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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스칼리 Sep 22. 2024

과거회상 8

살아있는 엄마

휴직을 하게 되면 제 상황이 조금이나마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으나, 현실은 그 기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육아와 집안일에 대한 미숙함은 하루하루를 무탈하게 보내는 것조차 벅차게 만들었습니다. 매일같이 근육통과 몸살에 시달리며,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터를 겪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면 잠시나마 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으나, 청소와 밥을 하면 곧 다시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할 때가 되어버렸습니다.


손목 통증으로 여러 병원을 찾았고, 어떤 의사는 손목 신경을 절단하는 수술을 권하기도 했습니다. 계속되는 통증 속에 스테로이드를 장기간 복용하게 되니, 우울증은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사람을 만날 여유도 없고, 세상과의 단절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손목 통증으로 여러 병원을 찾았고, 어떤 의사는 손목 신경을 절단하는 수술을 권하기도 했습니다. 계속되는 통증 속에 스테로이드를 장기간 복용하게 되니, 우울증은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사람을 만날 여유도 없고, 세상과의 단절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땀을 흘리며 화장실 청소를 하다가 쓰레기를 버리러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아파트 단지에서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모여 있었습니다. 처음엔 "이게 뭐예요?" 하고 기웃거리던 엄마를 판매하는 사람들이 끌고 갔는데, 만병통치약인 건강식품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사방이 막힌 천막 안에서 모두가 좋다고 박수를 치니 이 제품을 엄마만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엄마는 앓고 있는 병의 치료가 가능하다는 광고 문구를 보고 솔깃했습니다. 그래서 거금을 쓰고 제품을 구매했는데, 집에 와서 핸드폰으로 검색해 보니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반품을 할 수 있는 방법도 없고 판매한 사람이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돈만 날리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으로 한동안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습니다.


외벌이 가정은 경제적인 부담이 커져만 갔습니다. 가계부를 쓰기 시작하니, 대출금, 관리비, 생활비, 학원비 등 나가는 돈은 끊임없이 많았습니다. 수입은 줄었는데 지출은 좀처럼 줄이기 어려웠습니다. 아이의 학원도 줄이고 가능하면 집에서 음식을 해 먹으려 했지만, 건강은 더 악화되었고 결국 더 많은 돈을 병원과 사기꾼에게 쓰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절망적인 심정으로 심리 정신과에 상담을 받으러 갔습니다. 그곳에서 자신의 문제상황을 처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직업에 대한 목표의 상실과 출산과 육아로 포기한 상황, 그리고 경제적 부담과 건강에 대한 불안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설명했습니다. 말을 이어가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울컥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눈에서 수도가 터진 것처럼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 자각하지 못했던 자신의 감정과 생각들은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1시간을 탈진한 듯 울고 불안과 걱정을 토해낸 후 정신을 차리니, 의사가 두 손을 깍지 낀 채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의사는 그녀에게 현재 상황에서 해결 가능한 IT 수업이나 코딩을 배워서 재택으로 일을 해보기를 제안하고 현실적인 해결책으로 상담을 마무리했습니다. 엄마는 울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진료비를 정산하면서 자신의 상담료가 10만 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다음 상담료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이 이내 무거워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새롭게 처방받은 항정신성 약물과 스테로이드도 그리고 항염증제를 부엌 선반에 정리를 하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엄마의 몸과 마음에 미묘한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만병통치약보다 1시간 동안 정신 나간 듯 울었던 것이 더 건강에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을 보내고 청소를 미루고 소파에 누웠는데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엄마는 '어차피 어질러지는 거 오늘은 그냥 쉬자'라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습니다.


엄마는 한동안 오후시간에는 평소에 읽고 싶었던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매일같이 돌리던 청소기 횟수도 줄이고 반찬도 배달해 먹었습니다. Netflix를 보거나 낮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지내니 불안한 마음이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마음에 여유가 조금 생기니 정리와 육아도 방법을 효율적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몸을 움직이는 대신 팬을 잡았습니다. 청소는 하루에 1시간, 요리는 일주일에 두 번과 같이 계획을 나누어 세웠습니다. 이렇게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니 자신을 돌볼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점점 여유 시간에 산책을 하거나 수영을 다닐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루틴이 정리되자 청소를 하면서도 Netflix를 보는 멀티 태스킹도 가능해졌습니다. 엄마는 설거지를 하면서 동물과 자연 다큐멘터리를  주 봤습니다. 그녀는 어릴 적 할아버지가 '동물의 왕국'을 보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연의 이야기를 보며 마음의 평안을 찾았습니다. 많은 영상 중에서 '나의 문어 선생님'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일 좋아했는데, 영상을 돌려서 수십 번을 반복해 보았습니다. 영상의 마지막에는 어미문어가 새끼문어를 낳고 알이 부화하자 다른 동물과 상어에게 잡아 먹히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자연 속에서 엄마가 되는 일은 정말 끔찍한 일었습니다. 그리고 곧 문어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종족 번식을 하는 일은 목숨을 거는 엄청난 희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는 자신이 출산의 고통과 양육의 어려움에도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자연과 다른 놀라움과 대단함을 느꼈습니다.  죽어서 다른 자연의 생명체에게 먹이로 던져지지 않  살아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엄마는 자신도 살아 있는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고 그것을 위해 살아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엄마는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다시 한번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자신의 운명이 변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자연과 관련된 이야기는 인간이 한없이 작은 존재이며 살아가는 것이 기적이라 말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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