 충청도와 강원도 경상도를 모두 접하고 있는 마을로 들어갔다. 구는 모텔에 취직했다. 하지만 모텔에서 일하지 말았어야 했다. 


내가 죽으면 어떡할래' 구가 말했다. 담은 그 질문이 불행하고 잔인해서 울고 싶었다. 구는 말했다. 화장해도 돈이 드니까 그 돈은 내가 꼭 만들어 둘게. 근데 내가 죽으면 꼭 아무도 모르게 묻거나 태워야 해. 안 그러면 놈들이 내 시체를 팔아먹을 테니까. 


구는 결국 사채업자한테 길바닥에서 죽었다.  담은 애무하듯 입술과 혀로 구의 얼굴을 핥다가 조금씩 뜯어먹으면서 울었다. 담은 생각 했다. 언젠가 구의 영혼이 죽는다면 그때가 천 년 후라면 좋겠다. 천년동안 살아남아 그 시간만큼 구를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담은 읊조렸다. 


나는 너를 먹을 거야. 너를 먹고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을 거야. 우리를 사람취급 안 하던 괴물 같은 놈들이 모조리 늙어 죽고 병들어 죽고 버림받아 죽고 그 주검이 산산이 흩어져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도 나는 살아 있을 거야.  



3. 감상평


이 소설은 엄청난 흡입력을 바탕으로 지독하고도 절절함이 묻어나는 사랑이야기를 구와 담의 캐릭터를 통해 적나라하고도 잔인하게 파헤치고 있다. 정작 충격적이고 먹먹한 이야기다. 읽을수록 헤어 나올 수 없는 이야기에 빠져들지만 그만큼 우울해지고 적막해진다.   


초반부 죽은 사람과 행복했던 시절을 추억하기 위해 그 사람을 먹는다는 표현은 너무나 식인적이고 기괴해서 읽어내기 힘들었다. 속이 울렁이기까지 했다. 작가는 수많은 사랑의 형태를 증명하기 위해 굳이 이 야만적인 이야기를 소설에 도입해야 했을까


구와 담이는 떨어져 있을 때는 회색빛 삶이었고 같이 있을 때는 무채색 삶이었다. 세상과 단절된 철저히 고립된 삶이었다. 만약 주인공이 보다 좋은 환경이었다면 캐릭터의 채도도 영원히 바래지 않는 그런 사랑의 향기를 가졌을까. 


소설을 읽어 내려갈수록 괴로움에 명치끝이 아려왔고 책을 덮고 싶었다. 한편으로 그것은 사랑이 아니고 정서적 결핍으로 말미암은 집착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 잔인성이 난무하는 동시대가 어쩌면 이런 작품을 만들어 냈다는 생각은 더이상 이 작품에 대해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나는 이 소설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독자에 대한 흡입력과 몰입도라고 생각한다. 읽어 내려가는 순간 손에 땀을 쥐면서 끝까지 긴장하게 만든다. 만약 독자가 이 책을 본다면 한동안 구와 담의 세계 속에 갇혀 옴싹 달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장점은 작가의 농익은 문장이다. 간결체의 짧은 문장은 김훈 작가의 기법과 비슷하지만 작가 특유의 우직한 묘사력을 가지고 있다. 문장 하나하나가 주인공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며 자극적이고도 역겨운 사랑의 이면을 수려한 문장을 통해 극복해 나가고 있다. 


이 책을 읽은 나는 며칠간 후유증이라는 열병을 앓을 것 같다. 



4. 밑줄 친 부분


발부리로 툭툭 찼다. 

그때 이모는 여름을 만들고 있었다 

슥슥 비비다가 어물쩍 손을 잡았다

사나운 사람으로 득실거리는 광장 한가운데 내팽개쳐진 벌거숭이가 된 것처럼 외롭고 무서워서 화가 났다. 

두꺼운 얼음이 쉽사리 녹지 않는 추위기 내내 지속됐다.

끈끈한 땀이 뒷목을 타고 흘렀다

골똘히 쳐다보았다. 아무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저무는 낮의 노란 햇살을 봐도

깊은 밤 골목에서 자박자박 울리는 발소리를 들어도 

돋아난 꽃이 피고 지고 밟히는 것을 보았다 

꽃향기를 지우는 장마가 시작되던 날, 

짓무르도록 만져봤던 손이고 얼굴인데, 예전처럼 스스럼없이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목선은 가늘고 길어졌다.

만나지 못한 시간보다 변해버린 몸 때문에 묘한 거리가 느껴졌고, 이상하게 주눅이 들었다. 

귓바퀴 뒤에서 흘러내린 땀이 쇄골까지 천천히 미끄러지기도 했다.  

담의 모든 말과 행동이, 바람 부는 거센 절벽 위에 나를 세워놓았다.

마음속 욕망과 금기의 주머니는 공평하게 커져갔다.

몸만 크고 내면은 짜부라진 것 같았다. 

괜히 이모에게 심통이 났다. 

운다, 담이 울면서 나를 먹는다. 저것이 눈물인지 핏물인지 진물인지 모르겠다.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상대를 끝없이 기다린다는 뜻일까. 

몸도 마음도 뒤틀리는 기분이라고. 

노마는 자기 가방 속을 뒤지며 딴청을 피웠다.

네가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누군가 네 마음을 모를 리 없다고 말해줄까 하다가 

시시껄렁한 농담이었다

그런 우리를 돌아보며 자전거 페달에 왼발을 얹고 오른발을 안장 너머로 올리며 주욱 미끄러져 나갔다. 

함께 하던 어느 날 구와 나 사이에 끈기 있고 질펀한 감정 한 방울이 똑 떨어졌다. 우리의 모난 부분을 메워주는 퍼즐처럼, 뼈와 뼈 사이의 연골처럼, 그것은 아주 서서히 자라며 구와 나의 모나고 모자란 부분에 제 몸을 맞춰가다 어느 날 딱 맞아떨어지게 된 것이다.

미래에 대한 내 근육은 한없이 느슨하고 무기력했다.

내가 짐짝처럼 느껴졌다. 

마음을 간신히 붙잡고 있던 거중기가 고장 난 것 같았다.

아름다움은 우리가 함께일 때 가능했다. 

우리를 기억해 줄 사람은 없어. 우리가 우리를 기억해야 해. 스물세 살 봄의 언저리였을 것이다. 

누나 방에서 봄의 빗장을 걸어 잠그는 빗소리를 들었다.

평소에 서로 잘 들어주던 말도 취중에는 엇나갔다. 

겨울바람에 휘말린 잔가지처럼 온몸이 떨려서 우산을 제대로 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외딴길을 헤매다 불현듯 산꼭대기에 선 것처럼 모든 정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구의 표정도 집고양이처럼 순해져 있었다.

내 대꾸에 이모는 화통하게 웃었었다. 

물건마다 더께 먼지가 쌓여 있어서 기침만 해도 온 집안이 자욱해지는 느낌이었다. 

먼발치에서 너를 봤다. 아주 잠깐이었다. 

누나와 헤어질 때도, 정말 입소할 때도 들지 않던 비통함이었다. 

밤중에 골목 끝에서부터 발소리가 들렸다. 느리고 단단한 소리였다. 담벼락에 기대어 앉아 있다가 주춤주춤 일어섰다. 

그걸 다시 집어삼키려니 혀뿌리와 목구멍이 얼얼하게 아팠다. 

돈이 나올 구멍은 나뿐임을 그 자들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만족시킬 만큼 젊었고, 젊다는 것은 내게서 돈을 뽑아낼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기나길게 남았다는 뜻이었다.     

법에 기대어 살면서도 거듭 사기를 당했던 부모님은 결국 법이 통하지 않는 영역에서 돈을 빌렸다. 

구의 목소리는 냉랭했지만 구의 눈동자는 버려진 아이처럼 겁에 질려 있었다. 

밥 먹고 잘잘 때만큼은 불안과 경계의 나사를 조금은 풀어놓아도 되는 것, 그게 참 좋았다.

담이 길모퉁이에서 서서 앞니로 손거스러미를 야금야금 물어뜯고 있었다. 

하늘땅 구분 없이 무질서하게 널린 사람과 건물과 자동차들, 

그러면 나는 깐죽거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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