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관계는 적당한 거리에서부터..
행복한 가족에 대해 갖고 있는 아련한 이미지가 있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장면..거실이든 식탁이든 가족이 모두 함께 둘러 앉아 있는 이미지가 내겐 행복한 가족의 대표적인 모습인 것만 같았다.
아이 둘을 낳고 내 가정을 꾸리고 보니 그런 이미지는 가뭄에 콩나듯..아주 어쩌다 한 번 연출할 수 있는 장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든 내가 생각하는 장면을 연출하고 싶어서 아이들에게 타박을 하고 원망을 하고 속상해 한 적도 있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느라...친구와의 약속이 있어서..시간이 앉 맞아서..이유는 매번 다양했고,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한다는 건 세상 어려운 일이었다. 왜 그렇게 함께 모여있는 것에 집착했을까 생각해보니 내가 만들어 놓은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연출하고 싶었던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가족이어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했을텐데..그 생각을 하지 못해서 내내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다.
고슴도치의 우화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추운 날씨에 고슴도치들은 얼어죽지 않기 위해 달라붙어 있어야 하는데 그들의 가시가 서로를 찌르는 것을 느껴 떨어진다. 그러나 추위를 견디지 못해 한 덩어리가 됐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다 결국 상대방의 가시를 견딜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찾는다. 서로를 따뜻하게 하고 싶지만 서로의 바늘 때문에 접근할 수 없었고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체온을 나누었다는 이야기 였다.
첫째 아이가 사춘기가 되었을 무렵 아마도 아이는 부모와의 적당한 거리가 필요했으리라. 하지만 처음 겪는 그 시기에 너무나도 달라진 아이가 익숙해 지질 않았고, 자꾸 거리를 두는 아이에게 다가가 가시로 찌르면서도 한덩어리가 되고자 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이는 시기에 맞게 자라고 있었던 것인데 관계에 대해 무지했던 나는 서로가 찌르면서도 아이와 한 덩어리로 있으려고 했던 것이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때 가시에 찔리지 않고도 따뜻함을 나눌 수 있다는 지혜를 깨우쳤어야 했다. 가시를 내세우면서도 한덩어리가 되기 위해 고통받기 보다는 적당한 간격을 두고 홀로 있을 수 있음이 건강한 관계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을 때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고 더욱 정중하게 대할 수 있게 된다.
내가 맺고 있는 수많은 관계들은 나를 성장시키기도, 행복함을 선사해 주기도 하지만 또 그에 못지 않은 스트레스나 어려움을 주기도 한다. 좋은 사람병에 걸린 사람처럼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를 힘들게 했던 시간들도 있었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출발부터가 다른 것이다. 타인의 인정을 위해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것은 부질없는 노력이다.
늘 양가 감정을 오간다.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이 중요해.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기에 너무 에너지를 쏟지 않을 거야..' 라고 생각하다가 때론 관계속에서의 왁자지껄함을 그리워 하기도 한다. 혼자서 고요히 지내는 시간들을 선호하는 냉탕과 여러 사람들과의 따뜻한 온기와 수다를 나눌 수 있는 온탕을 왔다갔다 하며 지내는 것이다. 분명하게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기에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냉탕에서 고요히 있을 줄도, 온탕에서 따뜻한 온기를 나눌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마흔의 중반에 서고 나서야 혼자 고요히 시간을 보내고 내가 쌓아올린 시간이 많을 수록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 더 쉬워지고, 부담이 없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와의 관계가 따뜻할 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따뜻해졌고, 나에 대해 스스로가 명확히 알아갈수록 관계 속에서의 내가 더 편안했다.
스스로와의 관계가 불안정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편하게 맺기 어렵다. 그래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늘 나와 친하게 잘 지내는 연습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에 대해 궁금해 하기 보다는 내가 뭘 좋아하는 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스스로를 먼저 궁금해 할 것.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따뜻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정도의 거리를 파악하고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
아이들과의 관계는 한 달에 한 번은 함께 밥 먹기로 적당한 거리를 맞추어야 했다. 그 적당한 거리안에서도 충분히 우리는 따뜻한 체온을 나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