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삶의 원동력이 되지 않기를..
내 삶의 속도는 지극히 평균에 가까웠다. 아니 평균보다 내 삶의 속도는 조금 빨랐다고 해야 맞겠다.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취업을 했고 취업 후 2년이 지난 26살에 이른 결혼을 했다. 결혼하자 마자 큰 아이가 생겼으니 정신없이 엄마가 되었고, 큰 아이를 생각하니 둘째는 있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둘째까지 낳으면서 서른이 되기도 전에 아주 속도감있게 삶의 진도를 나갔다고 해야 할까..정신없이 살다보니 시간은 흘러갔고, 나는 그대로인 것 같은데 주변의 것들이 많이 변했다.
유퀴즈에서 가수 장기하님이 나와서 인생은 파도와 같다고 말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이 스스로가 무엇을 계획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인생이란 파도에 휩쓸려 오다보니 지금의 자리에 도달하게 된 것이 아니겠냐는 말이었다. 그 말에 공감했다. 파도에 휩쓸려서 오다보니 지금의 자리에 와 있는 것만 같았다.
그 파도를 타고 또 어딘가에 닿게 되겠지만 앞으로의 삶은 불안이 원동력이 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불안한 마음이 큰 나는 학창시절에 불안해서 공부를 열심히 했고, 직장인이 되어서는 불안해서 열심히 직장생활을 했고, 엄마가 되어서는 아이들이 잘 못자랄까봐 늘 불안해 했던 것 같다.
나 혼자 불안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상관없지만 엄마의 불안한 마음은 아이들에게 그대로 가 닿을 수 있기에 그게 가장 마음에 걸렸다.
나의 불안은 아마도 공기처럼 퍼져 있었으리라. 불안을 바탕에 깔고 전달하는 메세지는 따뜻한 말의 형태를 띄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따뜻한 느낌이 온전히 아이에게 가 닿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어린 시절은 이미 훌쩍 지나가버렸고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기에 앞으로의 시간은 불안보다는 여유로움의 마음으로 살고 싶다고 늘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마음 깊은 곳의 내 불안한 아이는 자꾸 튀어 나와서 나의 시선과 생각을 조종한다.
' 우리 큰 아이는 왜 대학생인데 저리 나태하게 시간을 보내는가..'
'우리 둘째는 고딩이인데 저렇게 공부해서 과연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까?'
수십 가지의 나빠질 수 있는 상황이 떠오르며 어느새 아이에게 가 닿는 시선이, 말투가, 행동이
'엄마는 너를 믿을 수가 없네..조금 더 잘할 순 없겠니..'를 온몸으로 시전하게 된다.
잘 성장했고, 자신의 일들을 큰 무리없이 해 내고 있으니 믿고 기다려줘도 좋을 것을, 지켜봐 줘도 좋을 것을 자꾸만 나는 조바심을 낸다.
' 스스로에게 따뜻하지 않아서 자꾸 아이들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내 안의 아이를 엄격하게 다루다보니 나의 아이들에게 그런 모습을 기대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 안에 아직도 불안한 시절의 어린아이가 남아 있어 그 아이가 부지불식간에 튀어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짐작이다.그래서 마음에 조바심이 차오르면 내가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노력 이상의 댓가를 바라는 건 아닌지 차분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럴 땐 조금 물러서고 조금 내려 놓아야 한다.
돌아보면 그 조급함은 항상 누군가와의 비교에서 오는 조급함이었다. 온전히 나만을 바라볼 때나 내 아이들만 바라볼 땐 조급함이 들지 않는다. 다른 누군가와의 성취나 결과를 비교하게 되었을 때 의심이 고개를 들고 조급함이 그 뒤를 따라온다.
이제 그 마음을 경계하며 살아야 한다. 그 조급함이 나의 행복한 시간을 갉아먹는 주범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기에..아이들에게는 항상 '다른 사람과의 비교는 필요없어. 비교는 어제의 너와 하는 거야. 어제보다 성장했다면 그것은 성공이야'.라고 가르치면서 정작 나는 그런 삶을 살지 못하고 세상의 속도에 맞추고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바라며 불안한 마음을 품은 채 살아가고 있었나보다.
불안과 조급함은 셋트메뉴처럼 항상 붙어 다닌다. 불안을 덜어내면 조급함이란 녀석이 자주 출몰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자주 나에게 말해주려 한다.
'불안해 하지 말고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단다.'
'파도가 높으면 몸을 숙이면 되고, 파도는 계속 올테니 올라타지 못한 파도에 아쉬워 하지 않아도 돼.'
예전에 알던 직장 동료 중 그런 사람이 있었다. 뭔가 여유가 느껴지는 사람. 딱히 특별할 건 없었지만 말 한마디에. 동작 하나에도 여유가 묻어나던 그런 사람. (컵에 물을 따르는 동작도, 문을 여는 동작도 그냥 일상의 행동인데 그 사람이 하면 뭔가 여유롭고 평화롭게 느껴졌던 그런 사람)
그 사람과 많이 친하진 않았지만 그런 이유때문이진 그 동료가 참 펀하게 느껴지고 좋았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을 닮고 싶었다.
나도 조급해지지 않기 위해 평상시보다 천천히 말하고, 조금 속도를 줄여 천천히 행동하고 ..내가 하는 일상의 일들에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천천히 하는 습관을 기르려고 노력한다.
(예들 들자면 과자 봉지를 급하게 뜯으려고 봉지 중간을 터뜨려 버리는 그런 행동은 하지 않는 것, 느긋하게 커피를 내려 보는 것, 걸음의 속도를 조금 늦춰 보는 것, 한 가지 일을 하고 있으면서 그 다음에 할 일을 생각하지 않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 등등)
천성이 사주에 불이 많은 급한 성격이지만, 몸이 정신을 지배할 수 있단 말처럼,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먼저 체력을 기르라는 미생의 대사처럼 나의 고민을 충분히 견디어 줄 몸을 만드는 것.
불안을 내려 놓고, 나를 좀더 따뜻하게 대해주기로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