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해 본 것을 해보는 즐거움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뭐냐고 물었을 때 들을 수 있는 대답은 해 보지 안았던 일들에 대한 후회라고 한다.
결과가 좋지 않았더라도 해 봤던 일에 대한 후회는 없지만 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미련은 가슴 한 구석에 남아서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도 미련이 남는 것인가 보다.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갈까 말까 할때는 가라
살까 말까 할때는 사지마라
말할까 말까 할때는 말하지 마라
줄까 말까 할때는 줘라
먹을까 말까 할때는 먹지마라
망설이는 순간에 기준으로 삼을 만한 말들이다. 요즘은 갈까 말까 할 때는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40중반을 넘어서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방향이나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이전의 움추리고 망설였던 순간들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워서, 별로 필요 없을 것 같아서, 비용이 많이 들테니까.. 등등의 여러가지 이유로 놔버리거나 포기했던 일들을 남은 날들 동안에는 하나씩 하나씩 해보고 살자고 다짐해 본다.
최근에 도전해 본 일은
1. 코인 노래방에 가보기
: 노래방 책자를 보던 시절에 간 이후로 노래방 나들이가 처음이다. 깨끗하고 청결한 시설에 군더더기 없이 노래를 부르는 본연의 목적에만 충실할 수 있는 곳이라 더욱 마음에 들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라 함께 간 남편과 두리번 거리며 어리버리했으나 우리는 이내 적응했고, 노래의 퀄리티와는 상관없이 생목으로 즐겁게 노래를 부르다 나왔으니 이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스트레스가 쌓이는 날이면 500원짜리 동전을 가득 들고 혼자서 찾아도 참 재미있을 곳이다 라는 생각이 들어 혼자서 노래방 가기는 다음 도전 목록에 남겨 두었다.
2. 뜨개질에 입문
: tv를 보던 중 잠깐 스치 듯 보게 된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미국인지 유럽의 어느 도시였던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두 부부가 산 속에 들어와 신혼 시절부터 집을 직접 짓고, 거기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고, 지금은 농작물을 재배하여 팔고 있다는, 부부가 모두 자연인 인것같은 그런 내용의 다큐멘터리 였다.
내 눈을 사로 잡은 건 뜨개질을 하는 여자의 모습이었다. 가끔 모자를 떠서 자기가 쓰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도 해 준다는데 뜨개질을 하는 모습이 그렇게 평화로워 보일 수가 없었다.
나도 뜨개질만 시작하면 당장에라도 그 분처럼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를, 손에는 우아한 자태를 장착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섬광처럼 들었다. 망설이지 않고 문화센터 뜨개질 강좌에 등록하여 이제 첫 번째 수업을 다녀왔을 뿐이다.
하지만 뜨개질의 세계는 전혀 평화롭지 않았다. 코를 잡는 것부터 각종 다양한 뜨기 기법까지..바늘을 어디에 꽃아야 되는지 당최 모르겠고, 과연 내가 이 실로 형태를 갖춘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지 의심부터 앞섰다.
끝내 수업 시간안에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숙제로 들고 왔는데 집에 와서 혼자 해보다 보니 엉망이 되어 버렸다. 다음 수업 시간에 들고 가서 해결하면 될 일이겠지만 과연 나는 뜨개의 세계에 안착할 수 있을지...
잠깐 이지만 실을 풀었다 다시 떴다 하면서 알게 되었다. 뜨개는 우리가 사는 인생이랑 참 많이 닮아 있구나..
한 땀 한 땀 성실하게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 떠야 원하던 전체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
뜨는 과정이 즐거우면 뜨개 전체가 즐거울 거라는 것
실이 꼬여서 엉망 진창이 되기도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다시 풀어서 뜨면 또 진행 된다는 것.
누군가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런 거 배워서 뭐하게??..."
그 때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 나왔던 극 중 김희성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내 원체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그런 것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멎는 곳에서 죽는 것이 나의 꿈이라면 꿈이오."
드라마 속의 김희성처럼 비장한 심경은 아니겠으나 나도 무용한 것들이 좋다.
먹고 사는 데 딱히 도움이 되진 않더라도 사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은 무용하지 않다.
내가 걸어 가는 발자국이 어디를 향할 지 모를 일이고, 조그맣게 찍어가는 점들이 모여 어떤 별이 될 지 모르기에 소소한 도전들을 즐기며 오늘도 나는 그렇게 나를 돌보아 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