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리 May 26. 2024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은

일단은 힘을 뺄 것

수영을 처음 배울 때 가장 많이 듣던 말은 " 회원님 힘 빼세요..."

마사지를 받기 위해 누웠을 때 많이 듣던 말 "힘 빼요..힘 빼.."

어릴 적 피아노를 배울 때 선생님이 가장 많이 하시던 말은 " 손가락에서 힘 빼고..가볍게 쳐봐.."


말이 쉽지 힘을 빼는 것은 너무나 어려웠다. 처음 가 본 수영장에서는 힘을 빼면 물에 빠질 것 같아서 잔뜩 힘을 준 채 허우적 거렸고, 모처럼의 힐링 좀 해볼까 싶어 가 본 마사지 샵에서는 누군가의 손길이 닿는 것이 조금 어색했던지 나도 모르게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피아노를 배울 때도 틀리지 않기 위해 힘을 주어 건반 하나하나를 꼭꼭 눌렀던 기억이 난다 


삶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속도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못한다는 지적을 받지 않기 위해 몸과 마음에 힘을 잔뜩 준 채 성실한 어른이로 그렇게 살아내느라 일상에서도, 재미를 찾는 취미생활에서도 힘을 빼지 못했다.

힘을 주어 살아내었다는 의미가 다른 그 어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는 의미와는 물론 무관하다. 

힘을 주어 살아낸 시간들은 나에게 가끔은 행복감과 성취감을 맛보게 해 준 시간들이기도 하다. 성실하게 살아낸 시간들이 기특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다만 힘을 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 이유는 힘을 빼지 않으면 일상도, 취미도 오래 지속하기가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 멋있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은 순수하게 좋아하는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사람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할 때 눈빛은 반짝이고 순수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허세와 잘난척이 아닌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숲. 그런 사람은 결코 세상의 속도와 경쟁하지 않는 자신만의 속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뿌리가 깊은 나무처럼 쉽게 흔들릴 것 같지 않은 견고함이 느껴진다. 나는 그런 사람을 본받고 싶었다.


갑자기 어릴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주 더운 여름 날 친구들과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로 슈퍼에 갔다. 아이스크림 냉장고에는 오색창연한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이 가득했고, 우리는 딱 한가지씩만 고를 수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심각한 고민이 시작되었는데 왜인지 그때 나는 친구가 어떤 아이스크림을 고르는지를 살폈던 기억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심지어 마음속으로는 깐돌이가 먹고 싶었는데 친구가 먹는 폴라포를 똑같이 따라 골랐던 것 같다. 왜 그때의 기억이 새삼 떠오르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게 어렸을 때부터 나에겐 어려운 문제였었구나 하는 생각이 이제서야 들었다.


어릴 때보다 맛있는 아이스크림의 종류는 더 많아졌고, 나는 아이스크림 하나가 아닌 여러 개를 살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 의식적으로 친구가 먹는 아이스크림보다 내가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한다. 친구따라 먹었던 아이스크림이 생각보다 맛이 없어서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문장을 본 적이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내 생각을 내어주지 않으려면 누구나 자기만의 문제에 자기만의 답을 쓸 수 있어야 한다.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때면 자주 할머니가 되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나는 온화한 표정을 가진 유쾌하고 즐거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여전히 무언가를 배우고, 즐거워하는 그런 할머니.

그런 할머니로 늙어가기 위해 지금부터 여러 취미의 세계를 탐험해 보고 있다. 무엇 하나 정착하지 못한 채 중간에서 그만둔 것도 많지만 취미라는 말의 의미는 순수한 재미를 위하여 하는 활동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하다가 재미없어지면 그만 둘 수도 잠시 쉴수도 있는 것이다라는 것을 알고 나서 힘을 뺄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취미에 대해 말할 때 즐거워 하는 것이 아니라 잘 하는 것이 취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동안은 내겐 마땅한 취미가 없었다. 하지만 순수한 즐거움만을 위하여 하는 활동을 취미라고 다시 정의한다면 나는 취미 부자가 된다.

배우다 만 기타, 하다 만 퀼트, 너무도 실력이 늘지 않아 놓아 버린 영어 회화까지..못해서 그렇지 모두 다 재미있었기에 다 나의 취미의 세계에 다시 들여놓기로 했다.

나는 그렇게 나만의 숲을 찾기 위해 재미있는 것들을 찾아 어슬렁거리며 나를 돌보는 중이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은 정확하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은 아몬드봉봉이었다.











이전 05화 조급해지지 않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