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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스칼리 Sep 17. 2024

라라스칼리 7

영어학원 선생님 

어느 날 엄마는 예상하지 못한 남편의 개인적인 사정과 건강 문제로 갑자기 휴직을 하게 되면서 일상의 변화와 고민을 겪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인 고민으로 인하여 집 근처 영어 학원에서 파트타임 교사일을 더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과 즐거운 놀이 수업을 기대했지만, 수업이 시작되자 원장 선생님이 엄격한 모습으로 변하면서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는 것을 보며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학원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학원에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이 오고 갔습니다. 약 10평 되는 좁은 공간에는 벽면을 따라 작은 책상들이 빼곡히 배치되어 있었고, 선생님은 아이들을 자리에 앉혀야 했습니다. 강력한 통제가 필요했으며, 좁은 공간에서 아이들은 조금만 움직여도 부딪히고 다치거나 싸우는 일이 잦았습니다.


아이들은 배정받은 자리에 앉아 태블릿으로 음원을 들으며 영어 문제를 풀었습니다. 단어와 문장을 외우고 한글로 발음과 해석을 적었습니다. 암기가 끝나면 선생님 앞에 줄을 서서 문장을 완벽하게 외웠는지 검사받았습니다. 원장 선생님은 아이들의 실수를 지적하며 문장을 외우지 못한 아이들에게 "다시!"를 외쳤습니다. 아이들은 몇 시간 동안 문장을 쓰고 외우기를 반복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8포인트 정도 되는 작은 글씨로 적힌 엑셀 차트의 단어들을 서서 외우고 있었습니다. 잘하는 아이들은 빨리 암기를 통과하여 가짜돈을 받았고, 이것이 나중에 장난감으로 교환된다고 했습니다. 7살부터 고등학생까지의 아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선생님 앞으로 달려들었습니다.


한 시간에 20명 넘는 아이들이 교실을 지나갔고, 5시간 정도가 지나니 거의 100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학원은 마치 아이들에게 끝없이 마무리 작업을 요구하는 제조 공장 같았습니다. 그날 저녁, 엄마는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반복적인 암기와 연습을 통해 점수를 높이기 위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에 소시지 공장에서 아이들이 고기와 양념을 혼합하여 포장하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엄마는 그 작은 공간에서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불안감과 무기력감을 느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이러한 상황도 조금 익숙해졌습니다. 그러자 약간의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엄마는 평소와 같이 자신의 외운 문장을 확인받으러 온 아이들에게 외운 문장을 약간 변형해서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What color is your shirt? What color is this?" 그러자 아이들은 "선생님, 그건 외우지 않았는데요?"라며 당황한 표정으로 쳐다보았습니다. 엄마도 순간 당혹감을 느끼며, 암기의 목적이 무엇인지, 진정한 영어 교육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곧 엄마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영어가 아닌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외운 문장과 단어는 나중에 보게 될 학원과 연계된 시험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학원은 아이들이 영어 시험에서 가장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습니다. 영어는 대화를 위한 것이 아닌 시험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엄마의 머릿속으로 어릴 적 수능, 토익, 토플과 관련된 모든 학원을 다니며 영어를 공부했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엄마는 아이들은 나중에 따로 말하기 수업이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자신이 운영하는 학원이 아닌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였습니다.

학원의 방향은 확고했고, 자신들의 방식에 대한 깊은 믿음과 신뢰가 있었습니다. 원장 선생님은 그날도 한 아이를 붙잡고 자신은 예전에 손가락이 다 휘어질 정도로 공부를 많이 했다며, 공부는 앉아서 손으로 해야 한다고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성문 영어에서 들어본 것 같은 문법 구조를 설명하는 원장선생님 앞에서 아이들은 졸린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순간, 엄마는 아이들이 단순히 점수를 올리기 위해 반복적으로 공부하는 것에 대한 회의감과 함께 진정한 언어의 소통의 상실에 안타까워했습니다. “이렇게 공부해서는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엄마는 단순한 암기가 아닌,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영어 교육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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