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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스칼리 Sep 20. 2024

과거회상 6

메니에르병


둘째 아이를 낳고 겨우 3개월 만에 엄마는 다시 일터로 돌아갔습니다. 출산 전에도 코로나로 인해 휴직을 오래 했기 때문에, 더 쉬면 돌아갈 자리가 없어질 것 같은 불안감이 엄마를 두렵게 했습니다. 하지만 복직 후, 회사는 이미 많은 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원격으로 진행되는 회의와 3D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가상 업무 시스템이 도입되어, 적응하기 위해서는 일을 하면서도 공부해야 했습니다. 엄마는 마음이 혼란스러웠고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던 중, 엄마는 서서히 찾아오는 깊은 우울감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아이와 가까워진 시간은 너무 짧아 아쉬움이 컸고, 둘째 아이를 떼어놓고 다시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은 마음을 짓누르기 시작했습니다. 막 젖을 떼고 겪는 호르몬의 소용돌이 속에서  감정은 더욱더 예민해졌고, 항상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진하게 내린 커피에 의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엄마의 몸은 이상한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한쪽 귀에서 소리가 막히고, 알 수 없는 날카로운 삐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습니다. 줌 회의 중에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팀원들에게 몇 번이나 물어보아야 했고, 앉아 있을 때는 마치 몸이 피사의 탑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이 천천히 빙글빙글 돌아가고, 현기증 속에서 서류의 글들이 머릿속에서 흐려져 갔습니다. 업무의 내용을 이해하기는커녕 쌓여가는 일은 엄마를 더욱 불안하게 했습니다. 


아이들을 보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가고, 어느 금요일 늦은 밤, 엄마는 늦게까지 혼자 회사에 남아 일하다가 조용한 거리에서 택시를 기다렸습니다. 거리는 비었고, 택시는 잡히지 않는데 핸드폰을 바라보다가 몸이 차도로 기울어지는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순간 가로수를 붙잡으며 고요한 밤공기 속에서 엄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몇 번의 병원을 전전한 끝에, 대학병원에서 엄마는 메니에르병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치료가 늦지 않아 청력을 잃지 않았지만, 병이 회복되는 길은 멀고도 쉽지 않았습니다. 스테로이드를 복용해야 했고 약은 점점 엄마를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커피를 끊고 식이조절을 해야 했는데 일을 하면서 식단관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사랑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메니에르 병(-, Ménière's disease, MD)은 속귀에 발생하는 질병으로, 현기증과 이명 및 난청을 동반합니다. 1861년 프랑스 외과 의사 메니에르가 내이 질환에 의한 균형감각상실을 처음 보고한 데서 이름이 유래했습니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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