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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스니퍼 Jan 24. 2024

아이덴티티커피랩 : IDENTITY COFFEE LAB

커피와 대화를 음미하는 시간이 필요할 때.


Koffee Sniffer

18세기 프러시아에서는 국가 재정 이유로 귀족층에게만 로스팅할 수  있는 권한을 허가했습니다. 일반 서민층은 밀거래를 통해 커피를 볶아 마셨고, 커피 향을 찾아내 단속하는 직업이 바로 '커피 스니퍼'였습니다. 그 뜻을 재해석해, 좋은 커피를 찾아 소개해 주는 커피스니퍼의 역할이란 의미로 쓰이게 되었고, 우리는 좋은 커피를 찾아낸 사람들과 향을 소개합니다.


ㅣ첫 매장이 예뻐서 이슈가 되기도 하셨죠. 셀프로 하셨다는 게 놀라워요.

선영) 위치나 건물에 반한 것도 있었지만, 햇살이 잘 들어왔어요. 폭이 좁은 2층 구조도 특이했고요. 어떻게 하면 예쁘게 나올 수 있는지 그림이 그려져 닿는 대로 한 것 같아요.(웃음) 머릿속에 이미지가 구체화 되었기 때문에 셀프로 했어도 완성도가 있었죠.

원균) 제가 인테리어 하는 것도 좋아하고, 전공이 기계이다 보니 어렵진 않았어요.

좌 염선영 대표님 / 우 윤원균 대표님

ㅣ그땐 매장 지하에서 생활도 하시고, 첫 창업에 여러 힘든 일도 있으셨을 텐데 잘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하셨죠. 어떤 이유였을까요?

원균) 지하에 살았지만, 우울한 시절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설렜던 기억밖에 없고요.(웃음) 커피를 좋아하니까 이 일이 행복하고, 계속하다 보면 성장할 테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금씩 알아봐 주시면 내가 생각했던 자리에 가 있지 않을까 상상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자신감이라기보다 제 자신이 일을 대하는 태도를 바라봤을 때 안될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ㅣ'바리스타가 좋아하는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 말씀하신 만큼 현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많이 찾아오시죠. 그분들께 서비스하는 만큼, 바리스타라는 직업은 어떤 역량이 필요할까요. 

원균) 전달자 역할을 해준다고 생각하는데, 단지 커피를 전달하는 게 아니고, 설명해 드린다는 게 맞는 표현 같아요. 내가 건네는 커피를 설명하고, 소비자와 작은 소통을 할 수 있어야 스페셜티 커피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커피가 게이샤고, 좋은 원두라는 점은 우리가 아는 거지 소비자가 아는 건 아니니까요. 그 부분을 망설임 없이 전달해 주는, 궁금해하지 않으면 궁금하게 만드는 게 역할이고, 궁금증을 갖게 했으면 설명까지 할 수 있는 요건이 필수적이라 생각해요.

ㅣ그분들 중에 창업을 꿈꾸시는 분들도 대다수일 텐데요. 1인 로스터리를 준비하시고, 납품 생각도 있으실테지만 어려운 일이잖아요. '무조건 해보세요.' 라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그분들께 조언을 해주신다면 어떤 부분이 있을까요?

원균) 어느 회사에서 납품 받겠다 결정한다는 건 대표의 커피에 대한 철학과 가고 있는 방향, 브랜드의 멋을 보고 소비하게 돼요. 커피의 맛은 당연한 거고요. 맛있는 와중에 그 브랜드에 끌려야만 선택받을 수 있어요. 정말 납품을 생각하신다면 '커피를 판매한다'가 아니라 내 커피를 갖고 싶게 만드는 요소를 여러 가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원두의 끝이 아니라 형태의 이미지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 요소가 디자인이 될 수도 있고요. 대회에 무조건 나가야 된다는 의견은 아니지만, 브랜딩을 할 수 있는 하나의 방향이 될 수는 있잖아요. 이 모든 전체적인 이미지를 조각조각 모아서 형상화 시켜보시길 권해드려요.


ㅣ말씀하신 것처럼 디자인이 빠질 수 없는 것 같아요. 염대표님께서 로스팅 업무를 제외하시고, 모든 업무를 맡아 진행하고 계시죠.  굿즈, 패키지, 사진 촬영 등 직접 관여하고 계신 건가요?

선영) 그래서 부러웠어요.(웃음) 커피스니퍼는 업무가 분담되어 있으시고, 사진도 너무 예뻐요. 대부분 직접하고 있지만, 패키지같이 작업이 많이 들어가는 부분은 외부 디자이너와 함께 진행하고 있어요. 디자이너를 내부적으로 고용하기에는 비용적인 문제가 크기도 하고요. 누구와 하든 공유가 되지 않으면 아이덴티티가 담기지 않고, 남이 만들어 준 색을 입게 되더라고요. 그런 이유로 어떻게 만들고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 모두 구성해 놓은 뒤에 의뢰를 하고, 계속 소통하며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인스타도 톤앤매너가 맞아야 하니까 제가 운영 중이고, 바리스타분을 에디터로 병행해 보기도 했는데 아직은 여력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 콘텐츠 작업을 할 수 있는 영역을 확보해 두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고민 중인데 어려워요. 혼자 하기 벅차기도 하고요.(웃음)

ㅣ공간적으로 한계가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외부적으로 뭔가 있어야만 콘텐츠가 발행되고, 표현의 수단이 많아지는데요. 지금 아이덴티티는 협업도 지속적으로 하고 계시는데 앞으로도 활성화할 예정이신가요.

선영) 그럼요. 어제부터 프리랜서 바리스타 겸 작가로 활동하시는 분과 콜라보를 시작했어요. (8월 11일 기준) 짧은 에세이 글을 보면서 같이 커피도 마시고, 글도 읽는 시간인데요.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조금 더 특별해지거나, 행복해지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이런 식으로 커피를 드실 때 행복해질 수 있는, 특별한 포인트가 있다면 다양한 협업을 해보고 싶어요.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ㅣ콘텐츠적으로도 범위를 넓히시지만, 원두를 사입하는 부분에서도 아낌없이 투자하시죠. 그에 비해 가격을 높게 측정해서 판매하시는 것도 아니시고요. 마이너스가 될 수 있는 요인인데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원두에 투자할 수 있는 건 어떤 매력 때문일까요. 

원균) 여러 가지 향들을 온전히 커피 안에 담아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 같아요. 내가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고, 이 안에 어떤 의도를 담아냈는지 그것들을 공감받았을 때 재미있어요.(웃음) 한쪽으로 보자면 정말 비싸게 사는 생두이지만, 원두를 비싸게 팔지 않더라도 비싸거든요. 100g에 3-4만원 정도 되는 원두를 고민 없이 구매해 주시는 분들이 생겨나는 자체가 커피의 본질적인 가치를 알아주시고, 즐겨주시는 게 뿌듯해요. 손해이지만,(웃음) 한 해의 가장 맛있는 커피를 구매하고, 소개하고 싶은 건 로스터로서 당연한 욕심이고요. 이 욕심은 제가 풀어야 할 숙제인 것 같아요.


ㅣ지금까지 해오신 과정을 보면 '아이덴티티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이미지가 강해지니까 계속 찾아오시는 게 아닐까 싶어요. 금전적인 부분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사람을 이끌 수 있는 쪽으로 브랜딩이 되었다고도 생각하고요. 그래서일까요. 인퓨주드 커피 쪽으로도 공부하고 계시죠.

원균) 맞아요.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으니까 또 좋은 커피를 소개해 드리고 싶고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음, 제가 생각하는 커피 행위 자체에는 원재료가 갖고 있는 신비스러움이 있어요. 좋은 품종을 쓰고, 어떤 프로세싱 방법으로 고유의 퓨어한 커피로 담아낼 수 있을까. 경이롭게 생각하고,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고, 선보이는 자체가 제 행복의 싸이클이에요. 이 부분에서 감내해야 할 부분도 크고요. 원물의 과정을 전달하는 게 스페셜티인데, 원물에 향을 입히는 건 불법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이것 또한 스페셜티인가 싶은 거죠. 

선영) 투명하게 할 수 있는 구조가 될 수 있을 텐데, 투명하지 못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저희가 다루지 않는 이유는 떼루아 본연의 맛을 느끼기 어려울 수도 있고, 향이 입혀지면 우리가 추구하는 느낌이 아니라서 다루지 않는 것뿐이고요. 단지 '가향은 싫어'가 아니라 '가향도 맛있다' 이런 가향도 있구나'하고 소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죠.


ㅣ맞아요. 구분만 된다면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선택의 다양성으로, 소비 범위가 넓어지겠죠. 거부가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구분할 수 있는 경계에서 말이죠.

원균) 그럼요. 언젠가는 이런 문화가 자리 잡게 된다면, 매장에서 좋은 가향 커피를 소개하는 날이 오겠죠. 그때가 얼른 왔으면 좋겠어요. 

선영) 저희가 농장의 투명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만큼 저희도 로스팅할 때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하고 있어요. 바리스타분이 최종 전달자분들이시니까 어떻게 추출했는지, 어떤 의도인지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투명성이 일반적일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는 커피들을 하고 싶으니까, 우리가 더 구체적으로 전달해 드려야 하는 거죠.


ㅣ'아이덴티티커피랩' 추구하는 맛과 향이 궁금해요.

원균) 커피는 어느 지역 품종에서, 고도에서, 프로세싱에서 결과물이 나오잖아요. 이 과정 중에 제가 매력적으로 느끼는 포인트가 있다면 그 포인트에 맞춰 표현하는 편이에요. 특징적으로 산미가 될 수도 있고, 단맛이 될 수도 있죠. 제가 생각한 것들이 표현될 수 있도록 생산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ㅣ커피를 다루는 일도 굉장히 어렵지만, 사람을 어우르게 하는 일도 쉽지 않죠. 매장을 운영하면서 갖고 계신 가치관이나 철학이 있으실까요?

선영) 매장 자체가 브랜드를 소개하는 곳이기도 하고, 스페셜티 커피를 전달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보니 전달하는 태도, 그 태도에 있어서 모든 게 포함이 되는 것 같아요. 손님이 들어올 때부터 나갈 때까지 모든 과정의 경험이 좋았다면 그 부분이 매장을 운영하는 만족도고 가치관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이렇게 잘 내리는 기술이 있어'하는 마음에 머물지 않고, 고객의 공감과 마음을 끌어낼 수 있는지 고민하는 분들이 여기서 일하시는 분들이고, 그 고민을 같이 공유하고 나누는 게 저의 철학인 것 같아요.

ㅣ브랜드 구축이 잘 되어 있는 이유는 처음부터 두 분이 우리는 이런 아이덴티티를 만들어야겠다는 신념이 확고하셨나요? 사람들이 아이텐티티 공간을 찾는 이유가 있다면. 

원균) 붙어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이야기를 많이 해요. 공유하고 생각을 말하고 묻다 보니 비슷해 보일 것 같아요. 비슷한 것도 맞고요. 대표님을 많이 괴롭히셔야 합니다.(웃음)

선영) 어떤 커피를 선보이고 싶어 하고, 커피에 대해 어떤 가치관이 있는지를 제가 언어나 색, 톤들로 표현하는 것 같아요. 그 결이 맞고요. 정말 무수히 이야기를 해야만 해요.(웃음) 발걸음해 주시는 이유는 오히려 많이 덜어내서가 아닐까 싶어요. 확장될수록 부피를 키우는 게 아니라 잘하는 것에 투자하고 집중했다면, 잘하지 못하는 것들에 있어서는 과감히 내려놓기도 하고요. 필요 없는 것들을 덜어내다 보니 더 잘 보여진 것 같아요.

ㅣ아이덴티티, 어떻게 즐기면 배가 될까요?

선영) 다른 것보다 바리스타분들과 소통하시면 즐겁게 드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궁금하신 점이나 스몰토킹을 해보신다면 더 많은 걸 느껴보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다가오시면 친절하게 응대해 드릴 테니 걱정마세요.(웃음) 사실 공간은 사람이 만드는 거잖아요. 계시는 분들이 이끌어가는 공간이다 보니 사람과 교류를 해보시는 게 가장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ㅣ앞으로 아이덴티티는 원두 납품으로 방향을 잡고 계시는 걸까요?

원균)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저희를 보여드릴 수 있는 방향이 있다면 또 다르겠지만, 일단은 원두 사업이 중점이 될 것 같아요. 로스터기도 하나 더 고민하고 있고요. 매장은 고민하지 않아요. 하게 된다면 해외라던가, 다른 형태로 해보고 싶은 마음이네요.

라바즈 인스타그램

ㅣ무엇이든 추천해주세요! 

선영) 커피 센서리를 늘리거나 커피와 관련된 경험을 늘릴 때 다른 음식들을 다양하게 먹어보는 편인데요. 제철 과일이나 음식들을 다루는 공간에서 재료 하나하나 맛을 느껴보면 경험이 확장되는 것 같더라고요. 커피로도 자연스럽게 연결되고요. 레이어가 쌓여 있는  타르트 계열의 디저트를 좋아하고, 찾아다니면서 먹는데 스페셜티 커피랑 비슷하더라고요. 디저트 하나를 만드는데 '복숭아 쇼트 케이크'다 하면 그 복숭아를 어떤 농장에서부터 구입했고, 손질하는 방법에 대한 스토리를 다루는 브랜드도 있어요. 그런 것들을 접하고 먹어보고 경험하면서 영감도 받고요. 근처에는 '라바즈'라는 곳이 있어요. 디저트를 먹으면 원재료의 맛을 느끼면서 컵노트도 떠오르니 꼭 한번 방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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