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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May 12. 2024

수영하며 나를 돌보기

10년째 초보레인

'카모메 식당'이란 영화에서 주인공 사치에는 핀란드 헬싱키의 어느 골목 구석에 작은 일본 식당을 열고 손님을 기다린다. 작은 동양 여자의 식당을 기웃거리기만 할 뿐 아무도 그 식당에 들어오질 않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되는데..


사치에는 손님이 오건 오지 않건 슬픈 표정을 한번도 보이지 않았다. 늘 평화로운 표정이었는데 그걸 느낄 수있는 장면이 수영하는 장면이었다. 고개를 똑바로 내놓고 하는 평영..(고개를 물 속에 집어 넣지 않고 수영이 가능하다니..) 그 모습이 그렇게 평화로워 보였다.


왜냐하면..나는 그놈의 평영 때문에 수영을 포기했었으니까..

10여년 전 수영을 처음 배울 때 자유형은 어떻게든 따라갔으나 평영에서 턱 막히고 말았다.

강사님이 알려 준 발모양을 아무리 잡아보아도 이 몸뚱아리는 당최 앞으로 나아가질 않았고..

이불을 펴 놓고 연습, 유트브 보며 상상 연습, 자유수영을 가서 연습..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나아지질 않았다. 초급 레인에서 바라다 보는 상급자 레인은  가 닿지 못할 머나먼 섬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는 초보 수영 시절이었다.

돌고래인지 사람인지 모를 정도로 물밖으로 나오지 않는 폐활량, 단 몇 번드릴로 50m레인을 쉽게 돌파하는 추진력, 그리고 가장 부러웠던 건 뺑뺑이..당최 쉬질 않고 레인을 계속 뺑뺑도는 그 능력이 너무 부러웠다.

한 번을 겨우 헉헉대고 가서 숨을 몰아쉬느라 바쁜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

헉헉대지 않고 느리고 우아하게 하는 수영을 하는 게 내 목표였는데...


강습은 나가지 않았지만 수영에 대한 열망을 포기할 수 없어 자유수영으로 찔끔찔끔 연습을 하던 그 어느 날..

운명의 아저씨를 만나게 되었다. 뭔가 빠르지 않은 속도로 수영을 하시는 데 그 뒤에서 속도에 맞춰 따라가다 보니 나도 어느새 몇 바퀴를 아주 쉽게 돌고 있는 게 아니던가!!

조금씩, 조금씩 포기하지 않고 했던 시간들 덕분이었는지.. 그렇게 부러워하던 뺑뺑이를 돌고 있었다.

운동은 정말 계단식의 성장이 맞는건가..포기하지 않고 조금씩의 연습으로 성장한 몸을 기특해하며 요즘은 자유 수영을 즐기고 있다.(여전히 평영의 속도는 아주 조금 나아졌을 뿐 큰 진전은 없는 상태이긴 하지만..)


수영장은 뭔가 잊어버리고 싶거나 마음에 꿉꿉함이 남을 때 찾게 되곤 한다. 마치 마음속의 찌꺼기나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들이 물에 씻겨 나가는 것처럼 느껴져서 인지도..

오로지 팔과 다리의 움직임, 호흡에만 신경쓰다 보니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고, 오랫동안 편안히 움직이기 위해서는 조급함을 버리고, 몸에 힘을 빼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9호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19호실로 가다》는 영국을 대표하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도리스 레싱의 단편소설집 ‘To Room Nineteen: Collected Stories Volume One’(1994)에 실린 11편의 단편을 묶은 책이라는 데 좋아하는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 언급이 되어서 알게 되었다.


한 부부가 있는데 완벽한 부부예요. 남들이 보기에 부족함도 없고

자신들이 보기에도 생활에 민족하고 있는, 다복하고 화목한 가정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어해요


그래서 남편이 2층을 ,아내의 방을 만들어 줘요, '어머니의 방'이라고 이름 붙여서


근데 어느새 그 방에도 아이들이 드나들게 되고, 가족들도 출입하면서

그 방 역시, 또 하나의 거실이 되어버려요


그래서 아내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싸구려 호텔에

가족들 몰래 방을 하나 구해요

그리고 가끔 몇 시간씩 혼자 머물러요. 이무것도 하지않고

그냥 방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면서

.

.

'19호실로 가다' 여주인공은, 결국 몰래 얻은 자신의 방을

남편에게 들키고 만다

그리고 여자는 남편에게 거짓말을 한다. 외도를 하고 있었다고


당시 스무살이였던 나는, 여자 주인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외도라는 큰 거짓말을 할 만큼, 그 방을 들키지 않는게 더 중요 한 걸까?      

[출처] 드라마 속 책 이번 생은 처음이라 )):: 19호실로 가다, 정현종 시선집 섬,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작성자 아는언니 굠굠


스무살은 이해하지 못할 저 이야기를 46살이 된 나는 이해가 된다. 자신만의 공간이 너무도 필요했을 여자.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공간이, 필요했을 마음을 알 것만 같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19호실이 있다면 조금은 더 행복한 인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군가의 무엇이 아닌, 어딘가의 누구가 아닌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곳..그런 곳, 그런 일이 있다면 너무 멋질 것 같다.

가끔 나만의 19호실은 무얼까 생각해본다. 나에게는 호젓하게 걷는 나만의 산책길이, 호흡과 움직임에만 신경쓸 수 있는 수영장이 19호실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부자가 아닌 관계로 멀리 떨어진 곳에 방을 얻는 건 불가능한 일..)


수영장에는 여러 사람과 함께 있어야 하지만 혼자서 하는 운동이라는 것이 마음에 든다. 그 누구와도 이야기 나누지 않아도 되고 충분히 혼자 만의 시간을 맘껏 즐길 수 있다. 오후 2시쯤이 넘어가면 수영장 창으로 반사된 햇빛이 반사되어 물 속에 비치는 데 그 빛을 볼 때 마음이 산뜻해진다. 

나만의 루틴은 수영이 끝나고 샤워 후 일부러 머리를 바짝 말리지 않고 반쯤만 말리고 나온다. 바람이 사삭~ 하고 불어오면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느껴지는 상쾌한 기분을 마음껏 느끼기 위해서이다.


이제 수영장에서 자유롭게 수영할 수 있지만 여전히 초보레인에서 수영을 한다.(상급자 레인에 가면 뒤에서 누가 쫒아오는 것만 같은 압박감 떄문이다.) 

하지만 10년째 초보레인이어도, 수영은 즐겁고,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딸 생각도 누군가를 이길 생각도 아니기에 나에겐 충분하다. 그저 한 가지 바램이 있다면 평영의 속도가 조금 더 올라가는 것. (또는 사치에처럼 머리 내밀고 하는 평영이 가능해 지는 것), 그리고 멋있는 턴을 해 보고 싶다. 

이것도 한 10년쯤 후에는 가능하지 않겠나 싶어서 초보레인에서 오랫동안 즐거운 수영인으로 남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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