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김 부장’을 끝까지 볼 수 없는 어느 아내의 고백
어제는 기분 전환을 위해 오랜만에 네일 숍을 찾았다. 평소라면 유행하는 컬러나 고르며 적막이 흘렀을 그곳이 어쩐지 평소보다 소란스러웠다. 대화의 중심에는 요즘 화제라는 드라마 ‘김 부장’이 있었다.
“나 원래 드라마 보면서 우는 사람들 이해 못 했거든? 근데 어제는 진짜 눈물이 터지더라고.”
옆자리 손님이 상기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드라마 속 김 부장이 퇴사 후 무거운 어깨를 이끌고 돌아온 날, 아무 말 없이 그를 안아주며 위로하던 아내의 모습에서 무너졌단다. 누구는 우리 아빠 이야기 같아서, 누구는 바로 우리 부부 이야기 같아서 울었다며 저마다의 공감을 쏟아냈다.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조용히 내 손톱에 칠해지는 색깔만 응시했다. 사실, 나도 그랬으니까.
우리 집에도 ‘이 부장’이 산다
며칠 전, 우리 집 거실에서도 같은 드라마가 흐르고 있었다. 서울 아파트에 살며,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다니는 내 남편. 사람들은 그를 ‘이부’라 부른다. 성공한 인생이라 말하지만, 내 눈등에 비친 그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외줄 타기를 하는 광대 같을 때가 많았다. 화면 속 김 부장의 처절한 현실이 절정에 달했을 때였다. 옆에서 묵묵히 드라마를 보던 남편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 저거 더 이상 못 보겠다.”
그는 도망치듯 방으로 튀쳐나갔다. 뒷모습이 유난히 작아 보였다. 드라마 속 김 부장의 상실감이, 곧 다가올 자신의 미래 같아서였을까. 혹은 지금껏 버텨온 시간들이 너무 아프게 건드려져서였을까.
배우들의 신들린 연기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스토리구성은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지만, 누군가에게는 직면하고 싶지 않은 ‘거울’이 되기도 한다. 나는 결국 그 드라마를 정주행 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당분간은 더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밖, 진짜 위로가 필요한 시간
사람들은 말한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부장이면 걱정이 무엇이냐고. 하지만 그 견고해 보이는 성벽 안에는 매일 아침 ‘살아남기 위해’ 전쟁터로 향하는 한 남자의 고독이 살고 있다. 실적이라는 숫자에 저당 잡힌 자존심과, 커가는 아이들의 학원비와 노후 준비라는 책임감 사이에서 그는 매일 조금씩 깎여나가고 있었다.
드라마 속 아내가 김 부장을 안아주었을 때 사람들이 울었던 이유는, 그 포옹이 단순한 위로를 넘어 ‘당신 그동안 정말 애썼다’라는 존재에 대한 인정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네일 숍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화려하게 반짝이는 내 손톱보다 오늘 퇴근해 돌아올 남편의 거친 손마디를 먼저 떠올렸다. 남편이 방으로 도망치듯 들어갔던 그날, 나는 왜 따라 들어가 등을 토닥여주지 못했을까.
오늘 밤엔 남편이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끓이고, 그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드라마 속 아내처럼 꽉 안아주고 싶다.
“오빠! 오빠는 김 부장도 이 부장도 아니야. 그냥 내게는 가장 소중한 사람이야. 오늘도 수고 많았어.”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이라는 드라마 속에서 고군분투 중이다. 비록 정주행은 멈췄을지라도, 우리 집 이 부장의 진짜 인생만큼은 해피엔딩이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